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로 희생된 시민들을 기리는 묵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고급 호텔 연회장에서 열린 이란 이슬람 혁명 47주년 행사에서 주한 이란 대사가 한 말이다. 그는 최근 이란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대해 “정부는 평화로운 집회 권리에 대한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소요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자제하고 절제했다”고 주장했다. 무력 진압으로 숨진 이들은 ‘테러 세력의 희생자’로 둔갑했고, 행사장에 있던 이들은 연출된 추모에 동원되고 말았다.
이란 정부의 설명은 현실을 가리기 급급하다. 외신 취재를 전면 봉쇄하고 인터넷까지 차단한 뒤 “희생자들이 배후가 있는 테러 세력에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이 시기에도 인권 탄압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내정 간섭’이라는 한가한 논리로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이 군을 동원해 고의로 대량 살상을 벌였다는 구체적 증거가 국내외에서 드러나고 있다. 희생자가 시위대가 아닌 정부군이었다는 가짜 문서에 유족 서명을 강요하거나, 체포 후 변호인 접견을 막고 서둘러 사형을 집행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가 차원의 은폐 시도를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지인을 잃은 재한 이란인은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 기념 행사를 열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자국민을 살해한 공권력이 추모의 시간을 마련하는 장면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떠올렸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 청년들을 최전선으로 내몰았다. 청년들을 사지로 떠민 장본인이 전사자들의 초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무자비한 권력이 주도한 추모 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국가 폭력과 인권 탄압이 무엇인지 우리는 가까이서 보고 있다. 머리맡의 김정은 정권은 지금도 2500만 주민을 상대로 잔혹한 인권 탄압을 벌이고 있다. “먹고살게 해달라”는 절규조차 허락되지 않고, 정권에 반발하는 시위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고 싶었던 20대 공학도 청년, BTS를 좋아했던 10대 소녀의 생죽음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벌어진 ‘이란 추모 쇼’는 더 불편하고 씁쓸하다.
이란 정부는 시위대를 향한 잔인한 공격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IS 방식과 유사하다고 했다. 뒷통수와 이마를 관통당해 아스팔트 바닥에 널브러진 청년들의 시신을 떠올리면 지나친 비유가 아니다. 그러면서 “테러 행위로 희생된 무고한 국민의 생명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대가를 치른다’는 그 말대로만 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