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책]‘흑백요리사 시즌2’에 나타난 계급일치감의 허상…계급 밖 인간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억압적 구조얼마 전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2’가 종영됐습니다. ‘요리계급전쟁’이라는 부제를 단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출신 성분’에 따라 출연자를 백수저와 흑수저 계급으로 나눠 요리 대결을 펼칩니다. 요리 경연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출연자들의 태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었습니다. 백수저 출연자들의 태도가 부드럽고 여유로운 반면 흑수저 출연자들은 공격적이고 거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태도의 차이는 그들이 서 있는 지위와 관련돼 있다는 해석이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백수저 출연자들의 ‘우아한 태도’는 그들의 처지에서 나왔으며 흑수저 출연자들의 공격적인 태도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서 비롯됐다는 겁니다.
언제부턴가 ‘부자는 성격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쉽게 접합니다. 누군가의 품행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배경부터 살펴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마치 그 사람을 이해하는 열쇠가 계급에 있다는 듯이요. 이런 해석은 얼마나 타당할까요? 한 사람의 계급은 인격 형성에 실제로 얼마큼의 영향을 미칠까요? ‘흑수저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은 얼핏 누군가의 처지를 공감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말하는 사람의 어떤 기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피지배자 내면에 자리 잡은 자기혐오의 뿌리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에 좋은 텍스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두 하녀가 여주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다루지만, 그 이면에는 계급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곤란한 질문들이 깔려 있습니다.
작품에는 하녀 자매 클레르(동생)와 솔랑주(언니), 그리고 이 집의 안주인 마담이 등장합니다. 두 하녀는 마담이 없을 때 그의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는 의식적인 역할극을 즐깁니다. 상상 속에서 마담이 되어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고 마담의 언어와 몸짓, 취향, 잔혹함까지 모방합니다. 이 달콤한 상상이 현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녀들은 유산을 노리고 마담을 제거하려 하지만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작품의 핵심은 주인-하인 관계의 전복입니다. 하녀들은 마담을 증오하고 죽이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담과 무슈를 동경합니다. 마담이 외출한 밤이면 그의 옷을 꺼내 입고 환상 속에서 무슈와 사랑을 나눕니다. 하녀들은 약자의 언어로 권력의 얼굴을 재현하지만, 약자의 내면은 권력에 대한 동경과 증오 사이에서 일그러져 있습니다. 지배자에게 모욕받으면서도 지배자를 동경하는 피지배자의 도착적 욕망을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저흰, 저희가 뿜어대는 냄새와, 저희가 누리는 영화와, 저희가 마담한테 품고 있는 증오심에 둘러싸여 뒤죽박죽이에요.” —클레르작가는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지배받는 자는 정말로 지배를 끝내길 원하는가? 아니면 지배의 자리를 욕망하는가? 하녀들이 드러내는 마담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보면 이 반란의 목적이 지배 관계의 극복이 아니라 그 안에서 위치를 바꾸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억압 구조로부터의 해방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녀들의 힘으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신 피억압자의 내면에 억압이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를 잔인하게 드러냅니다.
마담은 하녀들의 의식과 욕망을 완전히 지배합니다. 하녀들은 마담을 증오하는 순간에도, 동경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마담을 생각합니다. 이는 권력이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상징적 질서로 작동함을 보여줍니다.
마담과 하녀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마담은 귀족이어서 우아하고 하녀들은 하녀여서 천박하다는 것입니다. 마담의 모욕과 하녀들의 자기혐오는 피지배층은 우매하고 사악하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됩니다. 두 계급의 차이는 ‘냄새'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봉준호 감독은 이 희곡이 영화 ‘기생충’의 모티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하녀들은 자신에게서 풍기는 썩은 냄새를 괴로워하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난 하인들이 싫다. 난 그 천하고 추악한 족속을 싫어한다. 하인들은 인간에 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의 방과 복도를 흘러 다니는 악취다.” —마담“난 썩은 냄새를 풍겨. 난 누가 봐도 불쾌한 인간이야.” —클레르흑수저가 흑수저일 때 편안하다는 착각
흔히 부자는 마음도 넉넉하고 가난한 사람은 마음도 가난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배경이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겁니다. 넉넉한 사람은 타인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 쉽고 생존 경쟁의 압박이 적어 덜 공격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특권의식이 있어 오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기 나름이지요. 어느 쪽이든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을 무엇을 바탕으로 설명하는지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질서가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설명의 진위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설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가입니다. 하녀들은 하녀라는 지위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총체적 자기 인식의 형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작품 속 과장되게 반복되는 하녀들의 대사는 주술적 언어에 가깝습니다. “마담은 아름다워요.” “마담은 친절해요.” 강박적으로 계급을 수행한 하녀들은 스스로 계급 자체가 됐습니다. 자매는 연극 속에서 권력의 전복을 꿈꾸지만 연극을 거치면서 마담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질서는 오히려 더욱 단단해집니다. 이 연극을 수행하는 동안 마담이라는 억압의 상징은 더욱 완벽하게 보존고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담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독을 클레르가 마시게 됩니다. 하녀들의 실패가 보여준 것은 억압 구조는 억압받는 자의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비극적 통찰입니다. 권력은 외부에서 강제되기도 하지만 피지배자의 욕망 속에서 내면화되고 재생산됩니다. 구조의 일부인 사람은 구조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권력 전복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흑백요리사 시즌1’에서는 계급적 기대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여준 출연자가 많았지만 그들의 지위와 태도를 연결 지어 해석하는 이야기는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시즌2에서 ‘계급일치감’이 느껴지는 출연자들이 등장하자 자연스럽게 그에 부합하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백수저는 백수저다울 때, 흑수저는 흑수저다울 때 더 편안하게 해석됩니다. 넉넉한 사람은 너그럽고 못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녀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마담은 착해. 마담은 우릴 아껴. 안락의자를 아끼듯이. 화장실의 분홍빛 변기를 아끼듯이. 비데를 아끼듯이 우릴 아끼지. 하지만 우린 우리끼리도 서로 사랑할 수 없어. 쓰레기가… 쓰레기를 사랑할 수는 없어.” —클레르, 솔랑주배경은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흐린다
E. L. 닥터로의 소설 ‘래그타임’에는 ‘흑인답지 않은 흑인'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백인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가 자신이 니그로(흑인)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듯했다. 워커는 유색인처럼 행동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흑인들의 몸에 밴 복종심은 보통 상대를 품위 있어 보이게 했지만, 콜하우스의 경우에는 오히려 콜하우스를 더 품위 있어 보이게 하는 듯했다.”콜하우스는 하녀들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인간입니다. 하녀들은 (하녀답게) 하녀라는 정체성에 사로잡혀 살지만 콜하우스는 도대체 흑인답지가 않습니다. (백인) 아버지는 콜하우스를 흑인이라는 상자에 가둔 채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운 상자에 갇혀 있는 쪽은 아버지입니다. 이럴 땐 그 사람이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배경은 그 사람에 관해 별로 말해주는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판단을 혼란스럽게 흐립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은연중에 느끼고 싶어 하는 ‘계급일치감'의 허상을 보여줍니다. 계급 밖의 인간을 상상하지 못했던 하녀들처럼, 아버지는 인종을 벗어난 인간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래그타임’과 ‘하녀들’은 결국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정체성이 아니라 수행하는 역할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강력한 증거가 장 주네 자신입니다. 그는 천대받던 사생아였고 동성연애자였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은 도둑이었습니다. 동시에 누구보다 총명한 아이였고 생전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표현을 빌리자면, 장 주네는 자기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도둑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수저통’에 담아 분류해야 할까요?
하녀는 하녀여서 냄새 난다는 ‘순환’을 깨고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내가 믿고 싶어 하는 질서 안에 그 사람을 배치하려 합니다. ‘흑수저는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은 얼핏 누군가의 처지를 이해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상에게 특정한 감정과 태도를 요구하는 규범입니다. 콜하우스가 흑인답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녀는 하녀여서 냄새가 나고, 흑수저는 흑수저여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생각. 이런 식의 순환적 해석이 힘을 얻을 때 우리는 계급 밖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억압은 그렇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 살아남습니다.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