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화제는 세계 최고의 음악그룹으로 성장한 방탄소년단(BTS)과 권위의 예술상 그래미 간의 작용 반작용이다. 지난 7월 말 BTS가 공식 계정에 올린 글로 시작됐다.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팬들과 국내 언론은 이를 그래미 보이콧이라고 간주했다. 이에 대해 슬픈 결정이지만 존중한다는 그래미 대표자의 공식 반응이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그래미 홈페이지에 BTS의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무대 영상이 삭제됐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BTS 도발에 대한 그래미의 보복 조치라는 것이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래미의 권위에 덤벼들어, 그것도 아시아 팝가수가 떡하니 보이콧 성명을 내놓는다는 것은 ‘감히?’라는 반응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본 것이다. 그래미 측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무시할지, 역공을 취할지 모르지만 내심 불쾌한 건 분명해보였다. 방향을 돌려 그러면 왜 BTS가 그래미에 찍힐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보이콧 성격의 결정을 내렸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3년 연속 후보, 그러나 빈손
사실 애초부터 BTS가 그래미 트로피를 받는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2021년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등극한 곡 ‘다이너마이트’가 그래미 본상 아닌 팝 부문 후보에 올랐을 때 하이브 간부들도 수상을 어렵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솔직히 ‘다이너마이트’는 역대 그래미의 시상 성향과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는 곡이다. 그래도 후보에 오른 게 영광이어서 BTS는 기꺼이 서울 여의도 고층빌딩 옥상에서 촬영한 단독 퍼포먼스를 그래미 중계로 제공할 만큼 성의로 임했다.
이듬해 ‘버터’가 다시 팝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을 때도 수상 여부가 불확실했지만, 미국 현장으로 날아가 단독 퍼포먼스를 펼쳐 다시 한번 그래미를 빛내주었다.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수상은 불발했다. 다음 2023년에도 ‘마이 유니버스’란 곡이 같은 부문 후보에 올라 3년 연속 지명의 기록을 세웠지만 역시 수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사실 BTS는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 음악계의 눈에 들기 위해 꽤 애를 썼다. 2020년 그간 해온 음악 패턴을 뒤로 물리고 미국 상륙을 꾀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에 미국의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디스코 리듬을 장착한 게 말해준다.
전미 차트 정상 등극은 미국의 입맛에 맞춘 결과였다. 사실 더 크게 히트한 곡 ‘버터’도 미국적이었다. 미국에 진출하기 이전의 곡이자 걸작인 ‘피 땀 눈물’, ‘봄날’과는 색조가 달랐다. 미국에서 통하자 그들과 하이브의 눈은 철저히 북미 시장으로 급히 이동했다. 성공은 눈부셨다. 과거 뉴키즈 온더 블록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장 때처럼 미국의 성골, 진골이라 할 ‘앵글로색슨’ 틴 걸 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뉴’아미(BTS의 팬덤)를 형성했다.
희생은 불가피했다. BTS가 무명일 때 남모르게 지지하던 기존의 국내 팬클럽 아미를 과거처럼 챙길 수가 없었다. 한국의 아미는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모르지 않았지만, BTS는 미국 집중의 더 고삐를 바짝 죄었다. 바로 그래미상 수상이었다. 그들은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내친김에 그래미의 권위가 상징하는 예술성 인정을 원했던 것이다.
올해 3월 서울 광화문 공연과 함께 공개된 새 앨범 <아리랑>은 여실히 그 목표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렀다. 누가 봐도 음악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전 아이돌 음악과는 선을 그은 차분한 톤, 깊이, 밀도가 구현된 점을 전제해 일각의 전문가들은 그래미를 의식하고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한 통신사 기자의 반응. “그래미상을 받으려고 만든 것 같지 않아요?”
‘아시안 팝’ 신설이라는 벽
수록곡 ‘스윔’은 신곡 특수가 작용하면서 곧바로 빌보드 차트 1위로 올라섰다. 음악 관계자들은 ‘스윔’이 그래미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 어느 때보다 수상에 가깝게 다가섰다고 관측했다. 음악적 성숙은 그래미가 고평가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악재가 돌출했다. 그래미상이 2027년부터 ‘아시안 팝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다고 공지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잘나가고 있는 아시아 음악을 정규 포상한다는 내용이지만 거기엔 ‘아시아 음악은 너희끼리 여기서 경쟁하라. 본상은 쉬 넘보지 말라’는 뜻이 잠복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르 게토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그래미 측은 아시아 언어가 곡에서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하며 노래 전체가 영어로 녹음된 작품은 이 부문 출품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조항에 따르면 영어 가사인 BTS의 곡 ‘스윔’은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예술성 제고를 위해 달려온 BTS는 기가 찼을 것이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그래미 출품 거부라는 폭탄 선언을 감행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모든 것을 떠나 개인적으로 후련했다. 수상을 위해 그래미 늪에 빠져 그 스타일과 성향에 부합하는 짓을 그만하겠다는 용기가 읽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차피 받지 못할 상, 보이콧으로 모면하는 것이라고, 한편으로 딴 K팝 가수들의 기를 꺾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자신들 음악의 독자성을 찾겠다는 것은 미국으로부터의 음악 독립 선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을 향한 모처럼의 시원한 보이콧을 본다.
권위 뒤에 가려진 차별과 배제
미국 음악계를 상징하고 우리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어온 두 기호, 빌보드와 그래미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물론 차트 높은 순위에 오르고 그래미상을 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목매달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미가 반드시 영예와 긍지로 연결되는 것 또한 아니다. 오래전부터 그래미의 권위는 인정해도 그 수상 행태를 보면 권위주의로 흐른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우선 시상이 차별과 배제로 얼룩졌다. 1940~1950년대 확립된 틴 팬 앨리 팝의 작곡 스타일을 우대하면서 로큰롤과 힙합 같은 젊음의 새 음악이나 인디음악은 외면했다. 로큰롤의 황제이자 그들 스스로 국가적 영웅으로 숭배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전성기인 1950~1960년대에 14번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그 장르 음악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1968년에야 사실상 변방이라 할 종교음악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비틀스도 그래미상의 약자였고 엘튼 존도 엘비스처럼 뒤늦게 1990년대 와서야 그래미 수상자로 입적했다.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 퀸, 데이비드 보위 등 레전드가 거의 그래미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고, 해체나 사후에 ‘평생공로상’을 받았을 뿐이다. 힙합과 여성 가수들도 본상에서 배제되는 관행에 반발했다.
완성도 제고를 위해 열심히 만든 음악, 자신들이 즐기는 음악이면 된다. 사람들이 그 음악에서 자신을 볼 만큼 진실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음악이라면 다 아닐까. 미국과 그래미에서 벗어나야 BTS는 개성과 진정성을 새긴 음악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성 회복이 관건이다. 음악은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음악이 먼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