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부는 바람 ‘성평등한 마을규약 만들기’③ 미랑×승현 대담(上)

2019년부터 현재까지 성평등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이하 제주여농) 김미랑 회장과 제주여민회 김이승현 이사와의 대담을 싣는다.
 
김미랑 씨는 자신이 사는 마을 부녀회에 성평등 마을규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이승현 씨는 2013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 제주여민회 활동을 이어왔으며 현재 성평등 마을 사업의 기획부터 자문, 현장 워크샵 및 특강 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제주여민회, 제주여농, 제주시YWCA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제주 성평등마을사업단 구성원이자 ‘(성평등 마을 만들기) 혼디팀’의 구성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성평등하게!
 
호미: 미랑 님은 자신이 사는 마을을 성평등하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김미랑(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회장, 이하 ‘미랑’): 제가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맨날 성평등을 외치고 다니고 있지만, 정작 우리 마을을 성평등한 마을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리 주민 중에 여자가 반이고 부녀회원들이 마을 일은 다 하는데, 개발위원회에 여성이 극소수인 건 문제라고 이야기했어요. 부녀회장님하고 사무장님한테요. 그게 시작이죠. 성평등 워크숍, 성평등 마을규약을 준비하기 위한 ‘혼디팀’이 구성되어 ‘마을규약 톺아보기’가 진행되었고, 마을 주민 30여명이 참여해서 회의 잘하는 법 관련 1차 워크숍을 했어요. 며칠 전 부녀회장님이 부녀회 총회 날짜를 잡아서 알려주셨어요.
 
김이승현(제주여민회 이사, 이하 ‘승현’): OO마을이 제주에서도 큰 마을이라, 이곳을 성평등한 마을로 바꿔낸다는 건 제주 마을사회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일이죠. OO리는 1가구 1표 투표제도 정착되어있고, 규약도 계속적으로 바뀌어 왔어요. 과거 항일운동도 굉장했던 곳이고 진보적인 기운이 있어요. 하지만 마을이 큰 만큼 여러 동의 부녀회장님들과 합의해 가면서 진행해야 하는 일이라 쉽지 않겠죠. 올해 OO리도 그렇고, 도시형 마을도 진행하고 있거든요. 규모 면이나 도시형 등 다양하게 접근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보편적인 마을 운동, 여성주의 운동으로 한 발 나갈 수 있겠죠.
 

 
“돈을 주고 강사 불렀는데, 왜 여자를 불렀냐?”
 
호미: 제주에서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게 특히 어려울 것 같아요. 제주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여성의 경제적인 책임이나 역할은 비대한 데 비해 정치적 대표성으로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승현: 네. 제주는 여성의 독립성, 책임감 같은 건 어느 지역보다 높아요. 여성들이 경제력도 쥐고 있고, 집안 일과 지역 일도 다 책임지고 해내고 있는데도, 어떤 지역보다 사회적 지위나 권한이 주어지지 않죠.
 
미랑: 같이 농사일을 해도 포장박스에 생산자 명의나 재산 명의는 대부분 남성으로 되어 있어요. 또한, 마을 포제(마을에서 공동으로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유교식 제례)를 지낼 때, 여자들은 부정 탄다고 참여 못 하게 하면서도 일은 다 시키고요. “마을 행사에 부녀회가 빠지면 일이 안 되지” 하면서도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경우는 잘 없죠. 어떤 마을은 축제나 행사에서 장사를 하는데, 부녀회원들이 사정상 참석 못하면 벌금까지 내게끔, 부녀회의 활동을 ‘강제 의무’로 하는 경우도 있어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요.
 
호미: 부녀회의 무임금 봉사, 저임금 노동이 문화이자 제도로군요. 2023년에 성평등마을사업단에서 성평등마을 네트워킹 데이 〈라운드 테이블〉을 열었잖아요. 그때 한 마을에서 성평등 마을 사업에 여성 강사를 불렀다고 “여자가 말이 많더라”, “돈을 주고 사람을 불렀는데 왜 여자를 불렀냐는 말을 들었다”는 후일담을 보고 혀를 내둘렀어요. 그런데, 그게 한 마을만의 사례가 아니었네요.
 
“고생한다”와 “나댄다” 이중잣대

남성의 피해의식과 과잉 정치화, 여성의 정치적 진출 막아
 
미랑: 부녀회원으로 마을일 보조하는 건 “고생한다” 해줘도, 목소리 내는 일에는 “나댄다”고 하죠. 우리가 바깥에서 뭔가 한마디라도 얘기했다 하면, “니네 각시 어디서 뭐라고 말하멍 다념쪄”라며,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해요. 여기는 서로 다 아는 사람이니까요. 우리 남편도 술자리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 들었을 거예요.
 
승현: 남자들 입방아가 정말 세거든요.
 
미랑: 아내가 밖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다니면 남편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너네 각시는 뭐라뭐라 떠들고 다니더라” 입방아 거리가 돼요. 하르방(시아버지)한테도 “삼춘(친척뿐만 아니라 동네의 나이 많은 여성/남성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통칭)네 며느리 잘도 잘나십디다” 하면, 바로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니네 서방 얼굴에 똥칠하지 말라’고 하죠.
 
호미: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큰 것 같은데요.
 
승현: 남성들이 과잉 정치화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에요. 남성들은 한 사람이 너무 많은 모임을 구성하고 참여해요. 전에 도의원 준비하시는 분을 보니까 80개 모임에 회비를 내더라고요. 공식적인 완장을 너무 차고 싶어 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요. 또 실생활에서 여자들이 정말 세다고 느끼기 때문에도 여자들이 설 자리는 안 주려고 하고요. 이런 것들이 다 겹쳐 있죠.
 
 

미랑: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대표 자리를 안 내주는 것도 있지만, 여자들이 돈벌이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애도 키우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어디 나갈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성평등 마을 활동을 하면서 여성농민회에서 지역 방문을 하는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요. 이 사람들이 다 투잡, 쓰리잡을 뛰어요. 경제와 집안일까지 모든 것들이 여자의 몫이에요. 남자는 밭에 갔다 오면 모임 가서 술 먹고, 아니면 텔레비전 보고, 어떤 책임도 안 지는 풍경이 일상적이에요.
 
승현: 제주 여성은 기본이 N잡러예요. 여성뿐 아니라 제주 사람들 대부분 하나의 일만 하고 살지 않아요. 교사라고 해도 주말에는 미깡(감귤) 따러 가야 되고 검질 매러(밭 매러) 가야 되죠. 공무원이나 큰 금융직 아닌 이상은 급여 수준이 낮기도 해요. 제주가 일자리 기회, 임금 수준까지 최하위예요. 남성의 경우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안 벌 수가 없는 구조도 있고, 여기저기 일손 필요한 데는 또 많거든요.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일이지만 그런 일들로 끊임없이 돈을 벌어서 살아가요. 그러면서 자녀 키우고, 집안일까지 책임지죠.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갖거나, 동네 분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그 여성 입장으로는 되게 많은 시간을 내는 거예요. 그 이상은 생각하기 어렵죠.
 
“체육대회 나가라” 젊은 여성들 뒤에서 밀어주는 마을 어르신들,
“질문하겠습니다!” 자기 의견 내는 여성들의 출현
 
호미: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성평등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업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네요.
 
승현: 근데 그렇지만도 않아요. 육지에서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누구 엄마’로 만났거든요? 여기는 그냥 제 이름으로 만나요. 나이만 확인하고, 온전한 개인으로 만나는 거죠. 어차피 한다리 건너면 어떡하든 다 아는 사이니까 ‘누구 엄마’라는 정체성만으로 만나지지 않거든요. 본인의 이름으로 어울렁더울렁 이곳 사람의 기본 관계망으로 들어가지게 되더라구요. 또, 제주 잔치문화가 독특하거든요. 여성들은 누가 내 손님으로 우리 삼춘이 오시면 가서 인사하고, 밥 잘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딱 커피 갖다 드려요.
 
미랑: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몸에 배었어요. 계속 내 손님을 신경 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게 그냥 보여.(함께 웃음)
 

승현: 그러니까 그 ‘보여’가 여성들에게만 내재되어 있단 말이죠. 이게 ‘궨당문화’(혈연·지연의 중첩으로 이웃이 친척처럼 얽히는 제주 특유의 공동체문화)이기도 한데, 여성들의 부녀회 활동에도 나타나요. 그래서인지 제주에서 여성들이 활동할 때 보면, 정말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추진력이 엄청나요. 부녀회나 여성들은 이미 관계·조직·소통·책임의 기술에 도가 터있어요. 가부장적 성역할이 엄격한, 억압적인 공간인 제주 농촌 마을이 동시에 가장 강력한 변화의 현장이 될 가능성 역시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성평등 마을 사업이 가장 빡센 현장이면서 가장 빛나기도 하는 사업인 것 같아요.
 
 
호미: 성평등 마을 사업이 제주에서 시작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8년 조천·애월 실태조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9년 차인데, 변화를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요?
 
승현: 2018년 마을 실태조사 때는 마을 이장단과 개발위원회, 노인회, 이런 분들이 “어디 여자들이 감히!”라고 하는 걸로 분위기를 꽉 압도하고 있는 마을이 많았거든요. 우리가 여기저기 연대활동을 통해 추천받은 마을들이라 상대적으로 진취적인 마을들이었을 텐데도요.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함부로 내뱉지는 못하는 분위기는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미랑: 보통은 행사하면 부녀회는 뒤에서 음식 만들었잖아요. 체육대회 할 때도 그렇구요. 근데 이제 젊은 여성들이 ‘우리도 체육대회에서 참가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죠. 이제 음식 만들다가도 어르신들이 젊은이들한테 ‘체육대회 나가라’, ‘가서 달리기 하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우리는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하고 줄넘기 하고 끝나면 막 달려와가지고 동마다 음식을 준비하고. 이렇게 어른들하고 젊은이들의 중간 역할을 부녀회에서 해왔죠. 이제 그런 시기들도 지나고, 지금은 부녀회가 음식 만들지 않고 출장 뷔페를 부르죠.
 
승현: 맞아요. 정말 부녀회의 변화가 느껴져요. 부녀회 분들이 마을에서 전형적인 성역할을 수행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힘든 구조였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성평등 워크숍을 하면, 3~4분이 “저는 그냥 주민이고 부녀회원이에요.” 하시면서 이 사업을 옹호해주는 발언을 하시는데, 효과가 크더라고요. 이런 변화가 사업 초반과 확연히 달라요.
 

부녀회도 변했다, 성평등 마을 사업의 토양 마련돼
 
미랑: 성평등 마을 워크숍 때도 젊은 여성들이 와서 “질문하겠습니다!” 또박또박 얘기했죠. 부녀회 자체가 바뀌었어요. 부녀회가 지역에서 농약병 수거하기, 폐비닐 같은 영농폐기물 수거, 재활용 같은 사업들을 하면서 자체적인 돈도 만들고 경험도 쌓이면서 강화됐지요. 부녀회 내부도 권위적이고, 회의도 중구난방이었던 몇 년 전과 달라졌어요. 체계도 잡히고, 회의 구조도 안착됐죠. 읍 단위, 도 단위 부녀회 구조도 체계를 갖춰갔고요. 
이렇게 된 데는 젊은 사람들이 부녀회에 들어가면서 예전의 주먹구구식은 이제 안 통한다, 바꿔야겠다는 흐름을 만들고, 그런 사람들이 부녀회장으로 당선되게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승현: 처음에 제가 읍면 단위 마을부녀회 분들을 만날 때는, 회의를 한다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딜 가도 회의 문화에 익숙하시던데, 그게 부녀회가 여러 사업을 해가면서 공적인 목소리를 내본 경험이 쌓이면서 변한 것 같아요.
 
미랑: 이런 변화가 그냥 오지는 않았죠. 제주 농촌 사회가 바뀌는 데에서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농촌에서 농가도우미제도 만들어지고, 농협 복수 조합원제로 여성들이 농협 조합원도 되고, 임원도 되고, 정관도 바꿨거든요. 그걸 위해서 제주여농이 앞서서 투쟁을 해왔거든요. 제주여민회도 계속 활동해왔고요. 이런 제주의 변화가 농촌을 바꿔냈고, 그 결과 부녀회도 변화하게 된 거라고 봐요.
 
호미: 시대가 변하면서 부녀회가 자연스레 변화한 게 아니라, 여러 노력들이 진행된 결과였네요. 성평등 마을 사업도 이런 토양 속에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下 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호미.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지만 다시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에서 빌려 쓴다) 드러내려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