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대구의 한 유생은 대구의 한자를 ‘大丘’에서 ‘大邱’로 바꾸자는 상소를 올렸다. ‘구(丘)’ 자가 공자 이름과 같아 향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불경스럽고 인심을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영조는 이를 일축했으나 정조 때부터 두 한자를 혼용하기 시작하더니 철종 이후에는 ‘大邱’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