저예산의 반란…사흘 만에 1만 관객 돌파
스포트라이트 밖 민간 잠수사들 조명
영화의 기본 관행조차 무시한 상식 파괴 초저예산 영화 《바다호랑이》에 격찬이 쏟아진다.
네티즌 평점이 10점 만점에 가까운 9.21점이다.
관람객 성비는 여성 52%, 남성 48%로 남녀 모두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상업적 흥행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소규모 작품이다.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도 최소한의 배경 표현은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모두 생략됐다.
창고 같은 세트장에서 배우가 법정이라고 하면 법정이 되고, 바지선 위라고 하면 바지선 위가 된다.
가장 황당한 건 물 한 방울 없는 상황에서 잠수 장면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관객 몰입은커녕 실소나 터지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개봉 3일 만에 전국 1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금도 관람 행진이 이어진다.
6월27일 기준으로 한국독립예술영화 3위, 예매율 2위에 올랐다.
대작 상업영화까지 포함하는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12위에 올랐다.
개봉 당시 59회를 상영해 전국 관람객이 5771명에 불과했지만, 이틀 만에 1만4050명으로 늘어나더니 또 하루 만에 1만7657명으로 증가했다.
워낙 저예산이라서 극장 측이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다가 의외로 뜨거운 반응이 확인되자 바로 상영관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호평이 쏟아지는 만큼 뒷심을 발휘한 장기 흥행도 기대된다.
오래전부터 블록버스터 오락물이 극장가를 장악해 왔지만, 최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득세 이후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이런 상황임에도 볼거리가 '0'에 가까운 저예산 작품이 주목할 만한 흥행을 하는 것이라 의미가 각별하다.
영화계 반응이 뜨겁다.
이명세 감독은 "지금까지 없었던 놀라운 독창성"이라고 했다.
배우 유지태는 "잠수 장면에서 폭풍 오열했다"고 했고, 최정윤은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머리에 지진이 일어난 듯한 경험"이라고 했다.
일반 관객들도 "아프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되는, 치유의 영화" "'이렇게도 영화가 된다고?' 하는 신기하고 신선한 영화"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작! 눈물을 멈출 순 없지만 가족 힐링 영화!" 등의 찬사를 보냈다.
영화 《바다호랑이》 포스터 ⓒ영화로운형제 배경·수중 묘사 생략해 관람객 상상력 동원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걸었던 민간 잠수사들의 기록을 들여다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콘텐츠는 보통 학생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이 많이 조명된다.
잠수사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당시 잠수사들이 돈만 원한다거나 구조를 제대로 안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꼭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물에서 사고가 나거나 시신을 인양할 일이 있을 때 항상 잠수사들이 역할을 맡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잠수사의 고통이 조명된 적은 거의 없었다.
잠수사는 그저 마치 기계처럼 물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기능적 존재로만 인식될 때가 많았다.
《바다호랑이》는 잠수사도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너무나도 참혹하고 안타까운 세월호 비극을 수습 과정에서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몸으로 겪어낸 이가 바로 민간 잠수사들이었다.
그들은 험한 물길을 헤치고 선체 내부에 진입해 샅샅이 수색했다.
시신을 발견하면 온 힘을 다해 꼭 끌어안고 물 밖으로 나왔고, 이내 다시 컴컴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기계가 아닌데 과연 고통이 없었을까? 전남 진도군 세월호 기억의 숲에 있는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발생 41일째인 2014년 5월26일 전남 진도 서망항에서 민간 잠수사들이 사고 해역으로 가기 위해 해경 경비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혹한 현장이 전한 실화의 힘 그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전한 책이 김탁환 작가의 르포르타주 《거짓말이다》였다.
《바다호랑이》는 그 책을 기반으로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고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김관홍 잠수사는 사고 현장이 신경 쓰여 주위의 만류에도 팽목항에 합류했다.
영화는 당시 현장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여실히 알려주면서 그 속에서 목숨 걸고 잠수한 이들을 그린다.
"우리는 수중에서 더듬더듬해서 머리로 그린단 말입니다.
머리에서 그려지는 게 제 머릿속에 자꾸 생각나고 그러는데. 하루 한 번 들어가야 할 현장을 많게는 네 번, 다섯 번 들어간 분들도 있어요. 다른 잠수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왜 그렇게 일을 했냐고. 아니,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요." 김관홍 잠수사의 말이다.
지척에 희생자가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잠수사들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연이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견위치명(見危致命·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침)이다.
그 결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적 고통과 잠수병 후유증 등 육체적 고통을 안은 잠수사들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의 지인이라는 한 관객은 그 잠수사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며 영화를 보며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잠수사들은 당시 참사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생활비는커녕 치료 비용도 충당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로부터 책임 떠넘기기 식 소송까지 당했다.
후유증과 생활고로 고통받고, 가족과도 소원해진 김 잠수사는 결국 가족과 떨어진 상태에서 홀로 쓰러져 숨졌다.
그는 희생 학생들을 더 수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고등학생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을 보면 길에 주저앉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안에 갇힌 학생들이 그 옷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했는데도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부분을 환기하며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어둡고 무겁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저예산 영화는 지루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작품은 지루하지도 않다.
결핍이 선사한 휴머니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관행을 무시하고 배경 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모두 말로 때운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100억원대 대작으로 기획됐으나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초저예산, 사실적 묘사 무시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완성도까지 무시하진 않았다.
돈이 없어도 정윤철의 연출과 이지훈 등의 연기는 일류다.
그렇다 보니 완성도가 올라가면서 상상하는 동물인 인간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관객이 배경의 공백을 상상으로 채우면서 작품을 함께 완성하는 것이다.
워낙 이야기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몰입에 아무 지장이 없고, 웬만한 상업영화 이상으로 재미있다.
휴머니즘에 기반한 눈물, 감동, 치유, 위로를 선사해 주기 때문에 누구나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물 없는 잠수 장면도 극장 관람 때 극대화되는 극저음 음향의 가세로 몰입할 수 있게 표현됐다.
이러니 영화계 인사들이 폭풍 오열과 더불어 제작 방식의 독창성에 감탄하고 머리에 지진이 나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더 많은 관객에게 알려져 세월호 잠수사들의 희생, 나아가 여러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는 이들의 헌신이 크게 조명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다룬 《바다호랑이》에 격찬 쏟아지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