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부는 바람 ‘성평등한 마을규약 만들기’➁ 제주여민회 활동가 좌담

‘독립적인’, ‘자립적인’, ‘드세고 억척스러운’… 제주 여성에 대한 수식어다. 그러나 제주의 여성 관련 지표는 기대와 어긋난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25 통계로 보는 제주 여성 가족의 삶〉에 따르면, 제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5.7%로 전국 평균 56.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1위인데 반해, 여성 월평균 임금은 남성의 72.3% 수준에 그친다. 정치적 대표성은 어떨까? 제주 여성 도의원은 9명으로 20%,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36.2%, 공공기관 여성 임원 27.2%, 172개 마을 중 여성 이장은 단 3명으로 1.74%에 불과하다.
 
여성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과 달리 현저한 과소대표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곧바로 성평등 사회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부장적 사회의 전면적인 인식 개선, 성역할 분리 관행이나 제도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제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평등한 마을 조성 사업’은 사회를 뿌리부터 성평등하게 바꾸려는 야심찬 시도다.
 
9년째 이 사업을 이끌어오고 있는 제주여민회 핵심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은숙 대표, 양희주 사무국장, 김영순 고문(전 대표)이다. 김영순 고문은 다른 자리에서 만났지만 지면상 함께 구성했다.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높이자’
읍면리 마을규약이 제주 전체의 성차별 재생산하는 코어
 
호미: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떻게 성평등한 마을규약 만들기 사업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농촌 마을규약이 가부장적 농촌문화의 진원지라는 것을 간파하기도 쉽지 않고, 알았더라도 손을 댈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희주 사무국장(이하 희주): 2017년에 여민회가 30주년을 맞이했어요. 앞으로 10년 동안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어떤 과제를 풀어갈 건지 모색하기 위해, ‘여성친화도시 제주실현을 위한 제주여성 100인 원탁회의’를 개최했어요.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살아가는 제주여성 100명과 정치, 경제, 문화, 돌봄, 안전의 다섯 주제로 토론을 했어요. 무선투표기로 과정마다 투표해가면서 진행했는데, ‘여성 정치적 대표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결론이 도출됐지요.

 
호미: 대표성이라고 하면 고위직 여성비율 몇 프로 이런 식의 제도 정치가 먼저 떠오르는데, 농촌의 읍면으로 들어가셨어요.
 
김영순 고문(이하 영순): 당시 제가 대표를 맡고 있을 때였는데요. 사실 제가 보건진료소에서 30년 근무했거든요. 열몇 개 마을에 살면서 근무했기 때문에 마을 실정을 잘 알죠. 마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균열을 내야겠다 싶었어요. 동 지역은 제도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반해, 시골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으니까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라는 게, 마을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도나 국회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가 없겠다, 이런 생각인 거죠.
 
 
정은숙 대표(이하 은숙): 제주도는 지역 자체가 도농복합이고, 섬이라는 특성상 제주도 자체가 하나의 세계예요. 제주 문화의 가장 기저에서 그 문화를 작동시키고 구동시키는 핵심, 거기가 어디일까. 우리는 그걸 공간적으로 마을 단위, 그것도 읍면 마을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주의 도시민으로서 사는 사람도 나의 부모와 친지들이 리단위 마을에서 농사짓고 있고, 내 고향집도 그대로 있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하고, 주말에 농사짓는 텃밭도 거기에 있거든요. 농촌마을 단위와 도심 한가운데와의 소통이 너무나 유기적,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요. 읍면 마을의 뿌리 깊은 의식들이 계속해서 제주 전체에 순환되고 유통되는 구조죠.
 
여성 대표성 강화를 실현하기 위해 기획단을 구성해서 마을 실태조사를 했어요. 조천, 애월 지역을 누비면서 20개 마을의 부녀회장, 36개 마을 사무장을 인터뷰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을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돼왔던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핵심에 마을규약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죠.
 
규약만 바꾸는 게 아니라 성평등 프로그램을! ‘옵션은 다양하게~’
 
호미: 단지 성평등 마을규약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폭넓은 성평등 문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성인지 감수성 워크숍, 여성영화 상영이나 연극 관람, 의사소통 훈련, 여성 건강권 프로그램,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상속과 재산을 여성주의적으로 들여다보기, 여성친화형 마을공간 만들기, 부녀회 문화 바꾸기와 같이 굉장히 다채롭더라고요.
 

은숙: 실태조사 때 ‘우리 마을에서 이런 거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 나온 거를 다 사업화했어요. 옵션이 몇 개밖에 없으면, 마을에서 ‘우리 이런 거 안해.’ 하면 끝이잖아요. 뭐 하나라도 고를 수 있도록 하려고, 그래서 넓게 넓게~ 실제 진행된 건 성인지 감수성 워크숍, 여성영화 상영회, 연극 관람, 의사소통 훈련, 건강과 여성 프로그램이에요. 사업이 더 많이 진행되어서 이 프로그램들이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마을재정 같은 경우, 보통 마을 임원진이 공동자금 운영을 관리하거든요. 재정담당 이사, 총회 감사가 하는데, 남성이 주로 맡아왔죠. 결국 마을 공동재산은 남자들만 관여하는 구조였어요. 금악리는 성평등 마을규약 사업을 추진하면서 재정이사, 감사 모두 여남 한 명씩으로 바꿨어요. 이런 식으로 성평등한 마을 재정 만들기가 실현되어 가는 거지요.
 
 
호미: 놀이패 한라산에서 성평등 마을규약 연극을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연극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희주: 여민회가 해온 사업에 대해서 제주여성가족연구원에서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냈어요. 여성친화도시 조성 일환으로 그 연구를 기반으로 한 연극이 만들어졌더라고요. 대표님이 연극을 보시고 이야기하셔서 놀이패 한라산 분들하고 만났죠. ‘마을규약도 연극에 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드렸고, 우리 프로그램에 딱 맞는 콘텐츠의 연극이 만들어진 거예요. 우리의 활동이 연극으로 돌아온 셈이죠.
 
호미: 변화를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추동하는, 역동적인 현장을 계속 만나게 되네요.
 
희주: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이 성평등 마을 사업이 처음 계획한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상황에 맞게, 마을 주체들에 맞게 계속 계획이 바뀌죠. 성평등 마을규약도 처음에는 ‘표준안’을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2019년에 마을규약 표준안을 만든 당진도 가보고, 충남마을만들기 지원센터, 대전 마을기반 풀뿌리 조직인 ‘평화가 익는 부엌 보리와 밀’, 대전 풀뿌리여성 ’마을숲’, 청양 주민자치 쪽과도 만났어요.
그런데 그분들의 공통적인 말씀이 마을규약 표준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마을을 “다수의 평등한 리더십의 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표준 조항은 최소한으로, 다섯 가지로 만들고 마을에 따라 적용해가는 걸로 했어요. 이 사업이 계획을 바꾸고 수정, 보완하면서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저는 뿌듯합니다. 그게 큰 매력이에요.
 

호미: 그렇게 만들어진 표준 조약 5가지를 살펴볼게요. 마을규약의 목적은 ‘남녀노소 마을 모두가 평등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공동이익을 증진하는 것’이고, 주민은 ‘마을의 모든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지 않고 발언의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권리’가 있다고 되어있네요. 주민의 의무로 ‘연령, 성별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존중할 의무, 인권 문제 발생 시 적극적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하였고요. ’의결권·선거권 1인 1표‘, ‘운영위원회 위촉직 여성 40% 이상 구성’을 명시했네요. 한국 최초의 성평등 마을규약 표준조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주: 맞아요. 표준규약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 인터뷰를 하면서 살펴보니, 지자체에서 만든 표준규약들에는 성평등 의제를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됐죠.
 
‘계획대로 된 건 없어요’, 연대와 협업으로 답을 찾아가
 
호미: 또 하나 흥미로운 게, 다른 단체들과의 협업 속에서 사업이 진행된다는 거죠. 자문단도, 마을 단위의 추진단도 모두 협업으로 구성되더군요.
 
희주: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제주연합(이하 여농)과, 제주YWCA와 성평등마을사업단을 구성해서 같이 하고 있어요. 여민회와 여농은 이 사업이 처음으로 추동된 2019년에 컨소시엄을 맺었고요. 제주여민회가 잘하는 영역과 여농이 잘하는 영역이 따로 있어서요. 우리는 정책과 제도, 도시 중심의 문화운동을 해왔고, 읍면 단위의 현장은 약한 고리죠. 이 사업의 핵심은 마을을 발굴하는 거잖아요. 여농의 제일 큰 강점이죠. 서로 고마워하면서 연대하고 있어요. 제주YWCA도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합류했고요.
 
호미: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비해 연대가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은숙: 일하는 방식이 다 다르니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는 연대라서 정말 감사하고요. 그래서 서로의 조직역량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해요. 예를 들어 애월 지역에 갈 때는, 일부러 ‘여농 회장님 같이 가십시다’ 해요. 그 지역에 여농이 없거든요. 그래서 조직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이요. YWCA 사무총장님에게도 ‘우리가 Y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뭐가 있느냐’고 여쭸어요. 그랬더니 이미 충분히 얻고 있다고, 공부가 많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호미: 제주여민회가 네트워크를 이끄는 입장인데, 여민회는 이 연대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나요?
 
은숙: 네트워킹하는 기쁨이 일단 있고요. 그래서 지역사회 안에서 연결된 느낌을 갖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 혼자만 했을 때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연계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희주: 제주도는 여성단체들로만 구성된 연합조직이 없거든요. YWCA도, 여농도 이미 큰 조직이고 다 중앙단위 소속이 있는 단체들이라 서로 접점이 별로 없어요. 이 마을 사업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거의 없었을 텐데, 몇 년째 활동하면서 끈끈한 라포가 많이 생겼지요. 서로의 행사에 가고 응원하게 되지요.
 
일만 하고 권한은 없던 부녀회가 마을 변화의 중심, 주체로
“이장도 하고 도의원도 하시라”…성평등 워크숍마다 들끓는 열기
 
호미: 가장 놀랐던 점은 부녀회가 중심이 되었다는 거였어요. 실태조사 때 부녀회원들 스스로도 “마을 일은 남자들이 하고, 부녀회는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농촌에서 부녀회는 ‘역할만 있고 권한은 없는’ 조직으로 여겨지죠. ‘마을 며느리’라는 자조 섞인 말도 하고요.
 
희주: 표준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마을 여성들과 만나는 출발시점부터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어요. 여성들 스스로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갖게 동기부여하자고. 마을 여성들의 조직인 부녀회가 그 중심에 서서 주체적으로 마을을 변화시켜 나가도록 하고, 여민회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걸로 이야기가 되었죠. 만약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규약을 바꾸려고 했다면, 훨씬 쉬웠을 거예요.
 
호미: 쉬운 길이 있지만, 돌아가더라도 과녁을 정확히 뚫는 정면 승부네요. ‘마을 며느리’들이 아버지의 낡은 집을 기반부터 부수고 새로 짓는군요. 그것도 아버지의 도구가 아닌 새로운 도구로요. 그 효과였을까요? 여민회 김연순 고문(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이사장)은 마을에서 성평등 워크숍을 할 때마다 ‘들끓는다’고 표현하셨더라고요.

 
희주: 엄청나게 터져 나오죠. 나이 60~70 되도록 누가 마을로 찾아와서 프로그램을 하는 걸 처음 경험한 분들이 많아요. 특히 ‘성평등’을 주제로요. 이 사업이 진행하기는 힘들지만, 하고 났을 때 보람은 뭐라 말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지난 이호 서마을 워크숍 때도 그랬고요.
 
호미: 영순 님이 진행하셨지요?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고 들었어요. 강의 때 어떤 말씀을 주로 하시나요?
 
영순: 강의할 때 그러죠. 어떤 마을에 남자, 여자가 똑같이 나가서 공부하고 똑같이 들어왔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고 정치적인 성향들이 다 있다고 봤을 때, 남자들은 청년회장 한번 해봐야 되겠다. 청년회장 임기 끝나면 이장 한번 해볼까, 이장 끝나면 읍면 연합청년회나 연합회장, 또 도의원 해볼까, 농협 이사 해볼까, 이렇게 가지요. 그런데 여성은 부녀회장으로 끝나는 거예요. 이래서 젊은 여성들이 제주에 남겠느냐고 묻죠. 여기 계신 분들부터 ‘욕망하시라’고 하죠. 부녀회장 끝나면 읍면 단위 분회장 하고 그 다음에 이장도 하고 이장협의회도 하고, 도의원도 하시라고.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리죠.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는 없죠. 그게 옆에 있는 분들에게, 특히 노인분들한테 “에~(제주 특유의 야유 비슷한 제지의 말투, 특히 여성들이 나설 때 한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성들이 나서면 옆에서 격려하고 박수 쳐주고 응원하라고 하죠. 여성들한테 지원군이 되어주시라고요.
 
6개 마을에서 성평등 마을규약 통과, ‘엄청난’ 숫자
 
호미: 그런데 이 사업이 정말 쉽지 않은 게, 마을 선정부터 총회에서 규약을 개정하기까지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더라고요.
 
희주: 처음에 마을 부녀회장님께 제안을 드리고, 이장님도 만나뵙지요. 보통 이 단계에서 대부분 거부당합니다. 그렇게 마을이 선정되고, 부녀회와 주민들 대상으로 마을 성평등 문화 프로그램을 해요. 워크숍이나 연극, 영화를 통해서 성인지 교육부터 시작해서 이장, 부녀회장, 부녀회 임원 등으로 구성된 혼디팀(마을회의)를 꾸려서 현재 우리마을 규약을 살펴봅니다. 여기에 활동가들이 참여해 컨설팅 들어가죠. 성평등 표준조항을 학습하고, 개정안을 정리해요. 그걸 부녀회 총회에 부쳐요. 개정안이 확정되면, 마을총회 안건으로 부의하고 여기서 개정이 되는 것까지죠. 그해 안 되면 다음 연도에 또 진행해요. 규약을 바꾼 마을도 후속 프로그램을 하고, 결과 공유회도 하고요.
 
호미: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변화가 눈에 보이나요?

 
희주: 그럼요. 마을의 규약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자기가 마을 주민 자격이 없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주민들이 마을규약을 검토하고 바꾸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죠. 또 부녀회 회원으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알아가죠. 단지 마을규약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성평등 감수성을 훈련하고 발언력이나 역량이 커지게 돼죠.
 
호미: 자신의 손으로 마을규약을 바꿔낸 주민들이 앞으로 어떤 마을, 어떤 제주도를 만들지 기대가 되네요. 사업을 진행한 마을이 17곳이고, 마을규약이 개정된 마을이 6곳이잖아요. 처음에는 얼마 안 되는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엄청난” 숫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9년간의 노력이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가져왔는지 체감되는 게 있나요?
 
은숙: 미디어 채널이나 논문에서 우리 사업을 다뤄주는 경우도 많고, 이번에 제주MBC에서 우리 사업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를 찍었어요. 제주도 성평등 주무부서를 넘어 자치행정국 쪽과 간담회도 했고요. 육지 쪽에서도 성평등 마을규약 개정에 대한 강의 요청이 들어와요. 경북 의성군은 작년에 성평등 마을규약 사업을 시작했어요. 여성친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요.
 
 
호미: 제주를 넘어 한국 사회에 어떤 흐름을 가져오고 있군요. 이 변화가 좀더 힘있게 진행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정책적인 부분을 제안한다면요?
 
희주: 지자체에서 규약개정 사업을 하는 마을들에 인센티브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사업 예산도 늘려야 하고요. 제주도 여성정책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인데, 마을규약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도 마을에 뭐 하나 생기는 게 없어요. 신도3리(2020년)와 금악리(2024년)를 추천해서 제주도 양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은 정도죠.
 
영순: 제주도 성평등여성정책관부터 각 마을 부녀회장, 여성 이장, 농협의 이사 같은 여성리더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나갈 수 있는 부흥회 같은 걸 했으면 해요. 이분들 간에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도록요. 리사무장 워크숍 몇백 명 모아놓고 하지 말고요. 예산도 많이 안 들거든요. 여성들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게 도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성평등 인식 속에서 내가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희열감을 느끼고, 인간의 존엄성을 경험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그 열매를 맛보게 해야죠. 맛있게 먹어본 자만이 또 욕망하지 않습니까?
 
[필자 소개] 호미.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에서 영감을 얻었다) 드러내려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