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훈련장에서 순식간에 궤멸… 한국군 드론 대비 태세 가성비 낮아
최근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무기 위시 리스트’에서 전차와 장갑차가 사라졌다. 개전 초반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 155㎜ 포탄도 더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 당초 우크라이나가 스웨덴·독일 등과 추진하던 CV90 장갑차, KF51 판터 전차, 링스 장갑차 구입 및 생산 계약은 중단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당장 종전이 된 것도, 전투 빈도나 강도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기갑차량 소요가 사라진 이유는 전쟁 양상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 기갑장비 피해가 줄어든 이유
우크라이나가 8월 15일(이하 현지 시간) 하루 동안 러시아를 상대로 살상 및 파괴했다고 발표한 전과(戰果)는 병력 1370명, 전차 5대, 장갑차 3대, 차량 522대다. 4년 전인 2022년 8월 15일에는 병력 200명, 전차 12대, 장갑차 15대, 차량 5대였다. 교전 횟수가 늘면서 러시아군 사상자와 차량 피해는 증가한 반면, 전차와 장갑차 피해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전장에서 기갑차량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기갑부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는 자국군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군 5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양측의 병력·장비 손실은 대부분 드론 때문에 발생한다. 드론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현대 전장에서 크고 무거운 기갑차량은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방공 장비를 제대로 갖춘 지상군은 드론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군 최정예 기갑부대가 4~5월 독일에서 훈련할 때 우크라이나군 드론 부대에 궤멸된 것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드론에 굴욕을 당한 부대는 미군에서도 최정예로 불리는 제1기병사단 예하 제3여단전투팀이다. 미군 편제상 기갑여단전투팀(ABCT)으로 분류되는 제병협동부대로, 한국군 기계화사단에 필적하는 전력을 자랑한다. 보유 장비를 보면 M1A2 SEP(V)3 에이브럼스 전차 87대, M2A3 등 브래들리 계열 장갑차 152대, M109A7 자주포 18문, 차세대 병력수송장갑차인 AMPV 계열 45대, 험비를 대체하는 차세대 전술차량 JLTV 등으로 세계 어느 기갑부대보다 현대화된 전력이다.
100㎞ 후방 러시아 보급로 타격
독일 훈련장에서 미군 최정예 기갑부대에 맞선 대항군은 우크라이나 무인시스템군 제412무인시스템여단, 일명 ‘네메시스’였다. 2023년 12월 드론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대대급 부대로 창설됐다. 해당 부대는 루한스크 전선에서 러시아군 포병·방공 진지를 쓸어버리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들이 운용하는 드론은 러시아군 야전 방공 시스템은 물론, 중장거리 방공무기도 손쉽게 파괴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네메시스의 기술과 전술도 고도화됐다. 기껏해야 10~20㎞ 사거리에서 쓰이던 네메시스의 드론은 지난해부터 30~50㎞ 이상을 날아가 러시아군 후방을 교란하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던 러시아의 야전 방공 전력은 네메시스 드론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드론 운용 부대 특성상 네메시스가 거둔 전과는 대부분 드론 카메라에 기록으로 남는다. 네메시스 드론이 파괴한 러시아 방공무기는 스트렐라-10 같은 구형부터 판치르-S1, 토르-M1/M2 등 최신형 모델, 고가의 중장거리 방공 시스템인 부크-M1/M2/M3와 S-350까지 다양하다. 이런 맹활약 덕에 네메시스는 지난해 12월 여단으로 확대 개편됐다. 지금은 최전선에서 100㎞ 넘는 후방의 러시아군 집결지나 보급로, 심지어 선박까지 타격하고 있다.
4~5월 독일에서 훈련은 유럽에 순환 배치되는 미군 부대가 1년에 두 차례 실시하는 정례 훈련이다. 미국이 훈련 파트너로 네메시스 여단을 초청한 건 그들의 활약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훈련 상대가 실전 경험이 풍부한 최정예 드론 부대인 만큼 미군도 꽤 많은 준비를 했다. 우선 제3여단전투팀에는 제56방공포병연대 제6대대 예하 부대들이 방공 지원을 위해 배속됐다. 이들 부대는 미 육군에서 가장 신형인 야전 방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JLTV 차량을 개조한 이동형 저고도-저속 소형 비행체 통합 방어 시스템(M-LIDS)은 3면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와 기관포, ‘코요테 블록 2’ 요격 드론을 갖추고 있다.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개조한 M-SHORAD 인크리먼트 1 역시 위상배열레이더 4개로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할 수 있다. 기관포·기관총·스팅어 미사일 또는 헬파이어 미사일로 드론 표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정도 첨단 장비를 갖췄음에도 미군은 네메시스 여단의 드론 공격에 무너졌다.
이번 훈련에서 미군 기갑여단은 공격, 우크라이나 네메시스 여단 드론팀은 방어 임무를 맡았다. 미군 기갑차량들은 공격에 나선 직후 연이어 격파 판정을 받았다. 부대 궤멸 속도가 너무 빨라 격파 판정을 받은 전차가 공격 개시선으로 돌아가는 리스폰(respawn·부활)을 반복해야 했다. 미군이 이렇게 쉽게 무너진 것은 몇 대 안 되는 야전 방공 장비로 수백 대의 기갑차량을 모두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훈련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훈련 후반부에는 대항군 측 자문까지 받아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병력과 장비를 산개·엄폐해 운용하고 전자전 장비 사용을 확대한 뒤에야 격파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미군, 모든 기갑차량에 APS 탑재 추진
미군과 우크라이나군의 훈련은 현대전에서 모든 기갑차량은 야전 방공 시스템 등 아군 지원 자산의 도움 없이 스스로 드론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충격을 받은 미군은 모든 기갑차량에 능동방어시스템(APS)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 방어 능력만 있던 트로피 APS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소형 드론 탐지·요격 기능을 추가했다. 사람이 직접 조작하던 기관총을 무인 시스템화하고, 레이더와 드론 대응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저상형 원격사격통제체계(LP-CROWS)도 배치하고 나섰다. LP-CROWS는 드론 탐지·추적에 특화된 Ku-밴드 AESA 레이더와 연동되며, 기관총 제어는 사격통제컴퓨터가 맡는다. 미군은 트로피와 LP-CROWS 같은 장비를 전차·장갑차는 물론, 자주포와 차량에도 붙여 드론 대응 능력을 부여할 예정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對)드론 조치를 수행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트로피 APS는 전차 대당 200만 달러(약 28억2000만 원) 넘게 들고, LP-CROWS 가격도 20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고가의 드론 방어 장비를 붙이는 이유는 전차·장갑차가 대당 1000만~2000만 달러(약 141억∼282억 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갑 장비에 탑승하는 승무원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써서 방어 장비를 갖춰도 드론 위협이 완전히 차단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드론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른다. 요즘 우크라이나 전장의 사례를 보면 배터리를 아끼려고 드론을 예상 기동로 인근에 매복해뒀다가 적이 오면 기습하는 전술이 쓰인다. APS나 레이더·컴퓨터 연동 기관총 시스템 탑재는 승무원과 전차를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한 세상이 된 것이다.
컴퓨터 연동 기관총 탑재도 ‘최소’ 조치
한국군의 드론 대비 태세는 어떨까. 최근 방위사업청은 3조4480억 원을 들여 K2 전차 410대에 APS와 드론 대응 장비를 붙이는 성능 개량 사업을 의결했다. 사업 일정은 2028∼2032년 체계 개발, 2033∼2046년 성능 개량으로 잡혀 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기존 전차에 APS 및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붙이는 개조는 그리 오래 걸리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전차 대당 84억 원이 들고, 사업 기간도 지나치게 긴 한국의 기갑장비 드론 대응은 가성비가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