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美 세계질서 유지 능력 의문"
패트리엇·사드 등 재고 절반 소진 추정
전쟁 전 수준 회복에 3년 이상 걸려
韓·유럽선 동맹 방어 의지까지 불신

[파이낸셜뉴스] 이란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핵심 무기 비축량이 급감하면서 미국이 이전처럼 세계질서를 유지할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 정책으로 미국의 '방어 의지'에 대한 불신이 커진 데 이어 무기 부족으로 '방어 능력'까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전쟁으로 미국의 무기 재고가 빠르게 줄면서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 사이에서 미국의 억지력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무기 고갈 우려를 부인하고 있지만 일부 핵심 미사일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재고를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된다.
매슈 크로니그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억지력은 능력과 신뢰성의 문제"라면서 과거에는 미국이 실제 동맹을 방어할 것인지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그럴 능력이 있는지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동맹국의 불안은 이미 커진 상태였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동시에 방위비 증액과 관세를 앞세워 동맹국을 압박하면서 미국의 안보 공약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WSJ은 최근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북한에 대화를 제안한 것도 이런 우려를 키운 사례로 꼽았다.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과 탄도미사일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전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위협적이지 않은 국가로 규정하고 훈련 개시 당일 규모를 줄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란전쟁이 미국의 군사적 여력까지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에 전략자산이 집중되면서 인도태평양에 배치됐던 미군 전력 일부도 이동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탄도미사일 생산 속도가 미국의 요격미사일 생산 능력을 앞지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이 이란전쟁에서 패트리엇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밀타격미사일(PrSM) 등 일부 핵심 무기의 전쟁 전 재고 가운데 약 절반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토마호크와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JASSM 등도 약 3분의 1이 소진된 것으로 분석했다.
재고를 다시 채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CSIS는 현재 생산 전망을 기준으로 패트리엇과 사드, 토마호크의 재고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해상 요격미사일 SM-3와 SM-6도 약 2년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무기 부족이 이란전쟁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대한 억지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다. 특히 이란전쟁에 필요한 미사일 상당수가 대만해협 유사시에도 사용해야 하는 무기라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미국외교협회(CFR)는 이달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줄어 현재로서는 중국의 대만 공격을 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사일 생산을 즉각 전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실제 충돌이 발생한 뒤 생산 확대에 나서면 늦는다고 경고했다.

유럽에서도 미국의 방어 공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독일 연방군 대령 출신 로데리히 키제베터 기독민주당(CDU) 의원은 WSJ에 "미국이 발트국이나 독일을 위해 자국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임을 모두 알고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존 뷰 킹스칼리지런던 전쟁학부 교수도 요격미사일과 미사일 방어체계 부족이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며 중동뿐 아니라 유럽 방어의 중대한 취약점으로 인식되고 있고 아시아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당장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다는 시각도 있다. 싱가포르의 빌라하리 카우시칸 전 외교관은 군수품 재고가 결국 보충될 것이라면서 중국도 국내 문제가 산적해 있고 대만 문제를 놓고 무모한 도박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이란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무기 부족이 오히려 미국과 서방의 방위산업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국방부는 2027회계연도 국방예산에서 군수품 확보에 950억달러를 요청하는 등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공장을 늘리고 공급망을 확보해 실제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