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월 720만t 수출했지만 사실상 '제로'
러 최대 터미널 폐쇄·우크라 입항선박 0척
다뉴브·육상 대체로까지 공격 확대
세계 밀값 1년 새 30% 올라 [파이낸셜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 교전이 격화하면서 세계 곡물시장의 핵심 수출 통로가 사실상 마비됐다. 양국의 곡물 수출 능력이 1년 만에 97% 이상 사라진 가운데 세계 밀 가격은 30%가량 뛰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대체 수송로까지 공격하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항만을 타격하면서 '곡물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세계 식량 가격의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 최대 터미널도 멈췄다…우크라 입항 선박 '0'
21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능력은 지난해 곡물 수출 시즌보다 97% 이상 감소했다.
양국은 지난해 흑해와 아조우해 터미널을 통해 월평균 720만t의 곡물을 수출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의 흑해 터미널에서는 곡물 선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공식적으로 폐쇄되지 않은 수출 시설은 투압세 지역의 소규모 터미널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곳의 곡물 처리 능력은 월 약 16만t에 불과하다.
카자흐스탄곡물연합 관계자는 "현재 흑해에서 민간 선박 운항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주요 곡물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의 터미널들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모두 폐쇄됐다. 러시아 최대 곡물 터미널인 KSK와 타만 터미널 등도 곡물 반입과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이달 밀 수출량은 180만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달 기준으로 201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오데사항 인근에 집중된 곡물 수출항은 지난달부터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장관은 이달 중순 기준 입항 선박이 한 척도 없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수출용 곡물 출하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급감했다.
수출 중단은 양국 모두에 경제적 부담이지만 농업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에는 특히 치명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외화 수입의 절반 이상을 농산물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외화를 확보하는 핵심 통로가 막힌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에 흑해에서 민간 표적에 대한 상호 공격을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는 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항구 넘어 철도·도로까지 공격…세계 밀값 30% 뛰어
흑해를 둘러싼 '곡물 전쟁'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오데사항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러시아는 지난주부터 우크라이나 남부 전역으로 타격 범위를 넓혔다. 흑해 항만이 막힐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다뉴브강의 이즈마일항 등 대체 수출항도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
철도와 도로 등 육상 수송망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밤 오데사 지역의 몰도바 국경 인근 검문소 등을 이틀 연속 공격했다. 이 여파로 인근 차량 통행이 중단됐다. 흑해 항만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외부로 반출할 수 있는 대체 경로까지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흑해 연안 지역을 공격하며 맞서고 있다. 국경에서 1600㎞ 떨어진 페름 지역 정유공장과 볼고그라드 지역 군 비행장 등 러시아 후방 시설도 공격 대상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SU-34 전투기와 드론 보관·발사시설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양국이 세계 곡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도 세계 5위권의 주요 수출국이다. 두 나라의 수출 차질이 동시에 장기화하면서 세계 밀 가격은 1년 전보다 약 30%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
특히 흑해 항만뿐 아니라 다뉴브강과 육상 대체 수송로까지 공격 대상이 되면서 단기간에 수출 능력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양국이 상대의 곡물 수출망을 전쟁 수행을 위한 주요 경제 기반으로 보고 공격을 이어갈 경우 곡물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