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센터친구의 눈으로 본 ‘출입국 체류자격 매뉴얼’변호사들이 법령이 아닌 ‘매뉴얼’을 펼치는 이유 내가 일하는 ‘이주민센터 친구’는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에게 법률 상담과 소송 구조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이다. 다른 곳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일하는 상근변호사들이 열심히 찾아보는 자료는 여느 변호사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한국의 법령 정보를 총망라한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운영하는 하이코리아(Hi-Korea)를 더 자주 들여다본다. 특히 〈사증·민원 자격별 안내 매뉴얼〉과 〈체류민원 자격별 안내 매뉴얼〉은 거의 필수 참고서다. 이 매뉴얼들은 출입국 업무와 관련해 체류자격별 신청대상과 처리, 절차, 필요서류 등을 안내하는 자료다. 복잡한 체류자격 취득 요건과 연장·변경 요건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분명 이러한 행정청 내부 지침은 대외적 효력을 가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출입국의 세계에서는 늘 ‘원칙’보다 ‘예외’가 더 중요하다. 영어 강사 체류자격,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국적이 중요?국적과 인종을 선별하는 출입국 정책 이주민들 가운데서도 이른바 ‘외국인’, 즉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고 일정한 체류자격으로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은 이 ‘매뉴얼’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해야만 체류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연장해가며 살아갈 수 있다. ‘매뉴얼’에 담긴 요건들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엄정한 법질서의 유지를 지상 과제로 삼는 법무부 출입국 행정의 목적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가 이주민에게 가지는 편견과 혐오에서 비롯된 차별적 내용들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영어 강사의 체류자격이다. 영어 강사는 E-2 체류자격으로 분류되는데, ‘매뉴얼’은 해당 체류자격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의 국적자에게만 부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는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열거한다. 그 외에 영어를 공용어로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여러 국가들은 제외된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국적을 이유로 자격을 제한하는 이러한 규정의 근저에는 인종주의적 논리가 숨어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전체의 10%에 불과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백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매뉴얼에는 없는 체류자격, ‘국민의 양육자’한국인과 혼외 관계에서 출생한 아동을 양육하는 이주민의 처지 한편, ‘매뉴얼’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특정한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부여받을 수 있는 체류자격도 존재한다. 이른바 ‘국민의 양육자’들이다. 한국인과 결혼해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와 달리, 한국인과의 혼인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자녀 양육을 사유로 한 체류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한 이후에야, 법무부는 권고를 일부 수용해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 지침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지침은 여전히 ‘매뉴얼’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러한 체류자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많은 이주민들과 그 주변인들이 알지 못한다. ‘국민의 양육자’들이 한국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식적인 통계조사의 대상도 아니고, 체류자격을 실제로 신청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자녀가 ‘한국인’임을 확인받는 과정 자체가 산 넘어 산이다.
혼인 외 관계에서 출생한 아동은 부(父)가 한국인이더라도, 먼저 모(母)의 국적국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이후 생부가 자신의 자녀라는 인지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아동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고 한국의 등록 체계인 가족관계등록부 역시 만들지 못한다. 생부가 자발적으로 인지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게다가 법원의 인지 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유전자검사 결과가 없으면 국적과에서 국적취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국적취득신고가 수리되더라도, 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민등록을 할 수 없고, 주민등록번호 역시 생성되지 않는다. 이 모든 절차를 거쳐 아동이 비로소 ‘한국인’이 되면, 그제야 양육자는 이를 근거로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자신의 체류자격 근거를 상실한 이들은, 미등록 상태로 체류한 기간에 대해 최대 3천만 원에 달하는 범칙금을 납부해야 한다.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체류자격을 상실하고, 체류가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이들의 빈곤이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 배우자’와 대비되는 ‘국민의 양육자’의 지위한국 사회가 미혼모를 대하는 태도 돌아봐야 이처럼 어렵게 체류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삶에서 보장되는 것들은 자녀에게만 한정된다. 자녀는 한국 국적자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생계 보장을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인 모(母)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원도 제공되지 않는다. 심지어 취업을 하는 것도 크게 제한된다. ‘국민의 양육자’에게 허용되는 노동은 단순 노무직으로 한정되어 있다. 취업에 제한이 없는 ‘국민의 배우자’ 체류자격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단순 노무직에 취업하려 해도, 취업허가를 받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채용이 취소되는 일도 빈번하다. 한 만삭의 여성이 ‘이주민센터 친구’를 찾아온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학위 과정에 등록하여 입국한 유학생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 후, 남자친구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자신이 아직 어리고, 결혼하고 싶지 않으며, 아이를 책임질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결국 학위 과정을 마치지 못하였고, 팬데믹으로 항공편이 끊기면서 본국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센터의 도움으로 어렵게 체류자격을 ‘기타(G-1)’로 변경한 그녀는 혼자서 산부인과를 찾아 아이를 낳았다. 이후 미혼모자시설의 지원을 받아 산후조리를 마친 뒤, 남자친구를 상대로 자녀 인지 및 양육비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그녀는 국가로부터도, 생부로부터도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아이를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아이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할 경우 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父)의 인지에 의한 국적취득 신고도 하지 않았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우리나라에서는 미혼모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아이를 키워요. 모두가 사랑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이 아버지도, 그 부모도 아이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게 너무 이상해요” 한국인인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한국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부정적인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를 지워버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욕설보다 더 섬뜩한 것은 무관심이다. 그러나 ‘국민의 양육자’들은 존재한다. 행정 매뉴얼에는 없는 존재들이지만, 우리의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몸을 가지고 있다. 매뉴얼이 사람을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제도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누구를 보지 않기로 결정하였는지를. [필자 소개] 이진혜. 이주민의 든든한 벗 ‘이주민센터 친구’ 법률인권센터장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chingune.or.kr 인스타그램 @friend79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