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법 다섯째
저절로 떨리는 세계를 가질 것
그대 정신의 미세한 파장
파장의 목덜미를 크게 잡아 버릴 것
과녁으로 걸리는 그대 영혼 한 뼘을 향해
팽팽하게 시위를 잡아당길 것
매순간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것
쓰러지는 소리 가슴에 쾅쾅 못박아 버릴 것
비로소 화인(火印) 한 장
넋받이로 비축할 것
-고정희(1948~1991)

이 시는 활에 화살을 메겨서 쏠 때 그 화살이 날아가 꽂히는 과녁을 지니라고 말한다. 과녁에 꽂힌 화살이 작은 폭으로 연속해서 흔들리는 격렬한 파장을 새겨 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녁은 곧 나의 영혼과 나의 가슴 한복판으로 여기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의 가슴 한복판에 지극한 희열만을 가질 것을 권하지 않고, 설움이나 비탄과 같은 쓰러짐도 함께 가질 것을 권한다. 다만 시위를 당길 때 안간힘을 다하듯 빈틈이 조금도 없는 치열함을 놓지 않는 것이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요, 사랑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연후에야 불도장 같은, 언제고 다시 살아나는 사랑의 기억을 심중(心中)에 품고 살 수 있다고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기대는 어떤 높낮이를 갖춰야 할까. 시인은 시 ‘사랑법 첫째’에서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