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7월 말 한 금융지주에 통보한 정기검사 결과는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민낯을 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정하기 직전 이사회가 사전 통지도 없이 즉흥적으로 내규를 고쳤다는 대목, 서치펌이 추천한 외부 후보 명단을 회의 당일 현장에서 배포해 검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대목, 은행장 최종 후보 승인 과정에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의견을 낼 절차 자체가 없다는 대목이 나란히 적혔다. 경영유의 7건, 개선사항 20건. 한 회사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문제는 정작 제도를 손보겠다던 쪽이 조용하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지시로 태스크포스가 꾸려졌고 3월 발표를 못 박았지만, 4월도 7월도 넘겼다. 회장 3연임 제한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문제를 두고 관치 논란이 불거진 것이 주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성과와 무관하게 민간 금융사 최고경영자의 임기를 법으로 자르는 게 맞느냐는 반론은 가볍지 않다. 당국이 신중해진 이유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눈치를 보느라 미루는 것과 원칙을 벼리느라 미루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금은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발표가 늦어질수록 금융지주들은 정관과 이사회 운영을 어디에 맞춰 고쳐야 할지 모른 채 연말 인사철을 맞는다. 개혁의 동력도 함께 식는다. 반면교사가 멀리 있지 않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다. 해외와의 규제 비대칭 해소라는 명분으로 서둘러 열었다가, 변동성이 폭발하자 기본예탁금 상향과 대용증권 배제라는 강수를 다시 서둘러 꺼냈다. 주가는 물론 정부 신뢰까지 깎였다. 규제 방향이 옳았는지와 별개로, 예측 가능성이 없는 개입은 그 자체로 비용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관치 자체는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원칙이 있느냐다. 지배구조 개선 명분은 이미 감독당국의 손에 쥐여 있다. 남은 것은 그것을 누구나 예측 가능한 규칙으로 바꿔놓는 일이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3호(2026.08.19~08.25일자)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