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 우주항공대학 교수·항공우주시스템연구소 소장

70여 년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수많은 성공 신화가 쓰여 왔다. 1969년 인류 최초의 유인 달 착륙, 1997년 발사되어 2004년 토성 궤도에 진입한 카시니 우주선의 토성 탐사, 그리고 2012년 인간이 만든 물체로는 최초로 태양권을 벗어나 성간 공간에 진입한 보이저 1호의 이정표 등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스페이스X가 구축한 스타링크가 우주 경제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언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성취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토양과 동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우주 개발의 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길들여짐을 거부하고 광활한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야생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역시 매번 신기술을 발명해 낸 천재라기보다는, 기존의 성공이 주는 타성과 안락함을 과감히 거부하고 우주라는 거친 들판을 향해 달리는 야생마에 가깝다.
머스크, 타성 벗어나 스페이스X 구축
아놀드, 통념 맞선 연구로 노벨상 수상
장벽 깨는 야생 정신으로 미래 개척을
머스크가 팰컨9 로켓 1단의 수십 회 재사용을 통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재사용이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고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 우주왕복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사용에 접근한 대담한 결단에 기인한다.
과거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발사 비용을 낮추지 못했던 이유는 기술적 한계만은 아니었다.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와 미 공군의 요구에 더해 각 주의 정치적·산업적 이해관계까지 반영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패의 비용이 극도로 큰 경직된 구조가 만들어졌고, 한두 번의 실패는 곧장 사업 전체의 존폐를 흔드는 치명타가 되었다. 반면 머스크는 실패를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만들고, 시험하고, 고치는’ 야생의 반복 루프를 통해 이 거대한 관성을 깨뜨렸다.
이러한 야생의 정신이 위력을 발휘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매년 10월 발표되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다. 20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아놀드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칼텍) 석좌교수가 대표적이다. 프린스턴대에서 기계·항공우주공학, 버클리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생물학 전공자가 아닌 공학자 출신 연구자였다. 1980년대 후반 생물학계에서는 단백질 구조를 이해한 후 효소를 정밀하게 설계하려는 접근법이 주류였다. 하지만 단백질 서열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천문학적으로 많았고, 계산 기반 설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학을 전공한 아놀드는 이 지점에서 판을 바꿨다. 단백질을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최적화가 필요한 역학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바라보고, 수학적 ‘최적화’ 개념을 분자 세계에 적용한 것이다. 내부 원리를 모른다면 자연의 방식인 ‘진화’를 실험실에 복제해 무수한 반복 루프를 돌리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DNA에 인위적인 무작위 돌연변이를 일으킨 뒤, 우수한 변이체만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유도진화’ 기법이었다. 이 방식은 당시 학계의 통념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생물학계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그녀는 오히려 기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적 방법을 시도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93년, 효소의 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변이체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대담한 발상이 옳았음을 실험으로 증명해 냈다.
두 이방인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구어낸 성공의 공통점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지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무지의 수용’이었고, 자신이 속한 분야의 도구를 이웃 분야의 난제에 과감히 들이대는 대담함이었다.
현대의 학계와 사회는 점점 더 좁고 깊은 자신들만의 ‘사일로’(Silo)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 안에서 습득한 지식은 정교할지언정, 성벽 밖의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지 못한다. 장벽 내부의 길들여진 모범생들이 안전한 정답만을 고르고 있을 때, 다음 세대의 신화를 쓸 씨앗은 사그라든다.
이제 우주 분야의 빛나는 성취나 노벨 과학상의 위대한 업적을 볼 때마다,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생태계가 일론 머스크나 프랜시스 아놀드와 같은 비주류의 도전을 포용하고 격려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특히 수도권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도전자’(Underdog)일 수밖에 없는 부울경이 우주 시대의 주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의 박제된 지식이나 장벽 내부에 갇힌 정답이 아니라 민간 주도의 야생의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류의 냉소 속에서도 “왜 안 되지?”라는 투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비주류의 위치를 도리어 기존 게임의 법칙을 뒤집는 특권으로 여길 줄 아는 개척자의 대담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