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종합특검(특별검사 권창영)이 지난 8월 19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1차장을 비롯한 지난 정부 국정원 정무직 인사들을 대거 기소하면서 국정원이 다시 한번 '개혁'이란 이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12·3 비상계엄 이후 2차례 특검(내란특검, 2차 종합특검)으로 군과 경찰을 향한 대대적인 조직개편 및 인적쇄신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국정원 인사 중에서는 조태용 전 원장만이 국회 및 헌법재판소에서의 증언 위증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지난 정부 임명직이었던데다, 기소된 혐의가 계엄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계엄의 무풍지대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차 특검이 조 전 원장을 비롯한 홍 전 차장과 황원진 전 2차장, 김남우 전 기획조정실장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국가정보원법의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국정원은 내란에 동원됐다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정치권과 관가 안팎에서는 종합특검의 국정원 전 정무직 인사들에 대한 기소를 계기로 대대적 인적쇄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더불어민주당 내 대북온건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여권 내 대북온건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국정원의 매파, 즉 대북강경론자들을 뒤로 물리고, 비둘기파를 내세운 유화적인 정보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이미 현 장관급 인사 중에 후임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여러 정부에서 국정원이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개혁의 명분을 줬던 때와 달리, 현재의 국정원을 무작정 개혁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북온건파들의 고민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때문에 종합특검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비롯한 12·3 비상계엄 당시 정무직 회의에 참석했던 고위인사(국가정보원장, 1·2·3차장, 기획조정실장)들을 기소했기 때문에 이를 명분 삼아 대대적 인사개편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다.
대북유화론자들, 특검수사 동력 제공
실제로 종합특검은 지난 8월 19일 조 전 원장을 비롯한 정무직 4명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했다. 조 전 원장 등은 국가안보실에서 계엄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아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계엄 선포에 대한 해외 반응을 수집한 혐의를 받는다. 이외에도 홍 전 차장에게는 계엄 당시 국군방첩사령부, 경찰청 등과 연락망 구축을 시도하고 경찰청 상황실에 인원 파견 등을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특검은 황 전 차장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인원 파견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고, 김 전 실장이 합동참모본부 요청에 따라 계엄상황실 파견 인원을 선발하도록 지시한 것도 내란 가담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 중 홍 전 차장은 특검의 주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7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계엄 당일) 나만 전화를 받은 줄 알았는데,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나 말고도 김남우 당시 기조실장이 1시간쯤 뒤 유사한 내용으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건 내가 (싹 잡아들이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는 강력한 정황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종석 원장 체제에서 국정원 자체 감찰도 했는데, 결론은 '국정원은 12·3 계엄·내란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조태용 원장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감찰 결과까지 있었고, 그 감찰 서류에는 CIA 문건 관련 내용도 이미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기소한 건 8월 19일이다. 하지만 이미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부터 특검의 수사 상황이 실시간으로 여권 일각에 전달되거나, 홍 전 차장에 대한 특검 수사의 동력을 민주당에서 만들어왔다는 의혹이 불거져왔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특검팀이 홍 전 차장을 입건했던 5월 18일보다 열흘 전쯤에 한 방송에 출연해 "홍 전 차장이 사법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주간조선 2910호 보도 '홍장원 특검 입건 사실, 박지원은 어떻게 알았나?' 참조) 지난 5월 7일 박 의원은 KBC 광주방송에 출연해 "아마 오늘내일(즈음) 홍장원 국정원 차장이 특검에 소환된다"며 "과거에 자기가 이실직고하기 전에 상당한 일을 했다는 것으로 아마 신병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홍 전 차장이 수사대상에 올랐단 이야기는 특검팀 내부에서조차 극소수만 알고 있었는데, 박 의원이 이를 방송에서 언급한 것이다. 당시 박 의원은 주간조선과 통화에서 "제가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 의원의 언급은 현실이 됐다. 발언 후 약 열흘 뒤인 5월 18일, 특검팀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홍 전 차장을 입건한 것이다. 2차 종합특검에는 박 의원이 원장을 지내던 시절 측근으로 분류됐던 인사가 합류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인사는 국정원을 퇴직했다가 특검에 합류한 케이스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윤건영 국회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특검의 기소 몇 시간 전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 전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정부 국가정보원이 불법계엄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주장한 것도 특검 수사와 발을 맞춘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앞선 내란특검 수사 때 홍 전 차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수사에 도움을 준 핵심 참고인이었다.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등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싹 다 잡아들이라'는 전화를 받았고, 여인형으로부터 정치인 등 체포 대상자 명단을 전달받았다"고 폭로했다.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내란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홍 전 차장이 기소될 가능성이 거론될 때부터 거센 반발이 나왔다. 이에 홍 전 차장은 여권 내 스피커로 통하는 김어준 유튜브 등에 출연해 맞불 여론전을 놓았다.
그러자 윤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홍 전 차장에 대한 특검 수사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이다. 윤 의원은 "당시 국정원이 계엄 발생 3개월 전인 2024년 9월 작성된 문건 실물('계엄 상황 시 대공수사권 행사 가능 여부 검토' 문건), 나아가 이런 문건이 신원조사·방첩·감찰담당부서 등 국정원 내부 전 부서에 조직적으로 배포된 사실 또한 직접 확인했다"며 "국정원 다수 부서에서 당시 불법계엄에 가담하기 위한 검토 보고서를 만들었음을 이번에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군과 경찰 못지않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부처로 자처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도 덧붙였다. 윤 의원은 "이런 조직적 움직임에는 당연히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날 밤 11시30분 있었던 조태용 원장 주재 정무직 회의에서 나온 지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정무직 회의에는 조 전 원장을 비롯해 홍 전 1차장과 황 전 2차장 윤오준 전 3차장과 김 전 기조실장이 참여한 바 있다. 즉 비상계엄이 해제되기 전에 열린 이 회의에서 홍 전 차장이 계엄에 가담했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인 셈이다.
윤 의원은 8월 20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에서 정치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고, 그 결과가 대통령까지 보고됐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 차례 민주 정부를 거치며 한 발 한 발 어렵게 만들어간 국정원 개혁이 윤석열의 등장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며 "다시 국정원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첫 단추는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국정원 개혁을 공식화한 셈이다.
다만 이번 국정원 정무직 수사에 대해 청와대 측은 부정적 반응을 특검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차 특검의 논리대로라면 1차 특검이 기소한 내용과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고, 이럴 경우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에 대한 공소유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검, 국정원 직원과 플리바게닝?
국정원 일부 직원들이 홍 전 차장을 기소하기 위해 특검과 사실상의 '플리바게닝'을 했다는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종합특검은 비상계엄 당일인 2024년 12월 3일 밤 홍 전 차장의 지시를 간접적으로 받은 몇몇 국장 명의의 진술을 홍 전 차장 계엄 가담의 중요한 증거로 보고 있다. 특검은 이번 수사에서 전·현직 국정원 직원 11명을 입건해 수사했는데, 기소한 4명을 제외한 7명은 불기소했다. 특검 측은 윤오준 전 3차장에게는 혐의가 없다고 봤고, 이외 피의자들에 대해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과정에서 홍 전 차장 측은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한 국장과의 대질신문을 요청했으나 특검은 "한때 (홍 전 차장이) 상관이었는데 어떻게 대질이 가능하겠냐"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일한 물적증거인 실무관들의 메모에 대한 해석을 두고도 논란이 나오고 있다. 이 메모는 2차 종합특검이 이번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임의제출받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내부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전직 국정원 직원은 주간조선에 "실제로 그날 밤 관련 회의에 참석해 메모를 남길 수 있었던 인원은 200~250명 규모"라며 "특검이 제시한 건 그중 극히 일부, 그것도 컴퓨터에 옮겨 적어놓은 두 사람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다이어리는 연말이면 반납·파기하게 돼 있어 원본 자체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메모가 확보된 점도 석연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홍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주간조선에 "같은 회의를 다룬 두 사람의 메모조차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있다"며 "한 사람은 '경찰청에서 파견관을 충원받으라'고 적었고, 다른 사람은 '우리 직원을 경찰청에 파견한다'고 반대로 적어놨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렇게 충돌하는 기록을 특검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만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