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사 탐방지원센터~장군봉~천제단~문수봉~소문수봉~당골 10km
정상에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 얼마나 짧은 시간에 최단 거리로 하산하는지가 등산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기록은 숫자로 남고, 산행은 앱 속 그래프로 요약된다. 정상석 앞에서 찍은 사진이 산을 다녀왔다는 증명이 되고, 성취감은 곧 등산의 전부인 양 소비된다.
그러나 산은 원래 속도를 재는 공간이 아니었다. 흙길의 감촉을 느끼고, 숲 냄새를 맡고, 잠시 멈춰 서서 능선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이 산행의 본질에 더 가까웠다. 정상은 과정의 끝이 아니라, 과정 속에 놓인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느린 등산'은 뒤처짐이 아니라 자연과의 속 깊은 대화다. 속도를 낮추는 순간, 그동안 지나쳤던 풍경과 향기, 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빨리 오르느라 놓쳤던 풀잎의 흔들림, 계곡물의 온도, 발걸음 사이의 침묵이 산행의 주인공이 된다. 나를 비우고, 산이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일 때, 걸음은 느려지지만 산행은 깊어진다.
저는 태백산입니다
나는 하늘을 먼저 맞이하는 산입니다. 백두대간의 한복판, 이름 그대로 큰 산의 머리에서 바람과 구름이 쉬어 갑니다. 사람들은 나를 '민족의 영산'이라 부르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국가도, 국경도, 기록도 없던 시절부터 말이지요.
내 어깨에는 고원高原이 펼쳐져 있습니다. 다른 산들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르기보다는, 넓고 평평하게 하늘을 받치고 있지요. 천제단으로 오르는 길에서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정상이 어디냐"고요. 나는 웃음으로 답합니다. 이미 이곳이 정상이라고. 내가 품은 하늘은, 급히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연초에 나를 많이 찾아옵니다.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봄과 가을에 찾는 이가 많지만, 나는 1월 등산객이 가장 많아요. 첩첩이 쌓인 기도의 시간 덕분이지요. 내 머리 꼭대기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는데, 천왕단, 장군단, 하단으로 이어지는 돌무더기 제사 터가 있어요. 새해가 되면 등산마니아를 비롯해 기업인, 무속인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을 기원하러 온답니다.
그래요. 제단에는 돌만 쌓인 것이 아니라, 염원이 쌓여 있답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도, 개인의 삶이 막막할 때도 사람들은 하늘에 말을 전하고 싶어 내게 올라왔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답을 찾았습니다.
나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기암도, 북한산 백운대 같은 통바위도, 계룡산 자연성릉 같은 멋진 벼랑도 없답니다. 둥글고 순한 능선과 숲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내 숲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늙은 주목과 분비나무, 거센 바람을 견딘 고산식물들이 낮고 단단하게 자랍니다. 내게서 흘러간 물줄기는 한강이 되고, 낙동강이 되고, 오십천이 되었지요. 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린 강물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신성한 산이라 불렸는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정복의 산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을 품고 있어요. 정상 아래 해발 1,470m에 있는 망경사입니다. 신라 진덕여왕 때(652년) 자장율사가 세웠지요. 인근 정암사에서 노년을 보내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석상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세운 절이에요.
망경사에는 용정龍井과 단종비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라고도 불리는 용정은 천제단에 제사 지낼 때 정화수로 쓰였고, 물맛이 좋다고 다들 칭찬해요. 단종비각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죽어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는 백성들이 세웠답니다.
사계절 중에서도 겨울이 가장 나다운 계절이지요. 눈보라가 능선을 덮고, 체감온도가 영하 수십 ℃로 떨어질 때, 사람들은 비로소 내 진짜 얼굴을 만납니다. 그때서야 알게 되지요. 속도를 내려놓지 않으면, 나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탄광촌의 검은 얼굴들, 새벽 첫차를 타고 올라온 노동자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제단에 돌 하나를 얹던 부모들까지. 누구도 내게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잠시 머문 시간만으로도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내려갔습니다.
나를 오르는 길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산행도 아닙니다. 넓은 능선과 고요한 고원은 자꾸만 걸음을 늦추게 하지요. 숨을 고르고, 바람을 듣고, 발아래 펼쳐진 백두대간의 흐름을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의미를 잃습니다.
나는 정복의 산이 아닙니다. 인증사진 한 장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나는 묻지요. 당신은 얼마나 빨리 올랐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고 왔는지를요. 오늘도 나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말없이 떠오르는 해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속도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을, 비로소 산을 만나러 오는 사람을.
심란한 시작이다. 어둠은 깊고, 바람은 흉악한 조직 폭력배 같다. 피부가 노출된 곳만 골라 얼음칼을 푹푹 찌른다. 하지만 저 어둠 너머 기적 같은 태양의 솟구침이 있음을 안다.
불빛이 반갑다. 임도가 끝나는 유일사 짐 수송용 케이블카 종점에서 삭혀야 할 것들을 정리한다. 가라앉지 않은 일상의 상념들 배낭에 꼭꼭 눌러 담고, 진짜 산행을 시작한다.
휴대폰과 노트북 화면에 갇혀 있던 내가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세상이 바뀌는 기적 같은 여명. 혹독하고 거대한 아름다움, 심장을 삼킬 듯 숨이 거칠지만 지금 너무 행복하다.
높이가 아닌 깊이로 정상이 정해지기도 한다. 태백산이 그렇다. 최고봉은 장군봉이지만, 하늘과 통한 곳은 천제단이 있는 봉우리다. 장군봉의 제단은 '장군단'이라 불린다. 속도를 내어 천제단으로 향하는 김도연씨. 100명산을 다 오르고도 매주 산을 오르는 찐 등산 마니아다.
밤과 낮이 바뀌자, 관객이 빠져나간다. 해가 둥글게 떠오르자 불 켜진 극장처럼 등산객들이 사라졌다. 시베리아에서 온 흉포한 사내가 러시아 말을 하며 불어 댄다. 몸이 따갑다가, 아려오고, 감각이 없어진다. 빨리 떠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온 몸이 반응하지만, 거대한 풍경을 1초만 더 보고 싶다.
설산은 아름답고, 혹독하며, 고독하다. 홀로 설산을 걷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산전수전 넘고 넘어 삶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임이 분명하다.
숨은 미인이다. 문수봉과 소문수봉은 장군봉과는 다른 미모의 봉우리다. 찾는 이가 드물어 더 좋은 이곳에 서면, 태백산이 그제야 드러난다. 적당히 거리를 둘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혜롭고 개성 있는 문수봉·소문수봉은 태백산의 숨은 즐거움이다.
비탈이 누그러지는 곳에 잎갈나무가 마중 나왔다. 곧게 뻗은 숲은 정갈한 공기를 품고 있어 "애 썼다"고 등을 토닥이는 것만 같다. 발디딤 푹신한 숲에서 "토닥토닥" 달궈진 몸을 가라앉히는 산. 깔끔한 하산이다.

값비싼 장비보다는 체력과 경험이 우선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장비는 낡았다. 유행 지난 2010년 이전 제품이 많다. 혹독한 겨울 능선에서도 낡은 장비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제품을 써보고 신념이 흔들렸다.
블랙다이아몬드의 등반가를 위한 알파인 패딩을 태백산에서 입었다. '옷이 좋아져봤자 옷이지'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미션다운 4000M' 패딩은 체감 온도 영하 30℃를 밑도는 혹독한 천제단을 여유로운 곳으로 바꿔주었다. 휴대폰 촬영을 위해 잠깐 장갑을 벗었을 때 혈액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은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보온병의 뜨거운 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른 등산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다 못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때, 여유롭게 경치를 즐기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보통 패딩을 벗고 운행하는 편인데, 그럴 생각을 못 할 만큼 날씨가 쌀쌀했다. 당연히 땀이 찰 거라 여겼는데, 의외로 쾌적했다. 분명 고어텍스 같은 땀 배출 기능이 있는 소재가 아닌데, 빠른 걸음에도 땀이 차지 않았다. 지퍼를 내리는 정도의 조절은 했지만, 옷을 벗지 않아도 더울 정도는 아니었다.
800필파워의 구스다운을 사용했고, '액정 풀리머 립스탑 쉘' 원단을 외피로 사용했다. 이름은 어렵지만 초경량에 내구성이 뛰어나고, 적당한 방수 기능도 갖췄다. 개인적으로 피부에 닿는 촉감과 움직였을 때 얼마나 부드러운지, 즉 편한지를 중요시하는데, 옷을 안 입은 것 같았다. 가볍고, 따뜻하고, 편하고, 격렬한 움직임에도 불편이 없었다. 패딩 길이가 엉덩이 위쪽을 덮어줄 정도로 길어, 칼바람 부는 능선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모자가 달린 것이 좋았고 고무줄 같은 스트링을 한 번 당기는 것만으로 모자와 허리 아랫단을 조일 수 있어서, 빙벽등반과 고산등반 시에도 빠르고 쾌적할 것 같았다. 산행 취재 특성상, 휴대폰과 보조배터리와 선글라스 같은 여러 장비를 넣었다 빼길 반복하는데, 가슴 양쪽에 포켓이 있고, 아래에 양쪽 주머니가 있고, 안주머니도 양쪽에 있어, 수납 끝판왕 격이었다. 태백산을 내려오며 '패딩이 이렇게 많이 발전했구나'하는 걸 실감했다. 겉보기엔 평범한데, 패딩의 기본기인 보온력과 무게, 세심함에서 과거의 장비와 차이가 있었다. 행여 지름신이 생길까봐 걱정이다.
2010년 이전에 출시된 장갑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얇은 장갑, 두꺼운 장갑, 더 두꺼운 손모아 장갑까지, 필요한 장갑은 다 있다고 자부했다. 새로운 장갑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태백산에서 글리세이드 장갑을 껴보고, '장비가 참 많이 발전했다'는 걸 체험했다.
동계용인데 무게부터 다르다. 훨씬 가볍고 촉감이 부드럽다. 따뜻한 건 기본이고, 두꺼운 장갑인데도 힘들이지 않고 손가락이 편하게 접힌다. 산행 중 배낭을 잠깐 벗거나 보온병을 꺼내어 마개를 여는 등, 기존의 동계용 장갑으로는 어렵던 미세한 조작이 뛰어나다.
눈이나 얼음을 잠깐씩 짚어도 방수력이 우수하고, 촉감이 부드러운데도 바람을 잘 막아 준다. 격렬한 산행에서 땀이 잘 차지 않아 산행 시작부터 당골로 하산할 때까지 내내 착용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장갑에 재활용 소재를 78%나 사용한 친환경 제품이다. 블랙다이아몬드 제품은 하강기, 헬멧, 카라비너 같은 등반장비와 스틱(트레킹폴) 전문으로만 생각했는데, 혹한기 등산인을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많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고산등반과 알파인 등반가를 위한 제품으로 설계되어, 한국 설산에서 차고 넘치는 제품력이다.

❶ 고도 700m를 높이는 산행이다. 유일사 입구와 당골광장 고도가 약 900m에 이른다. 태백산 높이에 비하면 태백의 평균 고도가 높아서 산행이 수월하다.
❷ 시작은 어디든 힘들다. 유일사, 백단사, 당골 중 어디를 출발지로 삼더라도 정상까지 가파르다. 급경사를 2시간가량 올라야 하므로, 너무 만만하게 보면 어려울 수 있다.
❸ 유일사 기점은 장군봉까지 3.6km로 최단 거리이며, 해발 1,250m 유일사까지 임도가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일출 산행 시 초반 야간 산행에 유리하다.
❹ 최고봉은 장군봉이지만, 정상은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린 천제단이다. 유일사 방면에서 오면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가 장군봉이며, 300m를 더 가면 정상인 천제단이다. 돌로 쌓은 제단이 3곳 있어 헷갈릴 수 있다. 장군봉의 장군단, 정상의 천왕단(천제단), 하단(완만한 능선에 있음)에 각각 있다. 정상석은 장군봉과 천제단에 각각 있으나, 천제단의 '太白山' 표지석이 정상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❺ 문수봉은 태백산의 숨은 미인 같은 봉우리다. 태백산을 찾은 8할 이상의 산객은 천제단만 올랐다가 하산한다. 문수봉에는 예술적인 너덜과 독특한 돌탑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정상에서 1시간 거리이지만 비교적 오르내림이 크지 않아 어렵지 않다.
❻ 소문수봉도 숨은 명봉이다. 정상에서 볼 수 없었던 경북 봉화군의 첩첩산중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문수봉에서 10분만 가면 닿는다.
❼ 하산 갈림길 주의. 소문수봉에서 아무 생각 없이 가면 당골로 내려서는 하산 갈림길을 놓치게 된다. 능선 따라 직진하면 금천으로 내려서는데 교통이 불편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❽ 당골로 내려서는 길에는 얼어붙은 빙판이 숨어 있다. 북사면이라 얼어붙은 곳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아이젠을 끼고 가야 안전하다.
❾ 산행 거리 10km로 짧지 않지만, 산행 시작 후 2시간과, 하산 직전 1시간만 주의하면 어렵지 않다.
❿ 시야가 트인 정상 일대에는 체감 온도를 10~20℃ 떨어뜨리는 매서운 바람이 분다. 보온옷과 방풍재킷, 귀마개, 장갑, 발라클라바, 선글라스 등을 준비해 피부가 노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서울→ 태백
청량리역에서 태백역으로 가는 무궁화호와 ITX열차가 운행한다. 무궁화호는 하루 4회(07:34, 10:40, 11:43, 19:10) 운행(1만5,200원)하며 3시간 20분에서 3시간 45분 가량 걸린다. ITX는 하루 1회(17:08) 운행(2만1,600원)하며 저녁 8시에 도착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버스가 새벽 6시부터 22시 30분까지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3시간 10분 걸리며 요금은 3만5,200원.
태백시내에서 당골까지 9km 거리이며, 택시요금 1만3,000원 정도 나온다. 유일사 입구까지는 1만6,000원 정도.
당골에서 택시를 타고 1만3,000원 정도면 유일사 주차장에 닿는다. 당골이 가장 번화한 산행 기점이므로, 당골을 기점으로 삼아야 택시를 타거나, 시내로의 이동이 편하다.
당골, 유일사, 백단사 입구에는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어 편리하다. 문의 태백 콜택시(552-4747)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태백산민박촌은 평일 기준 2인실 4만5,000원, 4인실 7만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당골에 있어 산행과 연계한 숙소로 효율적이다.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에서 예약 가능하다. 태백시내에 다양한 숙소가 많다. 당골 입구의 보석사우나(554-4311)와 시내의 성지24시불가마찜질방(552-3039) 이용 시 1만 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목욕과 찜질, 숙박을 겸할 수 있다.
등산 지도- 별책부록 대형지도 참조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