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던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 사태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설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주총 시즌이 시작될 것이고, 양 측은 또다시 건곤일척의 표 대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다양한 법률적 쟁점과 격렬한 여론전을 양산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단 한 가지 문제, 즉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상출집단)에 적용되는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 금지 규제의 회피 행위와 이에 대한 정책 대응에 한정해 논의를 전개한다. 출자 규제 그 자체가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고, 다른 논점을 추가할 경우 제한된 지면 안에서 의미 있는 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규제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상호출자’란 두 회사가 상대방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소유하는 것을 말하고,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란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한 3개 이상의 계열회사가 서로 다른 계열회사에 대해 출자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계열회사로부터 출자를 받은 관계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공정거래법 제2조 제16호). 상출집단 내의 국내 계열회사는 다른 국내 계열회사와 상호출자를 해서는 안 되고(동법 제21조 제1항),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금지된다(동법 제22조 제1항). 한편 동법 제36조 제1항은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탈법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동법 시행령 제42조 제4호는 상호출자 규제 회피를 금지하고 있고, 제6호는 순환출자 규제 회피를 금지하고 있다.
법꾸라지들 현란한 장난질에 현기증이제 공정거래법 위반 시비의 대상이 되는 4개의 문제 행위를 살펴보자. 먼저 4개의 문제 행위가 발생하기 전의 소유 구조를 보면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을 소유하고 있고, 고려아연은 해외 계열사인 SMH와 SMC를 각각 완전 자회사와 완전 손자회사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5년 1월 22일 ‘행위 1’이 발생했다. SMC가 영풍의 주식 10.33%를 새롭게 취득한 것이었다. 이로써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으로 돌아가는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탄생했다.
‘행위 2’는 그해 3월 7일에 발생했다. 영풍이 YPC라는 국내 계열회사를 신설하고 자신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전량 현물출자 형태로 넘긴 것이었다. 이로써 영풍-YPC-고려아연-SMH-SMC-영풍으로 돌아가는 조금 더 큰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탄생했다.
‘행위 3’은 그 직후인 3월 12일에 발생했다. 고려아연이 SMC가 보유한 영풍 주식을 현물배당 형태로 전량 그 모회사인 SMH에 넘긴 것이었다. 이로써 고려아연-SMH-영풍-YPC-고려아연으로 돌아가는 약간 작은 규모의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탄생했다.
‘행위 4’는 그해 3월 28일에 발생했다. SMH가 영풍 지분을 추가 취득해 일시적으로 하락했던 지분율을 다시 10.33%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이로써 위 ‘행위 3’에 의해 존재하던 기존 순환출자 구조가 강화됐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법꾸라지들의 현란한 장난질에 현기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현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제 이 네 가지 행위의 위법성을 따져보기로 하자.
위에 등장한 순환출자 구조는 모두 SMH라는 해외 계열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조들이 공정거래법 제2조의 정의에 의한 순환출자 구조인 것은 맞지만, 동법 제22조가 금지하는 국내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는 아니다. 따라서 제22조를 직접적으로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런 구조를 생각해낸 법꾸라지들은 일단 규제를 회피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럼 이런 규제 회피가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탈법행위에는 해당할까? 우선 ‘행위 1’을 보면 의사결정의 실질적 주체인 고려아연이 원하는 것은 상호주 논리에 의해 영풍의 의결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므로, 원래는 자신이 영풍 주식을 취득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은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상호출자에 걸린다. 그래서 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타인인 SMC의 명의를 이용해 취득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호출자 규제 회피 목적의 탈법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다음 ‘행위 2’를 보자. 이것은 영풍의 행위인데 이때는 이미 ‘행위 1’에 의한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된 이후였다. 다만 이 순환출자는 해외 계열사를 포함하는 구조라 금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영풍 입장에서는 ‘탈법 행위를 무릅쓰고서라도 회피하고자 하는 규제’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행위 2’를 탈법 행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다음 ‘행위 3’을 보자. 만일 ‘행위 3’을 고려아연이 직접 했다고 가정한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큰 문제가 생긴다. 고려아연-영풍-YPC-고려아연이라는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가 생길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두 국내 계열사이므로 이 구조는 공정거래법 제22조가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순환출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타인인 SMH를 동원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순환출자 규제 회피 목적의 탈법 행위 가능성이 있다.
다음 ‘행위 4’를 보자. 이 행위 역시 고려아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만일 고려아연이 직접 영풍 주식을 취득한다면 위 ‘행위 3’에서 회피하려고 했던 국내 계열회사들로 구성된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생긴다. 따라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행위 3’에서 이미 탈법행위에 동원했던 타인인 SMH를 한 번 더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행위는 ‘반복되는 탈법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또는 ‘행위 4’를 ‘행위 3’과 묶어서 고려아연이 직접 수행했다면 규제 대상 순환출자를 만들고, 또 이를 추가로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인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탈법 행위를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규제 회피 행태에 철퇴 내려야정말 너무 복잡하다. 위의 분석이 주는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탈법 행위 규정을 통해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규제 회피를 규율하는 것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행위들은 직접적 금지 행위로 규율하는 것이 더 깔끔하고 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 금지의 대상을 국내 계열회사만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해외 계열사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미 이런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이므로 통과시키면 된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도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거래법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드는 규제 회피 행태에 철퇴를 내리기 바란다. 그리고 이런 장난질을 자문한 법꾸라지들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