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역사 속 왕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승자의 시선에서 기록된다. 왕위를 둘러싼 음모와 권력 다툼은 '정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패배한 이들의 목소리는 지워지거나 왜곡된다. 결국 '왕권'이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질서라기보다 승자가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하며 남긴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으로 꼽히는 단종의 이야기가 영화로 재해석되었다.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인물로 순수한 정통성을 지녔지만 끝내 권력을 지키지 못한 왕이었다. 아버지 문종의 적장자였던 이홍위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어린 왕의 즉위는 곧 권력 공백을 의미했고 그 틈을 타 정치적 갈등이 깊어졌다. 즉위 3년 만인 1455년 상왕으로 물러났고, 1457년 열여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짧고도 비극적인 삶을 남겼다.
단종의 마지막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 중심의 승자 서사에서 벗어나 단종의 마지막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다시 풀어냈다. 특히 엄흥도와의 관계를 통해 권력에서 밀려난 왕과 한 개인 사이에 형성된 신뢰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은 삶의 의미를 잃어가며 백성에 대한 책임과 인간적인 연민 사이에서 깊이 흔들린다. 그러나 영월의 촌장 엄흥도와의 관계 속에서 그는 더 이상 폐위된 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되찾아 간다. 엄흥도 또한 단순한 신하의 자리를 넘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이었던 한 인간의 주검을 수습하고 끝내 장례까지 치른다. 그 선택은 왕을 향한 충의와 두 사람이 나눈 인간애적 책임과 신뢰의 결단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말해준다.
결국 이 서사는 왕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서로를 통해 버틸 수 있었던 두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권력의 기록에서는 지워졌던 마지막 시간이지만 오히려 그 짧은 시간이 단종이라는 인물을 가장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남는다.
560여 년 전 비극의 왕 단종(노산군)과 영월의 호장 엄흥도의 이야기. 슬프지만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을 배우들을 통해 마주하는 순간, 이미 지나간 역사임에도 그 감정과 선택은 지금 우리의 삶 깊숙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끝까지 지킨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다시 살아난 그들의 시간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작품이 남기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이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권력과 이익 앞에서 얼마나 쉽게 타인을 외면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 돌아보게 된다.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다. 권력은 역사를 쓰지만 충의는 그 역사에 의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