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트레커의 마지막 성지 듄45
나미비아는 국토의 약 80%가 사막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지도 위에서 보면 붉고 비어 있는 땅, 단순하게 생각하면 삭막하고 건조한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사막 안으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전혀 다른 장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에 빚어진 모래언덕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색을 바꾸고, 말라버린 호수 위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고요히 서 있다. 바다와 맞닿은 사막에서는 안개가 스며들고, 생명들은 물을 찾아 침묵 속을 건너간다. 나미비아의 자연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땅은 태고의 숨결을 품고 있다.
샌드위치 하버 지프 투어, 바다와 사막이 맞닿는 가장 역동적인 순간
나미비아 스와콥문트Swakopmund 남쪽에 자리한 샌드위치 하버Sandwich Harbour는 바다와 사막이 정면으로 맞닿는 독특한 지형을 지닌 곳으로 나미브-나우클루프트국립공원Namib-Naukluft National Park에 속한다. 이 지역은 허가받은 차량만 진입할 수 있고, 여행자는 반드시 지프 투어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염전은 바닷물 속 미생물과 유기물의 영향으로 보라색, 남색, 갈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변한다. 염도는 약 25%에 이르며, 4~6개월이면 약 18cm의 소금층이 생성된다고 한다. 이 일대는 플라밍고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4륜구동 지프를 타고 사구를 질주하던 순간이었다. 현실감이 사라질 만큼 거대한 모래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차안에서는 긴장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사구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갈 때는 잠시 숨을 멈췄지만, 곧 그 아찔함이 스릴로 바뀌었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들처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구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걸어 올라가자 한쪽에는 사막이, 다른 한쪽에는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붉은 사막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경계선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운 좋게도 자칼을 보았다. 사구의 모래보다 더 반짝이는 털을 가지고 유유히 걷고 있었다. 6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핑크빛 염전, 그 위로는 플라밍고 무리가 날아올랐다. 단조로울 줄 알았던 사막은 다양한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샌드위치 하버에서의 시간은 속도를 즐기는 여행이면서도, 동시에 풍경 앞에 멈춰 서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바다와 사막이 맞닿은 그 경계에서, 나미비아는 가장 역동적인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듄45, 붉은 파도를 오르다
소수스블레이Sossusvlei에 자리한 듄45Dune 45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계의 사진작가들은 이곳을 '빛의 극장'이라 부르며 애정을 쏟는다. 듄45의 모래는 붉다. 바다의 바람과 태양, 공기 속 철 성분이 만나 산화되며 오렌지빛으로 물든다. 매일 조금씩 모양이 달라지는 사막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오렌지빛, 금빛, 붉은 자줏빛으로 끊임없이 변주된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새벽 5시, 어둠을 가르며 듄45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막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손끝이 시릴 만큼 서늘했지만, 첫발을 내딛자 곧 모래의 열기가 전해졌다. 듄45는 나미비아의 상징이자, 많은 트레커들이 한 번쯤 오르기를 꿈꾸는 사막의 봉우리이다.
오르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거칠었다. 모래는 발을 붙잡았고, 한 걸음 오르면 반 걸음이 미끄러졌다. 등산화 안으로 모래가 밀려들었다. 숨은 점점 가빠졌다. 해가 뜨기 전의 사막은 참으로 고요했다. 바람 소리마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고, 그 정적 속에서 내 발소리만이 모래 위에 얇은 리듬을 남겼다.
능선을 따라 조금씩 높아질수록 사막의 색이 변했다. 어둠 속 붉은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졌고, 어느새 하늘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모래는 새벽빛을 머금으며 은은하게 빛났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니, 끝없는 붉은 파도가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정상에 도착해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를 태양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의외로 추웠지만, 여명만으로도 온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태양이 얼굴을 내밀자 사막 전체가 불타오르듯 붉게 빛났다. 바람이 능선을 훑고 지나가며 모래 결을 흔들었고, 빛과 그림자가 겹쳐지며 사막은 끊임없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 같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풍경 속에 나를 맡겼다. 이 사막은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하면서도, 동시에 그 미미함을 조용히 일깨웠다.
하산은 순식간이었다.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자 아이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온몸은 모래투성이였지만,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듄45의 일출 트레킹은 나에게 또 하나의 산행이었다. 시간과 빛이 쌓아 올린 붉은 능선을 오르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걸을 이유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시간이 멈춘 계곡, 데드블레이
일출을 보았던 듄45에서 더 깊숙이 세스림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나미브 나우클루프트국립공원 한가운데, 붉은 사막의 상징인 두 거대한 모래언덕 빅대디Big Daddy와 빅마마Big Mama가 마주보고 서 있는 곳이다. 4WD 차량만이 출입할 수 있어서 우리는 타고 온 일반 차량에서 내려 지프로 갈아탔다.
빅마마와 빅대디 중 우리가 향한 곳은 빅대디였다. 높이 약 380m에 이르는 이 사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 중 하나로 꼽힌다. 입구로 향하는 길 위의 풍경부터 시선을 붙잡았다. 바람이 빚어낸 사구의 곡선은 유려했고,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던 스프링복Springbok의 모습은 사막의 영혼처럼 보였다.
지프에서 내려 1km 정도 걸어가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생경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드블레이Dead Vlei'였다.
이름과 달리, 그곳은 시간이 멈춘 풍경이었다. 한때 강이 흐르던 자리는 말라붙은 진흙바닥이 하얗게 굳어 거대한 캔버스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약 800년 전 생을 마친 나무들이 마른 채로 서 있었다. 하늘도, 바람도, 소리도 멈춘 듯 고요했다. 침묵 속에서 왜 이곳이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지 몸으로 실감했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의 무게를 느꼈다. 극도로 건조한 사막 기후 덕분에 나무들은 썩지도, 쓰러지지도 않은 채 8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미라mummy였다. 하얀 진흙 위로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빅대디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에 듄45를 올라서 다리가 무거웠지만 그래도 오르고 싶었다. 모래사구 위를 오르는 일은 인생을 닮아 있었다. 빠지고, 다시 딛고, 무너지는 반복. 나는 문득 내 삶의 여정을 떠올렸다.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경이로웠다. 360°로 펼쳐진 붉은 사막과, 그 아래 데드블레이의 하얀 대지. 그 위에 남겨진 검은 나무의 흔적들은 또 다른 시간과 세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붉은 모래와 하얀 진흙, 그 사이에 점점이 박힌 검은 나무들.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추상적인 예술 작품이었다.
하산은 순식간이었다. 발이 모래에 닿자마자 사각사각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빠르지만 유쾌했고, 경쾌했지만 못내 아쉬웠다. 태양과 바람, 모래와 시간. 그 위에서 마음껏 머물렀던 시간이었다. 듄45와는 전혀 다른 결의 사막. 빅대디는 나미비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장엄한 침묵이었다.
사막에서 별을 그리다 별빛도 달빛도 총총한 밤. 별 사진을 찍는 데 최상의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사막의 밤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나는 세스림의 밤을 선택했다.
세상이 잠든 시간, 사막 한가운데에 삼각대를 세웠다. 모래 위에 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별의 궤적을 담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다. 샘플촬영 후에 2초 간격으로 2시간 동안 1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들이 겹쳐질 때, 별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그릴 긴 곡선을 상상했다. 사막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낮 동안 데워졌던 모래가 식으며 풍기는 미묘한 냄새가 공기 속에 섞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는 그 고요를 더 깊게 만들었다. 찬 공기가 옷 사이로 스며들 때는 로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손을 비비며 머리 위를 보니, 수많은 별빛이 그마저 잊게 했다. 카메라의 찰칵 소리만이 고요를 깼다. 두 시간 동안 지루함은 전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별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기고 100여 장의 사진을 겹치자, 하늘이 천천히 회전하며 남긴 별의 궤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곡선 안에는 사막의 숨결과, 그 밤을 버텨낸 나의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카메라 속에 담긴 결과는 오히려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미비아에서의 모든 순간이 그랬다. 태고의 숨결은 발바닥으로 전해졌고, 붉은 모래 속에 숨 쉬고 있었고, 별빛으로 쏟아졌다. 나미비아를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라 부르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Info
나미비아 사막 여행 정보
항공 및 이동 한국에서 직항편은 없다. 요하네스버그, 도하, 두바이를 경유해야 하며 윈트후크 국제공항까지 약 20~24시간 소요된다. 윈트후크에서 승용차로 스와콥문트까지 4시간, 세스림까지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렌터카 또는 현지 투어를 권장한다.
여행 시기 건기인 4~10월이 여행하기엔 최적이다. 일교차가 무척 심해서 보온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낮에는 30℃, 밤에는 5℃ 이하).
참고 나미비아는 현지 예약이 쉽지 않으므로 사전 예약을 추천.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