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문우·정윤경 기자 bmw@sisajournal.com]
상반기 내국인 해외직접투자액, 외국인 국내직접투자액의 '5배' 넘어서
위기의 韓…'반도체·AI' 일자리는 美로, '전통적' 제조 일자리는 동남아로
"인건비는 동남아에 밀리고, 전기료는 美보다 비싸…구조적 경쟁력 회복이 핵심"
김상훈 "반시장·반기업 행보 멈추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져"
#1.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들면 불확실한 관세도 면제인데 당연히 나가야죠. 한국은 이미 법인세에 각종 규제에 이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으로 경영 환경까지 묶이면서 기업 하기 어려운 곳이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 B2B(기업간 거래) 시장이 더욱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만큼 앞으로 개척해야 할 '신항로'에서 입지를 굳혀야 하는 상황이죠." (대기업 S사 경영기획팀 사원) #2.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딱 맞아요.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하겠다고 던진 조치인데, 저희 같은 영세 제조업체는 대응 여력도 없이 직격탄만 맞고 있습니다.
최근 수출한 물량 기준으로 1만2500달러짜리 제품에 6250달러의 관세가 붙었습니다.
물류비까지 포함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미국 수출이 전체 매출의 70%인데 이대로면 반 토막 날 수도 있고,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면 구매자가 떠나고, 가격을 낮추자니 원자재 가격이 올라 감당이 안 됩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무너집니다.
" (중소기업 A사 대표) 국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와의 'AI(인공지능) 반도체' 협업 선언에 이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지으러 떠났다.
또 다른 강자인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AI 메모리 패키징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삼성SDI, SK온, LG엔솔, 한화큐셀 등 각 분야 1등을 다투는 유수 첨단산업 대기업들도 미국, 중국 등 해외 진출 비행기에 탑승했다.
'대한민국 제조 강국' 기반을 책임지고 있는 전통의 제조업 기업들도 '해외 탈출' 눈치 싸움을 벌이거나 진작 떠난 지 오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미국과 동남아 투자를 대폭 늘리는 반면 국내 투자는 계속 축소하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 효성중공업, 한국타이어는 물론 일부 중소기업들도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면서 지방 산업단지들에선 폐쇄 사업장이 속출하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 자본유출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 경제와 일자리까지 '곡소리' 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간 지지부진했던 한미 관세 협상이 10월29일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격 타결되면서 국내 산업계는 "일단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위기감도 함께 감지된다.
세계 각국이 세제와 규제 완화, 산업 보조금 카드를 꺼내며 '기업 유치 전쟁'에 나선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기업 엑소더스(Exodus·탈주)'의 진앙지로 남아있어서다.
ODI 투자액 24% 증가할 때 FDI는 23% 감소 위기의 전조는 수치로 입증된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ODI(내국인 해외직접투자) 순 투자액이 FDI(외국인 국내직접투자) 순 투자액의 '5배'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ODI·FDI 수치로 확인하는 한국기업들의 코리아 엑소더스' 회답서에 따르면, IMF(국제통화기금) 자료 기준 올해 상반기 한국의 ODI 투자액은 194억12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4% 증가한 반면, FDI 투자액은 36억4800만 달러 23% 감소했다.
이 같은 국내 순자본 유출 구조는 최근 5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다.
5년간 한국의 ODI를 FDI로 나눈 지표는 △2021년 299.1% △2022년 262.7% △2023년 168.9% △2024년 319.1%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는 △1분기 287.8% △2분기 1487.3%로 오름세가 심상찮다.
그만큼 국내로 향하는 투자가 갈수록 위축되는 추세다.
기사에 인용된 자료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IMF 통계 자료를 전수 조사해 추출한 수치로 정부 발표 수치와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ODI‧FDI 순 투자액은 기업이 해외‧국내에 투자한 돈에서 지분 매각이나 청산 등으로 회수한 금액을 뺀 자금이다.
주요 20개국(2021년 명목 국내총생산 순위 기준)과 비교해도 한국 지표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1분기의 경우 한국은 수치가 공표되지 않은 일본 제외 20개국 중 ODI 투자액 순위는 6위에 오른 반면, FDI 투자액 순위는 14위에 머물렀다.
같은 분기 ODI/FDI 수치는 한국이 287.8%로 스위스(1263.5%), 중국(333.1%)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그만큼 한국 내부의 순자본 유출 규모가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높은 셈이다.
반도체·자동차 기업의 미국·일본 이전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체들의 동남아 생산기지 확장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92개 그룹이 다른 국가에 세운 해외법인 숫자는 올해 기준으로 6360곳을 넘어섰다.
해외법인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에 세운 법인이 1673곳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808곳), 베트남(325곳)이 그 뒤를 이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반기업 기조 중단 되지 않으면 기업 엑소더스는 더 심화" 기업들은 왜 해외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일까. 표면적 명분은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다.
미국이 관세 장벽을 통해 자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 만큼,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관세 부담을 피하고자 미국 현지 생산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관세 장벽을 피하려고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협상 타결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는 세제와 규제 등 기업 경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점도 핵심 이유로 꼽힌다.
특히 최근 국회에서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는 등 기업의 사용자 책임이 확대되는 추세다.
기업 입장에선 '파업 리스크' 등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당연히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제조업이 떠나면 피해는 결국 국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결국 그간 중장년층이 끌어온 제조업 일자리는 동남아로 빠지고, 청년들이 갈망하는 AI·반도체 등 첨단 기업은 미국이나 중국으로 이탈해, 국내에서는 '일자리 공동화(空洞化)'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제조업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협력업체·운송·서비스·상권까지 붕괴시키는 연쇄적 경제 충격을 유발한다"며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경제는 한 번 무너지면 10년 이상 회복이 어렵고, 지방의 경우 인구 유출과 고용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업 엑소더스에 대응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생산 비용 구조 자체가 불리하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의 인건비는 베트남의 4~5배, 전력 요금은 미국보다 비싸고, 물류비도 높은데다 노동 유연성도 떨어지고 파업 위험이 크다는 점도 기업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고 짚었다.
이어 "단순한 세제 감면이 아니라 전력·물류비 절감, 스마트팩토리 전환 지원, 규제 혁신, 전략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 구조적 경쟁력 회복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주가는 경제 펀더멘털의 그림자일 뿐 해외 주가 상승과 투자심리 호전만으로 올라간 주가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며 "실물 경제가 살아나고, 주가가 지속 상승하려면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고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정은 노란봉투법, 더 센 상법 등 반시장·반기업 행보를 중단하지 않을 시 '코리아 엑소더스'는 심화되고 그 피해는 국민이 짊어지게 됨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단독] 거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