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직후 당 인선 속도전에 추석 전후 개각설까지…여권 2기 체제 가동
2030·4050의 지지층 흔들리고 당은 둘로…“2008년 친이·친박 기시감”표정이 밝진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땐 애써 웃는 모습이지만 자주 굳은 얼굴을 드러냈다. 한 평론가는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감정을 품은 지지층을 의식한 거라고 했다. 그런 걸까.
당대표 연임 도전에 실패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야기다. 8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 간담회 때 모습이다. 8월 17일 전당대회에서 그가 받은 최종 투표율은 45.92%다. 만만치 않은 수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당 주류인 386에게도 소외된 비주류 언더독의 상징이었던 그로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상당히 큰 지지층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당대표 후보자들과 민주당 출신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참여한 만찬 간담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비공개다. 선거 기간 내내 활발히 돌아가던 정청래 의원의 SNS도 19일 간담회와 관련해선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회동 연임 실패한 정청래의 표정은“그래서 장관으로 가면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으로 갈 것 같은데 제가 외통위원입니다. 청문회를 제가 할 수도 있습니다. 저한테 잘하세요. 청문회 통과하고 싶으면. 아셨습니까.”
전당대회 나흘 전,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정 의원의 말이다. 같이 후보로 나섰던 송영길 의원을 향한 격앙된 발언이다.
당대표 선거에서 김민석 대표의 사실상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송 의원이 전당대회 이후엔 외교부 장관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6월부터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파다했다. 선거 기간 기자가 접촉한 송영길 캠프의 핵심인사도 ‘소문’을 부인하지 않았다.
“수정방(水井坊·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생산되는 백주)이라고 들었다. 그날 마신 술이. 대통령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정청래 당시 대표가 90도 절을 하던 날(6월 18일)이다. 저녁 청와대 호출을 받은 송영길 의원은 살짝 쫄았다고 들었다. 혹시 김민석 측 부탁을 받고 당대표 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냐고.”
지난주 기자가 한 정치권 인사로부터 건네 들은 후일담이다. 그런데 이 인사의 말에 따르면 술잔을 앞에 두고 꺼낸 이 대통령의 말은 뜻밖이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외로움’에 대한 토로와 당대표 선거 출마에 대한 격려였다. 송 의원은 자신이 돕겠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 선거 뒤 외교부 장관 등용 이야기가 거론됐는지 여부는 엇갈린다. 송 의원의 ‘바람’은 이미 정치권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자리를 대가로 거래를 했다’는 주장은 민감한 이야기다. 8월 16일, 당대표 선거 마지막 서울 유세를 끝내고 임미애·김영호 최고위원이 김용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잇따라 사퇴하자 심야에 받글, 속칭 ‘지라시’가 돌았다. 친명계가 압박하다 최종 농림부 장관과 당 사무총장 자리로 ‘딜’을 쳤다는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오갔겠나. 장관직 받고 사퇴하고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결단한 거다.”
선거 다음 날인 8월 18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임미애 의원 측 핵심 관계자 이야기다. 그는 지명직 최고위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부인했다.
“지명직 최고를 염두에 뒀다면 출마했겠냐. 이미 대구쪽은 전략지역 몫의 최고위원을 두 차례 이상 배출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출마한 것이다.”
김영호 의원 측은 “소위 받글성 정보에 확인해준다는 것도 우습다”고 답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설이라는 것이다. 직후 김민석 지도부 사무총장 인선 발표가 있었다. 한정애 의원이다.
김민석 대표체제 핵심 요직 인사는 당선 이틀 만에 거의 마무리됐다. 속도전이다. 속도전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을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당대표 경선 전부터 정치권 주변에는 2기 이재명 정부 개각리스트가 돌았다. 처음에는 소폭에 그칠 것 같은 개각리스트는 점점 더 불어나는 중이다. 하마평 대상에 오른 인물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8월 20일 돌고 있는 명단엔 당사자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농식품부 장관에 다른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임미애 의원의 이름이 올라있다. 외교부장관에는 송영길 의원이 단독으로 게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다만 개각 시기 전망은 달라졌다. 당초 김민석 신임대표의 속도전과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진행될 거라고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20일 버전에는 ‘추석 전후 단계적 개각, 추석 및 국감 후 일괄개각’이라는 전망이 적혀 있다.
문제는 개각이나 청와대 참모 개편만으로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을 잡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지지율에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적 다수가 아닌 구조적 소수라는 게 드러났는데도 이 대통령은 지지율에 거의 올인하고 있다. 호남 반도체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장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 지지율의 구조적 특징을 셋으로 꼽는다. 첫째, 2030 특히 2030 여성의 이탈이다. 보수성향 증가와 함께 이재명 지지철회로 나타났다. 둘째, 주요지지층이던 4050 지지 강도·충성도의 약화. 그는 소위 친청과 친석으로 양분된 전당대회 탓이라기보다 증시나 부동산 문제가 더 연관돼 있다고 풀이했다. 셋째, 반면 60대 이상에서 지지율이 상당히 선전하는 양상다. 하지만 그 역시 “‘거품’일 가능성이 높아 장기화하면 과거 윤석열처럼 L자형으로 굳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통령이 ‘분노의 진보’가 아니고 진짜 출범 초기처럼 실용으로 돌아가서 우리 사회 기득권과 싸움을 시작하면 지지율 반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2008년 친박·친이 싸움 보는 것 같아”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도 이재명 정부로선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말한다.
“전당대회에서 밑바닥까지 드러난 명청대전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2008~2010년 사이 한나라당 시절 친박·친이 싸움이다. 당시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고 박근혜 쪽이 야당처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되니 친박 공천학살이 벌어졌고, 친박연대에 대해 박근혜는 ‘살아 돌아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양상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이 어려운데 권력 누수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그는 내년 4월로 예상되는 서울시장 보궐이 김민석 신임 당대표체제의 명운이 걸린 1차 분기점이 될 것이라면서도 “당대표로서 ‘친청계 반대파’를 아우르는 데엔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지율 떨어지고 어려워질 것 같으니 이제야 부랴부랴 공원·공공용지에 주택을 짓겠다고 난리인데 2~3년 후이면 정권 말이다. 힘이 빠진 상황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부동산 때문에 김민석은 유효기간이 짧은 당대표로 끝날 수 있다.”
“속도전은 이재명 정치 스타일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국가 리더십에서는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단점일 수도 있다” 유승찬 대표의 말이다.
그가 대표적으로 꼽은 것이 주식 단일종목 레버리지ETF 정책이다.
“절차보다 빨리 실행했고,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의 대혼란을 초래했다. 대외신용도도 떨어뜨렸다. 진짜 위기인 것은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즐겨 강조하는 말이 ‘정책은 의도가 아닌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라는 건데 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권엔 위험신호다. 그런 의미에서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은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윤석열 정부가 무너진 첫 번째 계기가 이태원 참사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권력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며, 국민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우면 누군가 책임져야 다음 페이지를 열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전당대회 이후 정청래를 지지했던 당원을 끌어안냐 못 안냐가 민주당의 미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당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서로 얼굴도 안볼만큼의 적이 되었다. 김민석 대표가 필요하다면 유시민 작가뿐 아니라 친청계 유튜버들까지도 만나야 한다. 그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