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임의 산들산들]수년간 실험 끝에 자리잡은 털부처꽃… 경북 봉화의 자랑으로

말도 안 되게 더운 8월이다. 뙤약볕에 맞서는 듯 짙은 녹음 속 초록의 기세가 뜨겁도록 뻣세다. 배롱나무와 나무수국과 원추리가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워 올려 우리가 여름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맘때 내 눈에 특히 빛나는 식물이 있다. 털부처꽃이다. 8월1일 일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오늘 만난 식물 중에 털부처꽃이 단연 최고다. 오묘한 분홍빛으로, 꼿꼿하게 피었다. 아름답다. 모진 폭염에도 이 미모를 당분간은 유지할 거다.”
유럽인도 사랑하는 정원 식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도 털부처꽃이 대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었다. 수목원과 수목원이 위치한 이 동네 사람들이 함께 키운 털부처꽃이다. 주로 습지에 사는 이 식물이 정원용 식물로 탁월할 거라고 수목원 연구진은 일찍이 판단했다. 야생의 씨앗을 모아 수목원 곳곳에 뿌렸다. 더 진하기도 하고 더 옅기도 한,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분홍색 꽃이 다채롭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중 연한 빛깔의 개체를 고르고 골라 삽목하거나 조직을 떼어 얼마간 더 증식했다. 재배 실험이 이어진 것이다. 몇 년이 지나자 원했던 색감으로 꽃을 피우는 개체가 고르게 자라줬다. 엷은 분홍색으로 몹시 우아하게 꽃이 피는, ‘백두분홍’이라는 털부처꽃 품종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수목원이 문을 연 2018년부터 포기하지 않고 꼬박 노력해서 2025년에 일군 성과다. 그간 털부처꽃의 어린싹과 씨앗을 지역 농가에 퍼뜨리고 재배 기술을 부단히 알렸다. 이것이 경북 봉화의 산골 마을에 국가수목원이 들어선 이유일 듯하다. 결국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식물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지역과 같이 살라고, 지역을 활활 좀 살리라고.
꽃을 사랑하는 유럽인들이 특히 편애하는 정원 식물이 털부처꽃이다. 꽃의 색깔에 따라 원예 품종이 다양하게 개발돼 꽃시장에 나와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는 1993년 짙은 분홍색 꽃이 피는 털부처꽃 품종(Feuerkerze)에 정원 공로상을 수여했다. 더 옅은 색에 꽃이 다복하게 피는 품종(Blush)에 추가로 상을 준 건 2002년의 일이다. 독일 식물협회는 2024년 ‘올해의 식물’로 털부처꽃을 선정한 바 있다.

계속되는 ‘학명 논쟁’

 
북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털부처꽃은 북반구 거의 전 대륙에 넓게 퍼져 산다. 강둑과 도랑과 습지와 갈대밭을 따라 자연에서는 주로 습한 땅에 출현하는데 심어 기르면 환경을 크게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두루 잘 산다. 연못가에서 특히 조화롭고 발코니의 큰 화분 안에서도 미끈하게 맵시를 뽐낸다.
부처님 제단에 바치는 꽃이라고 해서 우리말로 부처꽃이라 부른다. 식물의 우리 이름은 먼저 붙인 명칭을 기준으로 접두어나 접미사를 더한 파생어가 많다. 부처꽃과 견줘 털이 많다고 접두어 ‘털’을 붙여 털부처꽃이란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붙인 세계 공통 명칭인 학명은 반대다. 털부처꽃(Lythrum salicaria)이 기본명이고 부처꽃(Lythrum salicaria subsp. anceps)이 파생어이다. 부처꽃은 털부처꽃의 아종(亞種)이다. 아종은 종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를 말하는데, 독립된 종은 아니지만 변종이라 하기에는 외형이 뭔가 다르고 사는 곳이 구분될 때 쓴다. ‘국제 식물 명명 규약’에 따라 부처꽃의 학명은 기본명이 되는 털부처꽃의 학명 뒤에 아종(subspecies)의 줄임말인 ‘subsp’를 붙이고 형용사 하나를 더 써서 표기한다. 털부처꽃의 학명은 1753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부처꽃의 학명은 1952년 일본인 식물분류학자 하라 히로시가 붙였다.
털이 조금 더 많거나 적은 것을 기준으로 종을 세분했던 과거의 인위적인 분류가 후대 학자들에 의해 정리된 경우는 많다. 털부처꽃도 그렇다. 지금 식물분류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처꽃을 굳이 털부처꽃의 아종으로 구분하지 말고 그 둘을 통합해서 기본종인 털부처꽃 하나로 보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전세계 식물의 이름을 목록화해서 그 정보를 제공하는 영국의 큐식물원은 말한다. 털부처꽃과 부처꽃은 통합된 한 종이니 일찍이 린네가 이름 붙인 학명 ‘리스룸 살리카리아’(Lythrum salicaria)를 써야 한다고.
그렇다면 우리 이름도 하나로 합치는 게 맞을 듯한데, 그렇게 될 경우 학명의 기본명에 붙은 우리말인 털부처꽃을 따라야 하니 부처꽃이라는 국명은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부처꽃 없이 파생어인 털부처꽃만 남는다는 말. 여기에서 오는 혼돈을 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학명은 기본명인 ‘리스룸 살리카리아’를, 우리말은 파생어 이전의 ‘부처꽃’을 쓰면 된다. 국내에도 ‘국가 표준 식물 목록’이라는 공인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아직 그곳에서는 부처꽃과 털부처꽃을 합치지 않고 구분해서 부른다. 그 명칭을 따르다보니 여기서도 학명에 붙은 국명인 ‘털부처꽃’이라 적는다. 어서 하나로 정리됐으면 한다.
근친교배 피해 군락 형성

 
털부처꽃의 학명 중 첫 번째 단어인 리스룸(Lythrum)은 ‘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왔고 두 번째 단어인 살리카리아(Salicaria)는 ‘버드나무와 같은'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꽃이 핏빛을 띤 분홍색이고 잎은 버드나무를 닮았다는 뜻이다.
그 선명한 분홍색 꽃과 얄브스름한 잎의 조화는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7월부터 9월까지 비교적 늦게, 그리고 길게 꽃이 피는 것이 이 식물의 강점일 테다. 야생 꿀벌과 등에와 나비가 몇 달간 부지런히 찾아와 꽃가루받이에 열심이다.
털부처꽃은 교미와 번식에 능한 기술을 갖고 있다. 근친교배를 피해 서로 다른 유전자를 섞으려고 타가수분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꽃가루를 보낸 꽃과 도착지 꽃이 유전적으로 먼 관계일 때 결실이 성사될 확률이 높다. 그 일을 털부처꽃은 움직이지 않고도 해낸다. 포기마다 무려 수천 개에서 1만 개 이상의 꽃을 피워 수분 매개자를 기다리면서.
잠자코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개체마다 한 꽃 안에서 암술과 수술의 높이를 조절하고 성숙 시기를 계산하는 식으로 치밀하고 전략적인 방법을 쓴다.
 

명도와 채도가 제각각인 분홍색 별 모양의 자잘한 꽃이 다닥다닥 모여 털부처꽃은 기다란 꽃차례를 이룬다. 그런데 그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같은 꽃이 아니고 세 가지 다른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한 송이 꽃에는 단 한 개의 암술과 열두 개의 수술이 있는데, 그들 위치를 달리해서 암술의 길이가 수술보다 긴 장주화(長柱花)와 그 반대인 단주화(短柱花), 그리고 그 중간형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서로 같은 형태의 꽃끼리는 수정이 잘 안 된다.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는 딴꽃가루받이여야 한다.
장주화가 피는 개체의 꽃에서 출발한 꽃가루가 가닿을 곳은 출발지가 같은 장주화가 아니라 단주화나 그 중간형이 피는 다른 개체의 꽃 암술머리여야 씨방 안의 난핵과 꽃가루의 정핵이 결합해 수정란이 되고 열매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암술이 수술보다 긴 이 개체의 꽃밥에서 분출한 꽃가루가 저쪽 개체의 암술이 짧거나 그 중간형인 꽃과 관계를 맺어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이도록 하는 딴꽃가루받이. 그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제꽃가루받이를 막기 위해 마련한 별도의 장치도 있다. 한 개체 안에서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를 달리하는 것.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 매개자를 유인할 때 어떻게든 근친교배만큼은 피하려고 암술이 먼저 발달하고 시들면 그제야 꽃밥에서 꽃가루를 방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성공적인 생식을 위해서라면 다함이 없는 게 식물의 삶이다. 그렇게 더 나은 2세를 꿈꾼다.
그 꽃들이 수정에 성공하고 열매를 맺으면 한 개체에서 최대 300만 개에 이르는 씨앗이 나온다. 수목원의 털부처꽃이 해를 거듭할수록 군락을 키우며 번성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오지여서 좋고 오져서 더 좋은

 
수목원 가든숍에서 판매하는 화분을 가리키면서 도시에서 못 본 꽃이라고, 이 예쁜 야생화가 뭐냐고 수목원을 방문한 관람객이 묻는다. 이 지역의 자생식물인데 수목원 인근 농가와 임가에서 키운 털부처꽃이라고 내 동료들은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수목원은 이곳 주민들과 함께 털부처꽃을 많이, 아주 많이 심고 키운다. 더 좋은 꽃을 얻기 위한 실험 연구도 계속한다. 그 꽃으로 지역민들은 소득을 얻는다.
수목원이 있는 봉화를 사람들은 흔히 오지라고 한다. 언젠가 나는 이 지역에 관한 산문을 부탁받아 쓴 적이 있다.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마음이 흡족하게 흐뭇하거나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는 뜻의 ‘올지다’를 요즘에는 동의어 ‘오지다’로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오지여서 좋고 오져서 더 좋은, 내가 사는 곳, 봉화.”(창작과비평 199호, 407쪽)
 
글·사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