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크루서블 참석자에 후속 서한
석포제련소 시스템·인력 활용 가능성 제시
고려아연 "사업계획에 없는 내용" 반박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을 둘러싸고 MBK파트너스·영풍과 고려아연 간 갈등이 미국 현지 활동으로 번지고 있다. MBK·영풍 측이 고려아연과 사전 협의 없이 프로젝트 관련 리셉션을 연 데 이어 참석자들에게 석포제련소의 시스템과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후속 서한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MBK·영풍 측은 지난달 9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열었다. 행사에서 자신들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 소개하며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과 협력 의사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를 직접 추진하는 고려아연과 사전 협의 없이 프로젝트 명칭을 내건 행사를 연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측은 충돌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5일 관련 미국 활동을 문제 삼아 영풍·MBK 측 주요 관계자들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영풍·MBK 측은 최대주주로서 미국 현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한 정당한 활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에는 리셉션 이후 미국 현지 참석자들에게 보낸 이메일과 서한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해당 서한에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관리 시스템과 운영관리 체계를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과 미국 측 관계자들의 석포제련소 견학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측은 석포제련소의 시스템이나 인력을 미국 통합제련소에 활용하는 방안은 논의되거나 합의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사업 주체가 고려아연인 만큼 미국 제련소에 적용할 기술과 운영 시스템, 투입 인력 역시 고려아연의 사업계획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프로젝트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것과 실제 제련소에 어떤 시스템과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실제 사업계획에도 없는 내용이라면 누구와의 협의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미국 관계자들에게 설명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석포제련소와 미국 통합제련소의 공정 차이도 논란의 배경이다. 석포제련소는 아연 제련을 중심으로 아연과 황산 등을 생산한다. 반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아연·연·동 공정을 연계해 금·은 등 귀금속과 인듐·안티모니·비스무트 등 희소·전략금속까지 생산하는 통합제련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온산제련소는 각 공정에서 나오는 중간물과 부산물을 다른 공정의 원료로 활용해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려아연은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도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이 같은 온산제련소의 통합제련 모델을 미국에 구축하는 사업이다. 회사 측 계획에 따르면 미국 통합제련소에서는 아연·연·동 등 기초금속과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총 12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예정이다.
제련업계 관계자는 "아연을 생산한다는 공통점만으로 온산과 석포를 같은 종류의 제련소로 보는 것은 실제 공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며 "아연·연·동 공정을 연계해 다양한 전략광물을 회수하려면 해당 통합공정을 실제로 운영해온 기술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포제련소를 프로젝트 크루서블과 연결하는 것이 미국 사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석포제련소는 환경 문제로 행정처분과 사법 판단을 받아왔고, 물환경보전법 위반에 따른 대법원 확정판결로 2025년 2월 26일부터 4월 24일까지 1개월 30일간 조업을 중단했다.
토양과 지하수 정화 문제는 회계 제재로 이어졌다. 영풍은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충당부채 과소계상 등 회계처리기준 위반을 이유로 204억741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양측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자금조달 방식을 놓고도 맞선 바 있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 측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자 영풍·MBK 측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영풍·MBK 측은 프로젝트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현 경영진의 우호지분 확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해왔다.
이후 영풍·MBK 측은 미국에서 프로젝트 지원 의사를 강조하며 현지 관계자들과 접촉해왔다. 이번 후속 서한까지 공개되면서 석포제련소의 시스템과 인력을 미국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이 실제로 고려된 것인지, 고려아연과 어떤 협의가 있었는지가 새 쟁점으로 떠오른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주체와 협의되지 않은 시스템이나 인력 활용 방안이 미국 측에 전달됐다면 혼선을 키울 수 있다"며 "실제 적용 가능성과 권한 관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