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 산업부장
美대법원 판결에도 좀비처럼 회생
韓기업들 美관세에 대응 전략 마련
여야 대미투자특별법 합의 처리해
불확실성 지우고 담대하게 나가야미국 연방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일방적인 힘을 앞세워 전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20일(현지시간) 내렸다. 지난해 1·2심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이미 “위법하다”는 판결이 떨어져 미 대법원의 결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최종 판결로 상호관세가 곧장 힘을 잃게 되고, 이미 부과된 관세도 환급을 해야 하는 만큼 그 영향은 막대하다. 위법 딱지가 새겨진 상호관세에 대한 환급 요구가 쏟아져 “엉망진창이 될 것”이라는 미국내 우려 속에 환급액도 1750억 달러(약 254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실정이다.
불법으로 전락한 미국의 상호관세는 애시당초 이름조차 이상했다. 미국만 수입품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뿐 상대국이 유사한 관세를 미국 수출품에 매기는 것은 아니어서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기 출범 후 얼마 안돼 자동차에 25%, 철강·알루미늄에는 50%의 품목 관세를 별도로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관세 협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대가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도 15% 관세만 물게 됐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오래 전부터 자동차 등 주요 공산품의 대미 수출 관세가 0%로 사라졌는데 작년부터 다시 25%·15% 관세를 추가 부담하게 됐으니 기업들은 불공정을 넘어 황당한 수준의 무역 질서를 감내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가 생산한 차는 오늘도 무관세로 한국 시장을 달리고 있지만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에서 만든 자동차는 태평양을 건너면 15%의 관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정의의 보루라는 의미에서 ‘저스티스’(Justice)로 불리는 미 연방 대법관 9명 중 6명이 미국의 양심을 지켜낸 듯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심판의 날’을 맞은 건 아니다. 자동차·철강 등 고율의 품목 관세는 그대로인데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무력화된 상호관세를 대신할 ‘글로벌 관세’(worldwide tariff)를 10% 부과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다음 날 엿장수처럼 글로벌 관세를 15%로 인상한다고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글로벌 관세의 근거가 될 무역법 122조로는 150일 밖에 관세를 매길 수 없자 이를 보완해 지속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할 준비도 하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하는 한 그가 애정하는 관세는 좀비처럼 살아나 세계 경제를 괴롭힐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불공정하지만 더 이상의 혼돈이 없기만을 원하고 있다. 실제 1년 동안 세계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각종 관세에 대응해 가격과 생산 전략을 다시 짠 기업들은 관세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또 시장을 흔들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갑자기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위협한 것이 미 대법원 판결로 일단 제동이 걸리고 시간을 벌게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당장 대법원의 관세 판결에 대한 대응 조치를 마련해야 하고, 이란 핵문제 처리도 발등의 불로 다가온 만큼 한국에 대한 관세를 빠르게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서다.
미 대법원 판결이 한미 관세 합의와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만큼 이제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을 적극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해 약속 시한내 처리하는 일이 남았다. 여야가 지방선거에 앞서 사법개혁과 행정통합 등을 놓고 대치 중이지만 국가와 기업의 명운이 걸린 대외 통상정책에는 초당적인 면모를 보여야 한다.
한미 관세 합의와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방안을 어렵게 끌어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여기 내용 중에 공정한 내용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상식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 속에 응축된 국제 경제와 안보 상황의 냉철한 현실을 여야 정치인들이 깊이 숙고하고 협치에 담대하게 나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