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으로 만나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40대 팀장이 있습니다. 이 팀장은 주변에서 “사람 좋다”는 소리를 항상 들어온 호인(好人)입니다. 후배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 한 번 없었죠. 그런데 2년 전 팀장으로 승진한 후 달라졌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후배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았죠. 그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리더가 됐을 때 직장에서의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을 받았다. 성과 위주로 팀을 이끌기보다 선배 노릇을 잘하고자 했다.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 불필요한 일을 싹 줄였다. 위에서의 과중한 업무 압박도 막았다. 그런데 후배들 태도에 깜짝 놀랐다. 워라밸은 악착같이 따지는데 주어진 일에 태만했다. 팀 프로젝트에서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 했다. 후배에게 싫은 소리 하고 싶은 선배가 누가 있나? 팀을 이끌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데, 급한 업무를 팽개친 채 칼퇴근하는 후배를 보며 기가 질렸다.”
워라밸 앞세우고 할 일 안 하는 후배 어찌해야 하나
팀장에 권한·보상 줘야…아니면 AI 후배만 찾을 판
그의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월급만큼만 딱 일한다는 ‘조용한 사직’일까, 아니면 ‘월급 루팡’일까.
이대로 두면 성과가 안 날 텐데, 불평불만하거나 말거나 일을 시켜야 하나.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노는 사람은 노는 조직을 그냥 둬도 되나.
정(情) 따위는 버리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不可近不可遠)로 후배를 대하면 될까.
수많은 질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다행히도 그를 위로할 뜻밖의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AI(인공지능)입니다. 이 팀장은 후배들보다 구글 제미나이, 챗GPT가 훨씬 좋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험한 일을 부탁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 없이 깔끔하게 도와주니까요. AI로 업무를 처리한 사례를 얘기할 때 환해지는 그의 얼굴, 낯설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 다루기 무서워 AI에 의지하는 웃픈 현실, 한국 조직이 맞닥뜨린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기업에서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 현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업무량과 책임은 늘어나는데 보상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 편하게 가늘고 길게 일하자는 생각이죠. 사람 다루기 힘들어진 세태도 ‘리더 포비아’ 현상에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한국처럼 직무에 따른 성과 평가에 냉정하기 힘든 사회에서 리더는 더 힘듭니다. 당근이든 채찍이든 팀장에게 주어진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매경이코노미는 이번 호에서 리더 포비아 현상을 다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리더를 피하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플레잉코치’ 중간관리자가 약한 조직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착한 선배’에서 ‘꼰대 팀장’이 돼버린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책임만큼 권한과 보상이 필요하다는 한 교수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팀장’ 타이틀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잘 해보라는 식으로 했다간 사람 대신 ‘AI 후배’만 찾을 겁니다.
팀장 역시 그저 착해선 안 됩니다. 업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와 피드백을 제공하는 리더가 돼야 합니다. AI를 감정 방패 삼는 대한민국의 모든 팀장님, 화이팅입니다.
[명순영 편집장·경영학 박사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8호(2026.02.25~03.03일자)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