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문우·정윤경 기자 bmw@sisajournal.com]
韓기업 해외 진출 법인 6300곳 넘어…"'고비용·저효율' 국내 투자 환경 매력 저하"
'기업 유턴' 정부 정책도 실효성 미미…"'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실질 메리트 필요"
"관세협상, 끝이 아닌 시작…정부는 '균형 외교', 기업은 '국내 투자 유치' 병행해야"
ⓒ쳇GPT 생성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였던 '한·미 관세 협상'이 3개월 만인 10월29일 전격 타결되면서 국내 산업계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됐다.
하지만 국내 첨단산업과 제조업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기업들은 오히려 '코리아 엑소더스(Exodus·탈주)'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92개 그룹사의 미국·중국·동남아 등 해외 진출 법인은 규모를 막론하고 이미 6300곳을 넘어섰다.
반면 국내로 향하는 투자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의 순자본 유출 구조가 고착돼 온 데 이어 올해 상반기는 ODI(내국인 해외직접투자) 순 투자액이 FDI(외국인 국내직접투자) 순 투자액의 5배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 2분기 FDI 순 투자액은 불과 7억4300만 달러에 그쳤다.
(관련기사☞ [단독] 거세지는 '코리아 엑소더스'…2분기 110억弗 해외로, 투자유치는 7억弗뿐) 물론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의 흐름 속에서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이자 필연적 선택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생산 비중 확대로 결국 '제조업 강국'으로 꼽혔던 한국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 산업단지와 연계된 지역 경제와 일자리까지 도미노처럼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해 시사저널은 경제·통상 전문가인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의 의견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Q. 한국은 지난 5년간 순자본 해외 유출 구조가 고착화되는 추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교수: 구조적으로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처럼 관세 압박을 받는 국가들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아예 현지 생산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로의 이전이다.
특히 인건비가 낮고 생산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들로의 이전은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Q.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해외만큼 투자 환경이 좋지 못한 편인가. 김 교수: 한국의 ODI가 FDI보다 3~5배 많다는 것은 국내 투자 환경의 매력 저하를 의미한다.
기업들은 세금, 인건비, 전력비, 규제 등 복합적 요인 때문에 국내보다는 해외를 선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법인세율과 근로시간이 높은 편이며, 각종 환경·노동 규제가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반면 동남아·미국 등은 세제 감면, 보조금, 완화된 규제를 통해 적극 유치에 나서고 있다.
즉 이 현상은 단순히 기업의 탐욕이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의 '경쟁력 약화'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다.
Q. 최근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도 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 이전에 영향을 미쳤을까. 이 교수: 그렇다.
미국은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에 공장을 지어라'는 식으로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자 한다.
결국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은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일수록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Q.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에 어떤 파장을 미치게 될까. 김 교수: 결국 트럼프발 관세 전쟁은 '생산기지의 글로벌 분산'이 아닌 '미국 집중화'로의 방향 전환을 촉진시켜 한국 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협력업체·운송·서비스·상권까지 붕괴시키는 연쇄적 경제 충격을 유발한다.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경제는 한 번 무너지면 10년 이상 회복이 어렵고, 지방의 경우 인구 유출과 고용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생산기반 유인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명록 작성 모습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Q. 정부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촉진 차원에서 이른바 '유턴 기업 지원법'을 마련했다.
그 실효성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 교수: 정부 지원 정책의 경우 성과가 미미한데, 그 이유는 국내 투자에 대한 실질적인 메리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보다 더 나은 조건이 없다면 굳이 돌아올 이유가 없다.
유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불리해서 기업들이 유턴하지 않는 것인가. 김 교수: 핵심은 국내 생산비용 구조 자체가 불리해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인건비는 베트남의 4~5배에 달하며, 전력요금은 미국보다 비싸고 물류비도 높다.
또 노동 유연성이 떨어지고 파업 위험이 크다는 점도 기업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그런 만큼 정부는 규제 완화와 세제개편을 통해 '국내 투자 매력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단순한 세제 감면이 아니라 ①전력·물류비 절감 ②스마트팩토리 전환 지원 ③규제 혁신 ④전략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 구조적 경쟁력 회복이 핵심이다.
'돌아오라'는 구호보다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Q.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이 교수: 우리에게 유리한 분야에는 적극적인 해외 투자도 필요하지만 국내 투자 유치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반면 기술집약적 산업에서는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다.
국내에서는 기술 기반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해당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Q.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외교·통상 전략을 꾀해야 할까. 김 교수: 한국은 '안보는 미국, 무역은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이기에 양자택일이 아닌 '전략적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
산업 전략적으로는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중심의 공급망 주도국이 돼야 하며, 원자재와 핵심 부품을 다변화해 '탈중국화'와 '리스크 분산'을 병행해야 한다.
또 미국과의 공급망 협력 참여는 필수지만, 동시에 동남아·인도·중동 등 신흥시장 연계 네트워크 강화도 중요하다.
결국 한국은 '글로벌 기술 허브'이자 '중견 무역국'으로서 균형 잡힌 산업 포트폴리오와 외교적 다변화를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Q.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일단락되긴 했는데, 앞으로 또 우려되는 지점은. 이 교수: 이번 타결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조건을 또 제시할 수 있고 비관세 장벽이나 추가적인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여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요구에 휘둘리기보다는 우리 중심의 투자 전략과 외교 전략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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