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밝아왔다. 전남 완도에 사는 지인이 이른 아침부터 불러냈다. “가자.” 나보다 나이가 한참은 많은 그는 나를 친구라고 여겼다. 그는 완도의 새벽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완도항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항구 앞에 떠 있는 섬을 가리켰다. “저게 주도라는 거야. 귀한 거니까 잘 살펴 봐봐.”
섬은 섬인데,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그때는 몰랐다. 항구 뒤편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 비로소 주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슬처럼 완벽한 동그라미. 그래서 주도(珠島)였다. 지인은 말했다. 저 안에만 약 137종의 상록수가 있다고. 모밀잣밤, 붉가시나무, 돈나무, 참식나무, 다정큼나무, 광나무, 감탕나무 등 익숙한 것과 처음 들어보는 것이 혼재해 있었다. 섬의 중앙에는 성황당도 있었다. 나무가 다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곳이라 했다. 그래서 이 섬은 원시림 그대로 살아남은 거라고.
그제야 지인이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이 섬에서 태어나 민주화운동에 몸을 실었던 그의 말은 뒤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잘 지켜낸 섬 앞의 섬, 항구 앞의 저 섬, 주도는 겨우내 푸른빛을 간직하며 완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저 섬부터 다시 연둣빛 봄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마침내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