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다.”
대서양에 있는 윌밍턴을 떠나 다시 북서쪽 내륙 쪽으로 650㎞를 6시간 달리자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 나오며 단풍 등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바쁜 일정에 잊고 있었는데,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이상이 지나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여러분은 체로키 영토에 들어와 있습니다.” 체로키 지역에 들어가자 나타난 팻말이다.
‘주권(Sovereignty).’ 노스캐롤라이나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체로키 마을에 도착해 역사박물관에 들어가자 나를 맞이한 것은 의외의 단어 ‘주권’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단어라 충격을 받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당연했다. 이들은 독립된 국가로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인정받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 것이다.
미국은 1800년대 초 서부 개척에 나서며 체로키 등 많은 원주민 부족을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조약을 체결해 이들의 땅을 양보받는 대신 대체 영토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 조약을 무수히 파기했다. 1979년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인디언 부족과의 조약은 두 나라 간의 조약이므로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 내의 인정해주는 경계에서 사는 이들 부족은 외국이라기보다는 ‘국내의 종속적 국가(domestic dependent nation)’라고 봐야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또 다른 연방대법원 판결의 일부다. 형식적으로는 주권국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의 종속적 국가’라는 판결은 원주민의 모순적 위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배신으로 빼앗긴 원주민 최초의 공화국‘세쿼이아(Sequoyah)?’ 박물관 앞 동상에 쓰여 있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세쿼이아는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생명체인 나무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삼천 살이고 키가 80m가 넘는다(19세기 말 이 지역에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세우기 위한 ‘좌파’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이중 가장 큰 나무의 이름을 ‘카를 마르크스’라고 붙였다. 미국 정부는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며 이들을 추방했고, 나무 이름도 ‘제너럴 셔먼’으로 바꿨다). 한데 비슷한 이름을 체로키에서 만나다니! 세쿼이아는 영어를 보고 자극을 받아 미국 원주민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1825년 체로키 공식 언어로 사용한 위대한 체로키 추장(1770~1843) 이름이었다. ‘세쿼이아’라는 나무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었다.
나는 백인들의 ‘배신의 현장’을 찾아 조지아주의 ‘뉴에초타(New Echota)’로 향했다. ‘음주운전 하지 마세요’ 갑자기 미국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음주운전 경고 팻말이 나타났다. 할 일 없이 보호구역에 갇힌 원주민들의 음주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라 가슴이 아팠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테네시 등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2만여명의 체로키는 백인들이 몰려오자 1825년 추장 회의에서 조지아주 뉴에초타로 이주해 여기를 수도로 삼아 정부를 세우기로 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공화국’을 정부 형태로 채택했고, 문자화한 헌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이다. 역사공원으로 들어가자 ‘체로키국의 수도 뉴에초타’라고 쓴 국기가 전시돼 있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체로키 공화국은 80만9371㎡(약 200ac)에 달하는 땅으로, 정부청사부터 법원, 당시 유일했던 원주민어 신문사 등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체로키국 국민이 모여 회의하던 광장도 눈에 띄었다.
이들이 새 공화국 건설의 꿈에 부풀어 있던 1830년, 날벼락이 떨어졌다. 조지아, 테네시, 앨라배마,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등에서 원주민들을 ‘제거’해 그 땅을 백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인디언 제거법(Removal of Indian Act)’이 제정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 불가결한 지능도, 산업도, 도덕적 관습도, 개선 의지도 없다. 다른 우수한 인종 한가운데 만들어져 자신들이 열등한 이유도 모르고, 그 이유를 통제하지 못해서, 그들은 환경의 힘에 굴복하고 오래전에 사라져야만 한다.” 수백명의 노예를 거느리며 1829년에서 1837년까지 미국을 다스렸던 앤드루 잭슨 대통령(1767~1845)의 말이다. 철저한 인종주의자로 원주민에 대한 초강경론을 펴 ‘인디언 투사’라는 이름의 ‘원주민 학살자’였던 그는 불도저식으로 인디언 제거법을 제정했고, 원주민 부족들과 70개 조약을 반강제로 체결해 이들을 쫓아냈다.
그 최대 피해자가 바로 체로키다. 역설적인 것은 체로키는 잭슨의 생명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잭슨이 장교 시절 전투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체로키 지도자 주나루카스가 잭슨을 구해줬다. 강제이주 소식을 듣고 그는 백악관으로 찾아갔지만, 잭슨의 답은 싸늘했다. 체로키는 추장과 다수파가 땅 포기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838년 미 기병대의 포위 속에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나 오클라호마로 긴 여정을 떠나야 했다. ‘눈물의 행로(Trail of Tears)’라고 부르는 이 고난의 강제이주로 고향을 떠난 1만6000명 중 4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에게서 잭슨이 보인다“웬 복권기계?” 잭슨은 체로키의 땅을 빼앗아 백인들에게 나눠줬다. 이때 공정하게 하려고 땅 구역에 번호를 정하고 커다란 원형 통에 번호표를 넣고 돌린 뒤 뽑은 번호의 땅을 나눠준 추첨기계가 박물관에 전시돼 있었다. 원주민 최초의 공화국을 빼앗아 그 땅을 추첨기계를 돌려 백인에게 나눠줬다니, 눈물 나는 이야기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체로키의 강제이주가 마무리된 뒤 잭슨은 자화자찬했다. “자선가들은 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인종들이 상처와 억압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환호할 것이다.”
“1838년 눈물의 행로 중 목숨을 잃은 4000명을 기억하기 위해 심었다.” 뉴에초타 한 나무 앞 작은 돌에 이렇게 쓰여 있다. 강제이주 150년을 맞아 1988년에 심은 것이다. 그 뒤에는 이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체로키 인디언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앤드루 잭슨이 제정한 인디언 제거법의 뿌리에 깔린 인종주의는 이제 과거인가? 아닌 것 같다. “일부는 좋은 사람이지만” 미국 내 멕시코계는 “많은 경우 범법자, 마약상, 강간범 등”이라는 트럼프의 말에서, 아프리카계 민주당 하원의원들에 대해 “범죄가 득실거리는 원래의 고향으로 왜 돌아가서 문제해결을 돕지 않느냐”는 트럼프의 조롱에서, 나는 앤드루 잭슨을 본다. 미국에 투자한 공장을 짓기 위해 미국에 온 한국 전문가까지 수갑을 채워 끌고 가는 트럼프의 무대포식 반이민정책에서 인디언 제거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