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메가톤급 대입안 들썩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고 수능·내신을 절대평가로 전면 전환하는 개편안을 예고하면서 입시 현장이 들썩이고 있다.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이어진 지난 50년간의 객관식 점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초대형 개편이다. 개편 대상이 되는 현재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사교육업계는 발 빠르게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교육계는 개편 방향엔 동의하는 모습이다. 다만 학교 현장에 끼칠 파장이 커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시기상조론’과 인공지능(AI) 시대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란 입장이 충돌하는 모습이다. 국가교육위는 오는 10월 말 개편안 초안을 내놓고 공론화에 나설 예정이어서 격론이 예상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대입 개편안이 공개된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이제 막 도입된 고교학점제, 내신 5등급제가 안착하기도 전에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서·논술형 평가 추가 개편은 시기상조”라며 “서·논술형 평가는 채점 공정성 확보와 사교육 증가 우려 해소가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 없는 강행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최대 교원 단체인 교총의 반대는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수능과 고교 내신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려면 현장 교사의 협조가 필수다. 일선 학교에서 토론식 수업과 글쓰기가 일상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피드백이 중요한데 이 과정이 미흡할 경우 곧바로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지기 쉽다. 교사의 업무 부담이 증가할 수 있어 교직 사회가 납득 가능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3대 교원 단체로 꼽히는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도 회의적이다. 교사노조는 지난 18일 성명에서 “방향에는 공감하나 방향이 옳다고 정책까지 옳은 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평가 형식부터 바꾸는 개편엔 반대한다”며 “비전형적인 타당한 답안(평가자나 AI 채점 시스템이 기대한 답은 아니나 틀렸다고 보기 어려운 글)의 인정 방안, 최종 채점 책임 주체 등을 정하지 않고 수능 서·논술형의 도입 가능성을 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찬성 입장에는 좋은교사운동,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교육의봄 등이 있다. 이들은 지난 18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시기상조론을 반박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이자 AI 강국 도약을 앞둔 나라다. 앞서가는 자에겐 베낄 정답지는 없다”며 5지 선다형 평가 체제의 종식을 주장했다.
“5지 선다형은 학생 망치는 길”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교육위 업무보고에서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AI 시대에 5지 선다형은 학생을 망치는 길’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선 “우리 교육의 급소를 정확히 짚었다”고 평가했다. 사교육 문제의 경우 단기적으로 증가가 불가피하지만 정책을 잘 설계하면 5지 선다형과 상대평가 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교육이 위축될 걸로 이들은 봤다.
교육디자인연구소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공정 선발이란 이름 아래 더 정밀한 서열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변화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방향 자체를 포기하는 것 또한 위험한 선택”이라며 지지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수능 절대평가에는 찬성했지만 서·논술형 수능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번 개편 논의에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은 교육감들이 될 전망이다. 국가교육위의 개편안은 전국 교육감들의 협의체인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가 줄곧 주장해 왔던 방안이다. 교육감협은 지난해 7월 이재명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에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전환, 서·논술형 수능, 수시·정시 통합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당시 교육감 17명의 총의가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감들 AI채점 시스템 개발 중
교육감들은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서·논술형 평가를 확산하기 위해 AI 채점 시스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과 경기 등은 이미 시범학교를 지정하고 평가에 적용 중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의 경우 전국 최초로 2027학년도부터 초5~중1 평가를 100% 서·논술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교육감은 지역 초·중·고교의 교육과정과 교원 인사, 예산 집행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교육계 여론 형성에도 영향력이 작지 않다. 특히 자신들의 이념 성향, 자신이 몸담은 정치 진영과 상관없이 국가교육위의 개편안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 교육감 중에는 교육감협 회장을 겸하고 있는 정근식 서울교육감이 개편 논의를 이끌고 있다. 정 교육감은 수능 절대평가 전환에 그치지 않고 2040년에 수능을 폐지하는 방안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그는 국가교육위 당연직 위원이기도 해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의 최대 우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논술형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김대중 전남광주교육감도 개편안에 찬성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고, 가장 많은 학생을 담당하는 안민석 경기교육감 역시 교육감 후보 시절 수능 절대평가 등을 공약했다.
보수에선 서·논술형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전도사로 불리는 강은희 대구교육감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21일 “진보와 보수 교육계, 교직 사회 모두의 오래된 과제이지만 변화 폭이 너무 커 실행 여부는 공론화에 들어가 봐야 알 것”이라며 “현장 교사의 지지 여부가 1차 관문일 텐데 교사 설득에 실패하면 학부모 지지 획득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