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협이 급증해
전략적 우선순위 재조정
주한미군 역할도 달라져
우리가 중국 눈치 보느라
협력과 훈련을 기피하면
美도 한국 방어 연연 않을 것



백악관이 작년 12월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 문서는 미국 안보 전략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인도·태평양, 특히 동아시아로 대폭 이동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인식을 반영하는 이 문서는 미국의 국익을 본토 방어와 가시적·경제적 이익 중심으로 재정의하면서, 미·중 전략경쟁을 이를 위한 안보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미·중 패권 경쟁의 상시화를 전제로 전략적 선택과 개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와 한반도 관련 사안들 역시 이러한 전략적 인식을 토대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 국가안보 인식을 군사 분야에서 구체화한 국가방위전략(NDS) 문서가 지난달 23일 미국 국방부(전쟁부)에 의해 발표되었다. NDS는 NSS가 제시한 미·중 전략경쟁 구도에 초점을 맞추어 미군의 전력 구조와 작전 개념을 전면 재편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기존의 전진 배치 병력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분산 배치, 순환 전개, 원거리 타격 능력을 결합한 유연한 군사력 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들에 대한 전통적 방위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그 방식과 조건을 미국 중심의 새로운 전략적 세계관에 맞게 재설계하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대만 유사시에 대비한 미국의 군사 전략은 이런 변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미국은 대만 문제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 대결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직접 개입 여부에 대한 표면적 입장을 모호하게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만반의 군사적 대비 태세를 준비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미군 전력의 역할과 배치가 대만 문제를 중심으로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큰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한미 국방 당국이 추진 중인 ‘동맹 현대화’ 논의는 미국의 이 같은 전략 개념 변화를 반영해 동맹 관계 운용을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동맹 현대화란 유사시 미국과 동맹국이 보유한 군사적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역할을 분담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지난달 방한한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은 한국 정부와의 면담과 세종연구소 연설에서, 대(對)북한 방어를 위한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과 대중국 군사 전략상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명확히 천명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두 가지 핵심 난제가 숨어 있다. 첫 번째 난제는 동아시아 방위에서 한국과 미국의 역할 분담 문제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대응은 한국군이 주된 책임을 지고, 미군은 한국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핵 위협 등에 대응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 입장은 미묘하다. 세계 5위 군사 강국인 한국이 대북한 방위를 주도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거부할 명분이 궁색하나, 주한미군의 대중국 군사전략 개입에는 반대한다. 그렇다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아예 차단하면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 다수를 대중국 임무에 적합한 일본으로 재배치할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어쩌면 주한미군이 주일미군의 종속변수로 격하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난제는 한미 동맹조약에 명기된 상호주의적 지원 의무의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거대한 지역적 위협(중국)에 대처하려면 동맹국과 힘을 합쳐야 하므로, 한국도 다른 동맹국들처럼 이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내 동맹국 중 일본, 호주, 필리핀과 달리 유독 한국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개입을 거부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이 최근 동중국해와 동해에서 실시한 합동 공군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국가관계의 본질은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상호주의적이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무관심하면 미국도 한국의 안보 이익에 무관심해질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 전략에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도 한국의 안보 상황에 협조하지 않을 명분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최대 안보 관심사인 미·중 전략대결에 대한 협력을 기피하고 주한미군의 대중국 임무에도 반대하는 상황에서 현재 논의 중인 전시작전권 전환까지 현실화되면, 미국은 한국전쟁 이래 76년간 한국 방어에 속박돼 온 굴레에서 벗어나 더 큰 행동의 자유를 누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