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안보 지형 중대 변수… 북중러 위협에 ‘핵 문턱 낮추기’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는 북쪽으로 북한, 서쪽으로 중국, 동북쪽으로 러시아라는 여러 경쟁의 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특한 이점이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지난해 11월 17일(이하 현지 시간) 주한미군 홈페이지와 한국 언론에 한반도가 ‘뒤집힌 지도’를 공개하며 밝힌 내용이다. ‘뒤집힌 지도’는 중심부의 한국이 중국·러시아가 있는 대륙에서 일본·대만·필리핀이 있는 바다 쪽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작성됐다. 브런슨 사령관은 지도와 함께 공개한 글에서 “주한미군의 역량은 러시아 함대가 동해에 진입하지 못하게 부담을 주고, 서해에선 중국 북부 전구와 북해함대에 부담을 준다”고 밝혔다. 이 지도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한 캠프 험프리스(한국 평택)에서 평양까지 158마일(254㎞), 베이징까지 612마일(985㎞), 블라디보스토크까지 500마일(805㎞) 등의 거리도 각각 표시돼 있다.
브런슨 사령관은 1월 26일 한국을 방문해 캠프 험프리스를 찾은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에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계획과 자신이 제시한 ‘뒤집힌 지도’를 토대로 주한미군의 역할과 작전 계획 등을 보고했다. 당시 콜비 차관은 한국 방위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과 ‘재래식 방위책임 확대’ 중요성을 강조했다. 콜비 차관의 방한은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 발표 직후였다. 콜비 차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NDS는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한 대응을 1차적으로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critical but more limited) 지원’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내용으로 볼 때 주한미군의 역할이 앞으로 북한의 위협 대응이 아닌 중국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 방위성이 8월 4일 발표한 ‘2026년 방위백서’에서 브런슨 사령관의 ‘뒤집힌 지도’와 같은 거꾸로 된 동아시아 지도를 제시했다. 방위성의 의도는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를 통해 북한, 중국,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사거리 2000㎞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일본 서남부가 사정권에 들어가는 상황과 최근 일본 주변 해·공역에서의 중국군의 주된 활동이 들어갔다. 방위백서는 “중국군 활동은 일본과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사항이자 지금껏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며 “중국·러시아의 전략적 연계가 강해지고 있으며 이는 중대한 우려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콜비 국방차관 “합리적 핵옵션 필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국방부가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의 방어를 위해 단거리 전술핵무기 활용을 강조하는 새로운 핵전략 초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나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NBC 방송은 콜비 차관이 중·러와의 잠재적 충돌에 대비한 새로운 핵무기 전략 추진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콜비 차관은 8월 5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전략사령부(STRATCOM)에서 열린 확장 억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비공개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격보다 지역 전쟁이 더 우려된다”면서 “지역에서 재래식 전쟁이 벌어지다가 핵무기가 제한적으로 동원되고 확전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합리적인 핵 옵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합리적 핵 옵션’은 중·러의 위협에 맞서 핵무기 사용의 문턱(threshold)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콜비 차관은 8월 13일 아시아 기자들과의 온라인 브리핑에서 “핵전략의 중요한 요소는 핵 문턱을 넘는 행위 그 자체와 그것이 초래할 효과”라고 밝혔다. 콜비 차관은 미국이 핵무기 사용 조건의 문턱을 낮춘다면 중국·러시아 등에 대한 억지력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콜비 차관은 그동안 도시 전체가 아닌 전장의 제한된 표적을 공격하는 저위력 전술핵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다시 말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낮은 상징적 무기로 남겨 두기보다는 실제 군사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선택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핵무기는 크게 전술과 전략 핵무기로 구분된다. 전술핵무기(Tactical Nuclear Weapon)는 특정 군사목표를 공격하기 위해 대포와 단거리 미사일로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와 핵 지뢰 및 핵 어뢰 등으로, 보통 20kt 이하의 핵무기를 지칭한다. 전략핵무기(Strategic Nuclear Weapon)는 적국의 대도시나 공업 중심지를 파괴하기 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적재 핵폭탄 등을 말한다. 수백㏏에서 mt(메가톤)급 위력으로 대량 살상과 적의 국가기반 등 광범위한 지역을 파괴할 수 있다. 미국의 기존 핵전략은 ICBM과 SLBM 및 전략폭격기 등을 동원한 고위력 전략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활용이 가능한 저위력 전술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이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전술핵 보유량을 200기와 1794기로 추정했다. 중국도 전술핵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저위력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입장에선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는 전략핵무기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일 위치, 중러에 억지력 행사하기 유리”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은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이 역내 전쟁에서 중국·러시아의 저위력 전술핵 공격을 받는 시나리오에 대처하기 위한 구상에서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방부 고위 관리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새 전략은 대통령의 신뢰 가능한 핵 선택지를 넓혀 핵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확장 억제가 신뢰성을 가지려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핵 역량을 국가 최고 지도부에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리는 “장거리 전략 미사일이 아닌 단거리 전술 핵무기에 더 무게를 싣는 새 전략이 실질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 억지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무기를 실제 작전에 쓸 수 있는 선택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새로운 핵전략을 추진할 경우, 전술핵이 한국·일본 등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으로선 ‘뒤집힌 지도’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전술핵을 배치할 적합한 곳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군이 주둔하는 동맹국이고, 지형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행사하기에 유리하다. 실제로 브런슨 사령관은 5월 22일 미국 육군 전쟁대학 주관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들(중국)이 중국 동부 해안에서 바라볼 때, 눈에 들어오는 건 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비수라 할 한국, 그리고 일종의 방패이자, 그들이 남중국해 너머로 나아가려 하는 야심을 가질 때 방어벽 같은 일본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전술핵을 배치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면 2022년 나토의 유럽 기지에 배치한 전술핵무기 B61-12가 될 수 있다. 미국은 핵 공유 프로그램에 따라 독일·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영국 등 유럽 기지에 B61-12 전술핵폭탄 100~150발을 배치했다. B61-12는 파괴력을 0.3㏏, 1.5㏏, 10㏏, 50㏏ 등 다양한 범위로 조정할 수 있는 핵무기다. 미국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의 위력은 15㏏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면서 폴란드·핀란드·리투아니아 등도 미국의 핵 공유 프로그램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은 반대, 일본은 찬성 가능성
한국의 경우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에 핵 활동 중단(핵 동결)→감축→폐기(비핵화)를 촉구해왔다. 이재명 정부의 북핵 정책과 미국의 전술핵 배치는 서로 상반된다. 게다가 미국의 전술핵 배치는 북핵 등에 대한 억지력을 높이겠지만 북중러의 전술핵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전술핵에 맞서 핵 무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월 인민군의 600㎜ 다연장방사포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하면서 “420㎞ 사정권 안에 있는 적들에게 전술핵무기의 파괴적인 위력에 불안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420㎞ 사정권’과 ‘전술핵’을 직접 언급한 것은 한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운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 분명하다. 일본 역대 정부는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제시한 이후 이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에선 이 중에서 ‘반입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북한과 중국의 핵전력 강화에 맞서 확장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이 새로운 핵전략을 채택할 경우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