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는 차분히, 슈퍼 301조 대비는 철저히-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교역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상호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 위법이란 판단이 대법원에서 내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효력을 잃은 상호관세 대신 즉각 모든 수입품에 15%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한층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교역 국가에 대해 10% 기본관세와 대미 무역흑자 규모에 따른 추가 관세 등을 부과하는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미 대법원은 “반세기 동안 관세 부과를 위해 IEEPA를 원용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관세 피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낸 미국 재계와 12개 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IEEPA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과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6 대 3 보수 우위 구도인 미 대법원에서 핵심 무역정책 수단인 상호관세가 무력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관세를 둘러싼 미국 내 정치적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IEEPA를 근거로 한 관세에 국한된 것이어서 교역 상대국에는 트럼프발 관세 위협이 말끔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무역법 122조를 동원해 ‘글로벌 관세’를 부과했다. 미 대통령은 심각한 무역적자 등의 비상 상황에서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의회 동의 없이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까지 부과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우회 관세’ 수단들을 꺼내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발 관세의 여진에 한국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은 커지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당장 이번 판결로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10%)가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 무역가중평균 관세율이 36.8%에서 21.2%로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이 틈을 타고 밀어내기 수출 공세를 펼치면 한국 기업이 타격을 받게 된다.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대한 미국의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라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앞으로 미국의 상호관세가 다른 형태의 고율 관세로 대체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판결 이후 무역 합의를 번복하려는 국가에 대해서는 고율 관세로 본보기 보복에 나설 수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 입법 절차 지연을 문제 삼아 지난해 한국과의 관세 합의를 깨고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관세를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경고한 상황이다.
대미 투자는 관세 외에도 핵추진 잠수함 등의 다른 전략적 합의와도 맞물려 있다. 우리가 대미 투자 속도를 늦추는 모습을 보이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면 보복의 집중 타깃이 될 수 있다. 일본, 대만도 대미 투자를 철회하거나 재협상에 나설 움직임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후속 조치로 무역법 301조에 따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걱정스러운 일은 미 무역대표부(USTR) 등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과 차별적 조치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일방적 주장이 무역 보복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적극 협상할 필요가 있다. 대미 투자는 차분히 준비하고 미국의 대체 관세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