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계산서’와 ‘처의 설계’“거리로 나가거라. 입술을 빩앗케 물드리고 눈썹을 가늘게 그리고 윙쓰를 사방으로 보내며 레뷰-식으로 깡충깡충 걸어라. 단연이 값싼 모-던니즘의 여왕이 될 테니. (중략) 나는 도회의 딸이다. 아스팔트의 딸이다.”(‘다당여인(茶黨女人)’·1934)
1930년대 ‘모더니즘의 여왕’, ‘도회의 딸’이자 ‘아스팔트의 딸’임을 선언했던 작가 이선희. 이화여전 졸업 후 ‘개벽’과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했던 이선희의 소설에는 백화점 점원, 카페 여급, 매소부(賣笑婦), 신여성 주부 등 식민지 근대성의 세례를 받은 다양한 직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 새로운 여성 주체들은 도시의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상품을 소비하고, 연애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유연애의 종착지로 택한 결혼은 과연 스위트홈의 이상을 보여줬는가.
소설 ‘계산서’(1937)와 ‘처의 설계’(1940)에서 신여성 아내는 도시생활을 자유롭게 향유하며 사랑하고 결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의 외도와 변심,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파탄 직전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이들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요구하는 등 가부장제 바깥으로 탈주한다. 이들의 도발적인 선택은 소설의 제목처럼 ‘계산’과 ‘설계’라는 근대 자본주의나 합리적 이성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계산’은 거래에서 주고받은 값을 셈하는 행위이며, ‘설계’는 목적에 따라 실제적인 계획을 세우는 행위다.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신여성이 결혼을 비롯한 자신의 삶을 ‘계산’하고 ‘설계’하는 능동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로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와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응‘계산서’의 일인칭 화자 ‘나’는 남편과 서양식 인형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낭만적인 결혼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출산 과정에서 아이를 사산한 데다가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마저 절단하게 되면서 부부가 ‘모조가정’이라 불렀던 스위트홈은 산산조각이 난다. 이제 아내는 남편의 외출과 외도를 의심하고, 남편의 동정에 분노하고, 자신의 쓸모없음을 한탄하는 히스테리적 주체가 된다. “나는 내 남편도 나와 같이 다리 하나가 병신 되기를 바랐다. 남편의 다리 하나-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다리 하나쯤으로는 엄청나게 부족하다. 내가 받아야 할 것은 그의 목숨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받아야 겨우 수지가 맞을 것 같다. 이것은 내 계산서뿐만 아니라 모든 아내 된 자의 계산서일 것”이라는 분노에 찬 발언은 신체 일부를 넘어 생명을 보상받고자 하는, 등가교환의 원칙에 기반한 계산서의 형식을 띤다. 모조가정을 스스로 나온 나는 척박한 만주 땅 호인(胡人) 부락에서 “내 계산서를 완전히 청산할 때까지 이 땅에 더 있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통상 여성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타협해 집으로 돌아가는 서사와는 달리, 여성을 인형이나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폐기해버리는 결혼제도로 돌아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계산서는 손익이나 수지타산을 정밀하게 따지는 자본주의적 어휘다. 소설은 이 어휘를 아내의 위치에서 미러링하며 새로 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임신과 출산의 고통과 헌신은 언제나 화폐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사랑이나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은폐돼왔다. 그런데 ‘계산서’의 아내는 잃어버린 아이와 절단된 다리 그리고 파괴된 인생과 남편의 생명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따져서 계산해보고 남편, 나아가 남성중심적 사회에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다.
중편 ‘처의 설계’에서도 결혼 파탄의 책임을 물어 남편에게 이혼을 청구하는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소라와 청재는 동경에서 유학한 이력이 있는 지식인이고, 자유연애 끝에 결혼하지만, 그 사랑은 5년이 지난 지금 “모래로 쌓은 탑”처럼 허물어졌다. 이 모던한 가정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서구적인 소비생활을 즐기고,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가장인 남편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와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 청재는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지만 “아다링과 술을 먹어야 잠을 자고 늘 병적으로 게으른” 경제적 무능력자다. 게다가 찻집 설계와 투자를 빌미로 자기를 유혹하는 여순옥이라는 돈 많은 여자를 만나 어정쩡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이 부부는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에서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기민하게 탐지하고 해결하려는 주체는 남편이 아닌 아내다.
부부관계의 손익을 계산하는 여성‘처의 설계’에서 주목할 지점은 ‘여자’의 설계가 아니라 ‘처’의 설계라는 말이다. 가장인 남편 청재가 갈등을 회피하는 동안, 아내 소라는 “우리의 집을 자리 잡아” 놓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설계’한다. 찻집에 돈을 대겠다는 여순옥과 만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한 달 순이익을 재빠르게 계산해보고, 자기 이름을 딴 찻집 경영을 꿈꾼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청재와 여순옥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기도 한다. 청재가 여순옥과 온천에서 며칠씩 외박을 하고 오자 이혼을 요구하고, 이번에는 자신이 가출한다. 아내는 더 이상 남편 없는 방을 지키며 밤을 지새우는 존재가 아니다. 무능한 남편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이 가정이 유지될 방법을 구상하고 설계하는가 하면, 잠시 남편의 친구인 초석과 연애 감정을 가지지만 그 관계가 ‘통속소설’이 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소라는 여순옥이 자살을 시도하고 하얼빈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계산서’의 아내가 “죽음 같은 고독”이라는 단독자의 삶을 택한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특별히 비상천(飛上天)하는 재주도 없”는 자기 부부에게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내의 선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계산서’와 ‘처의 설계’는 자유연애와 결혼, 스위트홈이라는 이상에 가려졌던 가부장의 허약성과 기만을 고발한다. 여성들은 결혼 후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훼손, 남편의 외도와 무능력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모조가정’의 환상에서 깨어난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내 노릇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두 소설에서 아내-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말하고, 자신의 불행을 분석하고, 경제적 상황을 판단하고 남편에게 책임을 묻는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의심하고, 집을 떠나 집 밖을 떠돈다. 부부관계의 손익을 계산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결혼은 낭만적 사랑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노동과 돈, 출산과 돌봄으로 시끄러운 구차한 현실이 있다. ‘계산서’의 아내는 아이와 다리,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은 손해배상을 남편에게 청구한다. 집을 떠난 후 고독과 자기 학대를 스스로 선택한다. ‘처의 설계’의 아내는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을 설계 도면에서 지우고, 여옥과 남편의 모호한 관계를 ‘찻집 경영’과 맞교환하려고 한다. 이혼을 요구하고 집을 떠났지만 되돌아오는 선택도 그의 몫이다. 비록 이들이 도달한 자리가 춥고 척박한 북국의 호인 부락(‘계산서’)이거나 일제강점기 말 전시 체제의 궁핍한 일상(‘처의 설계’)일지라도, 이들의 선택은 남성이 제공하는 거짓된 안온함보다는 훨씬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기획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식민지 근대의 신여성이 가부장제가 부여한 ‘처’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결정권을 요구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 신여성에 대한 부정적 담론에 문학의 이름으로 항의문을 썼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