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 4등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시절의 교실은 운동장의 연장이었다. 체육 교사였던 담임에게 학생의 가치는 기말고사 평균 점수라는 수치로 환산되었다. 최하위 성적표를 받아 든 날, 복도에 울려 퍼진 빗자루 자루의 타격음은 숫자가 인간의 존엄을 타격하는 소리와 같았다. 그는 "1등과 꼴찌는 한 끗 차이"라며 분발을 촉구했지만, 그 결과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것은 실력이 아닌 정교한 기만이었다. 공포는 공부실력을 키우주는 대신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했다. 시험 시간, 시계 시침의 각도로 정답을 암호처럼 공유했고, 책상 아래로 발을 뻗어 신호를 보냈다. 평균 점수라는 집단 목표 앞에서 정직은 사치였다. 체벌과 성과 압박은 공동체를 협력으로 묶는 대신, 기만으로 단단히 결속시켰다. 결과가 전부가 되는 순간, 과정은 쉽게 버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움직이게 한순간은 그 폭력의 반대편에서 찾아왔다. 옆 반 영어 선생님이 무심히 건넨 말 한마디. "발음이 참 세련됐네." 그 말은 채찍이 아니라 불씨였다.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사전을 뒤적이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소리를 따라 했다. 강요가 사라진 자리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였다. 수면 아래의 고립과 기록의 언어 정지우 감독의 영화 〈 4등 〉은 이러한 성과 중심 사회의 민낯을 수영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통해 냉정하게 포착한다. 수영 유망주 준호는 언제나 기록표의 네 번째 줄에 머무는 아이다. 감독은 카메라를 빈번하게 수면 아래로 침잠시킨다. 물 밖의 소음이 차단된 그곳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준호의 거친 호흡음뿐이다. 이는 세상의 기대와 단절된 채 자신의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개인의 고립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반면 수면 위는 과잉된 소음의 전장이다. 메달을 갈구하는 엄마의 극성, 코치 광수의 고함, 냉혹한 스타트 신호음이 준호의 몸을 전방위로 압박한다. 코치 광수가 가하는 매질은 단순한 폭력을 넘어 성과 지상주의의 대물림을 상징한다. "0.01초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는 그의 일갈은 기록의 언어이자, 자신이 겪어온 폭력을 정당화하는 비겁한 변명이다. 영화는 준호가 마침내 1등을 거머쥐었을 때의 환희를 생략한다. 대신 물 밖으로 나온 아이의 얼굴에 서린 짙은 체념과 공포를 응시하며, 승리가 남긴 내면의 폐허를 차갑게 조명한다. 〈 4등 〉이 지닌 시의성은 이것이 비단 스포츠계의 관행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성과 보고를 요구받는 현대의 '번아웃 세대'에게 준호의 처지는 타인의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회사로, 다시 무한 경쟁의 시장으로 이어지는 궤도 속에서 우리는 늘 '조금만 더'라는 가속의 명령을 듣는다. 우리는 흔히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실패의 은유로 소비한다. 그러나 에너지가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한 가속은 필연적인 탈진을 의미한다. 모든 개인이 용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사회적 망상에 가깝다. 여기서 필자는 '이무기로 남는 선택'의 가치를 제언하고자 한다. 이는 패배주의적 도피가 아니라, 스스로를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내던지지 않겠다는 실존적 결단이다. 성과를 위해 자아를 연소시키기보다, 자신의 온전한 온도를 유지하며 궤도 밖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다. 영화 후반부, 준호는 더 이상 전광판의 숫자를 확인하지 않는다. 수영장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의 줄기를 따라 그저 묵묵히 물을 가른다. 카메라는 이를 원경으로 포착하며 준호에게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익명성의 자유를 부여한다. 결과에 저당 잡혔던 신체는 이 순간 비로소 유영의 즐거움을 회복한다. 1등이라는 지위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기억임을, 영화는 고요한 물소리로 증명한다. 결국 우리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빗자루의 타격음이나 0.01초의 단축에 있지 않다. 타인이 설계한 기록의 궤도에서 내려와, 자신의 속도로 생의 감각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 〈 4등 〉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서늘하고도 따뜻한 질문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한계선 앞에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물이 끓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미지근한 온도에서도 생명은 유지된다. 때로는 불을 끄고, 가만히 식어가는 시간을 견디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록이 아닌 호흡의 속도로, 다시 수영하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