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키 썼던 '최초'의 역사, 결승선 코앞에서 멈춰선 기적
열·몸살에 어깨 부상까지… 악전고투 속 투혼으로 일궈낸 결선행
"십자인대 끊어져도 3차 런 고집"… 설원에 부서진 간절했던 꿈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씩씩하게 올 것"… 눈물 닦고 약속한 '다음 비행'


[파이낸셜뉴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한국 프리스타일 스키의 새 역사를 쓴 이승훈(한국체대)의 생애 첫 올림픽 결선 무대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차가운 눈밭 위, 들것에 실려 나가는 그의 등 뒤로 누구보다 간절했던 꿈이 부서져 내렸다.
21일(한국 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하프파이프 결선 출발 명단에 이승훈의 이름은 없었다.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한국 스키 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닥친 불운에 발목을 잡혔다.
그의 결선 진출은 이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승훈은 결선이 끝난 뒤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당일 아침부터 펄펄 끓는 열과 지독한 몸살과 싸웠고, 예선을 치르며 다친 오른쪽 어깨를 이끌고 결선 연습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76.00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로 10위를 기록하며 기어코 상위 12명에게만 허락된 결선 티켓을 거머쥐었던 터라 아쉬움은 더욱 컸다.

기적은 결선 문턱에서 멈춰 섰다. 다친 어깨를 부여잡고 나선 결선 직전 연습에서 착지 실수로 오른쪽 무릎이 파이프에 강하게 부딪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연습 도중 무릎을 다쳐 실려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3차 시기만이라도 타보려고 다시 출발선으로 올라갔다는 이승훈은, 부상이 생각보다 심해 결국 병원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 검진 결과는 전방 십자인대 파열, 외측 연골 손상, 그리고 외측 뼈 타박이었다. 스키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다. 그는 넘어진 후 뭔가 잘못된 걸 알았을 때도 꿈에 그리던 올림픽 결선 무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결선에서 자신의 전부를 보여주고 싶었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올림픽을 준비했다는 그의 덤덤한 회고에서는 짙은 아쉬움과 설원을 향한 지독한 갈망이 묻어났다.

사상 첫 결승 무대를 자신의 손으로 놓아줘야 한다는 사실은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했다. 이승훈은 이런 안타까운 일로 첫 결승 무대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잘 받아들이고 열심히 재활해 다음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씩씩하게 다짐했다. 아울러 여기까지 오게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두 번째 올림픽에 설 수 있었고 '최초'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며 주위에 감사함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으로 그는 파이프 종목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어 기쁘다며, 하프파이프를 더 많이 알려준 고마운 후배 최가온의 금메달을 축하하는 대인배다운 면모를 보였다. 비록 메달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한계와 통증을 이겨내며 은빛 설원을 수놓은 이승훈의 투혼은 이미 금메달보다 더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