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최종적으로 데스킹하는 입장에서 난감한 것 중 하나는 기자가 자기 기사에 '단독' 간판을 붙여달라고 하는 걸 거절하는 일이다. 어떤 기사에 간판을 달지 정해진 건 없다. 그럴 때면 매체의 프라이드와 기자의 사기 사이에서 고민한다. 과연 '단독'을 달 만한 기사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지만, 무턱대고 거절하면 기자의 사기가 꺾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단독을 달면 매체는 우스워진다. 요즘은 그런 기사가 넘쳐난다. 가급적 매체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향으로 판단하려 하지만, 무턱대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판을 다는 일은 그래서 늘 어렵다.
얼마전 정이한 전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의 자작극을 특종 보도한 권아현 기자가 후속보도 취재 과정에서 그의 학적 기록에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 왔다. 다른 언론에 보도된 바 없는 따끈한 '단독' 기사라고 생각했지만, 권 기자가 먼저 이미 수년 전 한겨레가 이니셜로 기사를 썼던 걸 우연히 확인했다고 알려줬다. 이니셜이란 걸 감안하면 남들은 알 수 없었던 사실이지만, 우리는 '단독'이란 간판을 떼고 기사를 출고했다. 편집장 입장에서도 단독은 욕심나는 간판이지만, 그걸 뗀 일이 더 좋은 언론사가 되는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오래전 일이다. 내가 썼던 '단독' 기사와 똑같은 내용을 한 주요 일간지가 '단독' 타이틀을 달아 내보낸 일이 있었다. 지금보다 혈기가 왕성하던 나는 참지 않고, 언론중재위원회에 해당매체를 제소했다. 언중위는 이런 건 전례 없는 일이라며 심리에서 다루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나는 언중위가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자를 구제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언론의 자정에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심리에서 다뤄달라고 요청했다. 언중위는 내 주장을 받아들였고, 나와 해당 일간지 부장이 언중위 중재위원 앞에 나란히 앉게 됐다. 사실 심리가 이뤄지기도 전에 해당 일간지에서 '단독'이란 문패를 뗐고, 심리도 금세 종료됐다. 심리 후 언중위에 나의 제소건을 사례집에 넣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언론사를 상대로 이런 조치까지 한 건 기사를 도둑맞았다는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매체도 '주간지'란 이유로 단독 베끼기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하물며 수많은 1인 미디어나 소규모 미디어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볼까 싶었다. 그래서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사람들이 기자들을 가리켜 '기레기'라고 하는 시대다. 근거 없는 비난도 많지만, 우리들의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욕을 먹는 건 쉬워도, 신뢰를 회복하는 건 오래 걸린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 안에서 자정이 필요한데, 이번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인터뷰와 관련해 언론이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 주간조선도 홍 전 차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진 않았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