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무기 비축량이 크게 줄어든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국제사회에서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수석 대외정책 기자가 작성한 안보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동맹을 지원할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데 이어 무기 재고 부족으로 실제 '능력'까지 바닥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매슈 크로니그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억지력은 능력과 신뢰성의 문제"라며 "예전에는 미국이 정말 그렇게 해줄 것인지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가 됐다"고 짚었다.
WSJ은 최근 한미 연합훈련 규모가 일방적으로 축소되고 미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안한 것을 동맹 방어 능력과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온 사례로 꼽았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과 탄도미사일을 지원하며 유럽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이 북한의 위협 수준을 낮게 평가하고 훈련 첫날 규모를 줄인 점이 동맹의 우려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이란전 장기화로 아시아에 배치됐던 미군 전략자산 상당수가 중동으로 이동한 점,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탄도미사일 생산 속도가 미국의 요격미사일 생산량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지목됐다.
유럽에서도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독일 연방군 대령 출신인 로데리히 키제베터 기독민주당(CDU) 의원은 "미국이 발트국이나 독일을 위해 자국 안보를 걸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이미 확산돼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은 무기 고갈설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핵심 무기 재고가 위험 수위까지 떨어졌고, 이를 채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는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패트리엇과 사드(THAAD) 요격미사일 재고가 이미 절반가량 소진됐고, 토마호크 및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 JASSM도 3분의 1 수준이 사용된 것으로 추산했다.
이달 나온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는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고갈돼 더 이상 중국의 대만 공격을 억제할 능력이 없다"고 진단했다. 분쟁이 시작되기 전에 즉각 전시 생산 체제로 전환해 미사일 증산에 나서야 하고 분쟁이 시작된 뒤에는 너무 늦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뷰 킹스칼리지런던 전쟁학부 교수도 "요격미사일과 미사일방어체계 부족이 여러 전장에서 동시다발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걸프 지역은 물론 유럽 방어의 중대한 결함으로 작용하고 아시아에도 심각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WSJ은 당분간 동아시아에서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전했다.
싱가포르의 정치분석가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군수품은 다시 채워질 것"이라며 "중국은 국내 현안 해결이 시급한 데다 대만 문제에서 무리한 도박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드슨연구소의 루도빅 후드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서방 강대국들이 그동안 방심하기 쉬웠던 사정을 고려하면 이런 경각심이 필요했다"며 "전쟁 자체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향후 더 어려운 전략적 상황에 대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