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편견·차별 뚫고 탄성 연구 등 업적 쌓은 佛 소피 제르맹
한국은 이공계 석박사 여성 이탈 심각… 문화 바꿔 인재 지켜야



에펠탑에 추가로 새겨질 여성 과학자 72명 명단이 지난 1월 26일 발표되었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파리 에펠탑에는 현재 남성 과학자들만 새겨져 있다. 자유·평등·박애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이지만, 이처럼 여성은 소외되어 있었다. 노벨상을 2회나 수상한 마리 퀴리조차 남성 중심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여성 과학자들을 존중하려는 문화가 움트고 있었다. 이번에 마리 퀴리와 함께 72명에 포함된 소피 제르맹(Sophie Germain)은 이를 잘 보여준다.
1806년 나폴레옹 군대가 독일을 침공하자 수학자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가 위험에 처한다. 이 지역을 지배하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다 사망한다. 공작은 어린 수학 천재 가우스를 발굴하고 후원한 인물이다. 24세 신예 가우스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 ‘산술 연구’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헌정된 것은 이 때문이다. 공작의 사망 후 가우스는 나폴레옹 군대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때 프랑스 장교가 가우스를 찾아내 소피 제르맹이라는 여성의 편지를 건넸다. 처음 듣는 프랑스 여성이 보낸 사연은 이랬다. “제가 당신에게 완전히 낯선 존재는 아닙니다. 다만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조롱받는 것이 두려워 당신과 연락할 때 르블랑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순간 가우스는 놀랐다. 르블랑은 오랫동안 편지 교환을 하던 수학자였다. 소피 제르맹은 존경하던 수학자 가우스가 전쟁 통에 목숨을 잃은 아르키메데스처럼 될까 봐 프랑스군에게 부탁하고, 이를 위해 할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소피 제르맹이 열세 살이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부모는 급변 사태에 외출을 금지했고, 무료한 그녀는 수학 서적에 빠져들었다. 특히 로마군을 마주한 순간에도 수학을 놓지 않았던 아르키메데스에게 매료된다. 독학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그녀에게 1794년 혁명 정부가 석학들을 모아 개교한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강의 노트를 구해 독학했다. 그리고 르블랑이라는 남성 이름으로 수학 교수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에게 논문을 보냈다. 천재성에 놀란 라그랑주는 곧 르블랑이 여성임을 알게 되지만, 오히려 적극 후원했다.
1801년 가우스의 ‘산술 연구’가 출판되자 3년 동안 파고들어 자신만의 증명을 편지로 가우스에게 보냈다. 이번에도 르블랑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가우스는 편지에 담긴 수학적 통찰에 놀랐고, 계속 편지를 교환했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군의 점령 소식이 전해지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인맥을 동원해 가우스의 안전부터 챙긴 것이다. 하지만 여성임이 드러나자, 걱정스레 편지를 마무리했다. “제가 오늘 털어놓은 비밀로 그동안 베풀어주신 명예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가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 서신을 교환해 오던 경애하는 르블랑 씨가 여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의 존경과 경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요. 추상 과학, 특히 신비로운 수론에 대한 재능은 매우 드뭅니다. 이 매력적인 학문의 아름다움은 이 학문을 깊게 파고 들어갈 용기를 가진 이들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과 편견 때문에 남성보다 무한히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여성이 이 학문에서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면, 정말 고귀한 용기와 특출한 재능을 지닌 뛰어난 천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소피는 고체의 탄성(彈性) 연구에 업적을 쌓았고, 1816년에 이 공로로 여성 최초로 파리 과학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로 아카데미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때 대학자 푸리에(Joseph Fourier)가 나서서 해결해 준다. 그녀는 페르마 정리에 대해서도 상당한 업적을 보였다. 남성 학계의 차별에도 수학자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는 그녀와 협력했고, 그녀는 유방암 투병 중에도 연구에 매진했다. 1831년 가우스는 독일 괴팅겐 대학이 그녀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하도록 적극 주선했지만, 그녀는 그 전에 사망하고 만다.
지난 2월 11일 세계 여성 과학인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2026 여성과학기술인 글로벌 현황 진단’을 발표했다. 한국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2024년 기준 54.9%로 OECD 평균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연구 인력 비율은 2023년 기준 23.7%로 OECD 평균에도 못 미치고,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 비율도 38개국 중 37위였다. 학부를 졸업한 뒤 석박사로 갈수록 여성 이탈자가 많기 때문인데,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사회적 인식이다.
UN의 성평등지수(GSNI)에서 한국은 89.9%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중 경제적 편견 지수는 OECD 평균보다 4배나 높아 여성이 채용이나 승진에 심한 제약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탈자가 많은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우리 과학 인프라에서 인재라도 제대로 지켜내려면 성평등 문화부터 뿌리내려야 한다. 편견과 차별 속에 꽃핀 소피 제르맹의 탄성 연구는 에펠탑 건설에 활용되었고, 그녀와 함께했던 라그랑주, 푸리에, 르장드르는 모두 에펠탑에 새겨졌다. 사회적 인식이 제대로 없었던 그 순간에도 대학자들이 과학의 성평등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에펠탑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