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⑤ 훌라 원데이 클래스

예비 할머니 모임에서 근황을 나누는 것이 주된 프로그램이 되면서, 각자의 취미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다들 자신의 취미를 영업하고 싶어했다. 무슨 일이든 같이 할 동료가 필요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서로의 취미를 영업할 수 있도록 자신의 취미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순서가 훌라를 취미로 가지다 못해 훌라 강사 자격증까지 따낸 예비 할머니의 ‘훌라 원데이 클래스’였다.
 
비일상을 선물하는 환대의 훌라
 
올해 5월은 여름 같았다. 여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크림이나 하와이안 셔츠, 훌라.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마포는 훌라의 성지 같았다. 훌라가 카드게임인지 짱구가 추는 춤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각잡고 훌라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하와이 근처도 가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우(훌라 할 때 입는 치마)나 오하나(가족이라는 뜻의 하와이어) 같은 것을 알고 있었다. 채식을 하느라 먹어보지도 못한 하와이의 주먹밥 무스비를 모양만으로 유추해 비슷하게 만들어 팔기도 했다.
 
우리는 마포의 한 공원에 모였다. 평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라고 했지만,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소풍을 나와 있었다. 일상인듯, 일상을 벗어난 그 공간에서 각자 편하게 입고 온 옷 위에 준비된 파우를 골라 입었다. 꽃 목걸이도 걸치고 꽃 머리핀도 꽂았다.
 
바로 춤을 추는 것은 아니었고, 시작은 훌라의 역사 강의였다. 훌라가 어떻게 시작됐으며, 각 동작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배웠다. 훌라가 가진 평화의 메시지를 들으니, 사람들이 왜 훌라를 명상처럼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훌라는 문자를 사용하기 전, 역사나 신화, 자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그 동작 하나하나가 곧 언어다. 특히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훌라는 그 기술보다도 사랑이나 공동체, 환대의 메세지를 담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며 사람들은 잔디 위에 올라섰다. 신발을 벗어도 좋다는 말에 하나둘 쭈뼛대며 신발을 벗고 잔디를 밟았다. 한 참여자는 그 순간이 평범했던 하루가 비일상적인 하루로 전환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훌라를 배우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어떤 일탈의 순간이었겠지만, 나는 그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에게도 비일상의 순간을 선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의 사람들은 한 번쯤 이 예비 할머니들에게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햇살 아래 맨발로 흔들거리는 파우를 입은 예비 할머니들의 움직임. 실상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가기 바빴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본 훌라 수업은 나른한 훌라 음악에 맞춰 하늘하늘 파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됐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입장이었던 나는 그림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쭈뼛거리던 참여자들도 시간이 지나니 선생님의 가르침에 집중했고, 그러자 공원의 사람들 역시 조금씩 수업에 빠져들어 손동작을 따라 하거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훌라를 축제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같이 하자’고 한 마디 거들어야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도 아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훌라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순히 외워야 하는 안무가 아닌 자연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연대와 환대, 사랑을 이야기하는 훌라는 문턱이 높지 않고 흔들흔들 나른한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그만이다.
 
그런 훌라의 정신을 가장 즐겁게 활용하는 곳이 ’선샤인아놀드훌라‘이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은 발달장애 청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는데, 그 활동 중 하나가 ‘선샤인아놀드훌라’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훌라를 배우고 춘다. 전해듣기로는 정해진 동작을 배우는 시간 뒤의 훌라 음악에 맞춘 막춤 시간이 인기라고 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훌라니까.
 
내가 ‘선샤인아놀드훌라’를 알게 된 것은 이들이 어느 축제에 연대하기 위해 참여한 게스트 무대에서였다. 사부작 청년들의 취미 동아리인줄 알았는데 공연도 한다고? 아무래도 축제의 현장에는 음악과 춤이 빠질 수 없으니까. 그건 하나의 발상의 전환 같았다.
 
안 그래도 예비 할머니들은 취미가 많다. 요리나 일기 쓰기, 스포츠 관람 같은 일상적인 활동부터 풋살이나 배드민턴, 훌라같은 춤, 악기 연주처럼 조금은 비일상적인 활동들이 혼재했다. 나는 이 일상적이고도 비일상적인 우리의 작업들이 한데 모이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마치 학예회처럼, 어디 자랑할 데 없이 그저 갈고닦기만 해온 실력들을 전시하는 할머니가 되는 꿈.
 
어떤 취미든 오래하려면 작은 목표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학예회는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까?
 
서로의 용기가 되는 순간
 
다시 그 날의 공원으로 돌아가보면, 공원에 온 사람들 중 우리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거라 단언한다. 어떤 퍼포먼스라도 열리는 걸까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힐끗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부터,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사람까지, 이 활동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잔디 위에 오르기까지는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슬로건으로 들어왔던 ‘서로의 용기가 되는 순간’이 그날의 잔디 위에 있었다. 이 장면을 두고 한 참여자는 여성 공동체가 가시화되는 순간으로 느껴져 뜻깊었다고도 했다.
 
그 넓은 공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나온 것 같았다. 많은 여성들이 취미도, 배우는 것도 많으며 삼삼오오 모여서 수 많은 작당모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녀들을 찾으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해지곤 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여성공동체를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날 잔디 위의 훌라 추는 여성들은 공원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가 됐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각자의 인생을 조용히 살면 안되겠냐고, 왜 그렇게 나대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삶의 모양이나 스펙트럼을 보고 듣고 경험함으로써 나의 인생을 상상해 보고 설계할 수 있기도 하다. 그날 공원에서 우리의 훌라를 본 사람들이 훌라 추는 여성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생활공동체 세레모니’를 하고 싶다. 어쩌면 결혼식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나의 가족을 소개하고 공표하는 동시에 다양한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내 가족을 외부화하는 과정에서 더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고 결속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가족’이라는 선언 목적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생활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지내왔는지 보여주고 싶다. 가족은 형태나 모양보다 실제가 더 중요하니까.
 
여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이건 하나의 성과공유회 같기도 하고 가맹점 창업설명회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된거 생활공동체들 간의 연합 총회를 열어버리면 어떨까? 그게 곧 우리의 학예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취미도 모이면 축제가 된다: 현재를 응원하기 위한 미래를 꿈꾸기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얼굴을 보며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학예회든, 총회든, 성과공유회든 그 이름은 중요치 않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길을 외롭지 않고 즐겁게 걸어가기 위함이다.
 
훌라를 배우며 그 넓고 사람 많은 공원에서 파우를 입고 꽃목걸이를 한 채 신발을 벗어 던지고 잔디 위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건,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축제를 우리들끼리만 하고 싶진 않다. 좁은 선택지 위에서 외로웠을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축제를 열고 싶다.
 
가령 연 1회 무대가 있는 공간을 대관하여 각 지역의 다양한 생활공동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다. 꼭 생활공동체가 없다 해도, 생활공동체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참여할 수 있다. 이런 행사에는 음식이 빠질 수 없는데, 각 집안을 대표하는 음식 1종을 5인분 정도 만들어 가져오는 포트럭 파티로 진행되면 좋겠다. 처음 보는 얼굴,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혼재되어 서로가 서로를 소개시켜주고 반갑게 맞이하는 환대의 시간 뒤,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으로 선물을 건 생활공동체 간 대결을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다음은 각 생활공동체 소개. 어떤 조합으로 어떻게 모이게 됐으며 몇 년 정도 함께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난 1년간 해왔던 가족 활동을 간단하게 브리핑한다. 이후 그동안 갈고 닦은 취미생활의 성과를 자랑한다. 조용한 성향의 생활공동체는 취미가 글쓰기여서 낭독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생활공동체는 차력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생활공동체는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내가 소속된 생활공동체의 목표는 가족 밴드를 하는 것이고, 나는 3개월째 기타를 배우고 있다. 이 꿈의 무대가 실현되는 미래가 오면 노래 한두 곡 정도는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축제에 빠질 수 없는 환대와 연대의 훌라 공연을 해줄 생활공동체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지난 ‘훌라 원데이 클래스’에서 누군가의 마음 속에 훌라가 잘 심겼길 바라며, 예비 할머니들의 지속가능한 취미생활을 응원한다.
 
[필자 소개] 콩쥐야: 알 수 없는 미래에 혼자 벌벌 떨다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헤쳐나가기로 함. 현재 생활공동체를 실험 및 공부하고 있으며 이후 ‘생활공동체 연대체’설립을 꿈꾸는 생활체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