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퀘어]링은 국경이 아닌데…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위하여“첫눈에 (복싱에) 빠져버렸어요.”
2012년생 클라우디오 한나는 3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따라갔던 복싱짐에서 운명처럼 복싱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중학생이 된 한나를 2026년 7월14일 경기도 안성의 집에서 만났다. 다부진 체격에 맑은 눈의 한나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복싱에 대해 이야기했다. “슬럼프가 온 적도 있지만,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지고 코치님께 배운 걸 수행하면 기분이 정말 좋다”며 “열심히 해서 올림픽도 나가고 좋은 코치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화요일과 주말을 제외한 저녁이면 복싱짐으로 향하는 한나가 복싱화를 챙기는 동안 바라본 책상에는 트로피 여러 개와 좋아하는 걸그룹 엔믹스(NMIXX)의 앨범, 멤버 오해원의 포토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날 저녁 안성의 김명곤복싱짐에 도착한 한나가 서둘러 복싱화 끈을 조여 매고 손에는 테이핑을 했다. 배시시 웃던 미소를 거둔 채 두 시간가량 온전히 훈련에 집중했다.
2025년 2월 첫 생활체육대회부터 최우수선수로 꼽힌 한나는 최근까지 8전8승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에겐 대회 참가 제한이 있다. 한나는 동호인이 참가하는 생활체육대회에는 나갈 수 있지만 선수들이 출전하는 엘리트대회에는 나설 수 없다. 필리핀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한복싱협회 경기인 등록 규정 제11조에는 외국 국적자의 경기인 등록은 국제복싱협회(IBA) 규정, 출입국관리법 등 관계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협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한나도 여러 차례 선수 등록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적을 이유로 협회는 선수 등록을 거부했다.
대한체육회 산하 다른 종목에선 실제 외국 국적자가 선수로 나선 경우가 있다. 2023년 대한씨름협회 특별승인을 받아 전국대회에 나설 수 있었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2세 김웬디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나는 귀화에 대한 질문에 “어차피 커서도 한국에서 살 거니까 당연히 귀화해야죠”라며 “복싱이 정말 하고 싶은데 때로는 한국 국적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도 해봤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성년자인 한나가 스포츠 우수 인재로 특별귀화를 하려면 국제대회 성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적 문제로 엘리트 선수 등록이 안 돼 국내 대회조차 나가지 못하므로 국제대회 출전권 자체가 부여되지 않는 모순이 있다. 현재로서는 한나가 성인이 돼 일반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한나를 가르치는 김명곤복싱짐 김정우 코치는 “성인이 될 때까지 4~5년의 피크타임을 엘리트대회 경험 없이 보내는 건 선수로서 너무나 큰 손실”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나가 처음엔 상대에게 맞는 걸 무서워해서 1년 넘게 기본기만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약한 스파링부터 시작하다 재미를 느끼더니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고 있어요. 저는 운동선수에게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도 깊고 성실할뿐더러 승부욕과 책임감도 강합니다. 국적 때문에 어릴 때 경험할 수 있는 엘리트 무대를 건너뛰어야 한다는 게 지도자로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 코치와 한나를 도와 국가인권위원회에 2026년 5월 진정을 낸 정인교 안성시 외국인주민지원센터 센터장은 “대회 출전 자체를 막는 건 이상하지 않나”라며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다음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코치도 “한나가 선수로서 어디까지 갈지는 나도 잘 모른다. 생활체육대회와 달리 엘리트 복싱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가르치면서 기량과 의지를 확인했다. (한나가) 다음 단계로 도전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건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래서 정인교 센터장과 할 수 있는 데까지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로잡습니다제1626호 ‘이름 없는 슬픔이 민주주의 뿌리가 되기까지’에 실린 메인 사진의 설명에서 ‘유가협 김을선 어머니’로 표기된 인물은 ‘민가협 이중주 어머니’로 확인됐습니다. 사진 속 인물인 이중주 어머니와 김을선 어머니, 그리고 두 분의 가족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