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서 만난 11인의 등산객 "산이 주는 보상은 공평해요" 황찬하(38) 경기 성남시 국제학교 행정원인 그는 두 달 전 등산에 입문한 '등린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30대 중반까지 몸무게 130kg 초고도비만이었던 그는 "목숨도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2년 반 동안 혹독한 다이어트를 실행한 끝에 75kg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불산'이라는 동네 야산도 지쳐 포기했던 그는 이제야 등산에 재미를 붙였다. 산이 왜 좋으냐는 물음에, "누구나 힘들게 올라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공평하다"고 답했다.
"쉬엄쉬엄 가면 하나도 안 아파요" 유복순(70) 경기 남양주 앞서 두 번의 인터뷰를 퇴짜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사이, 저 멀리 걸어 내려오는 중년 여성. 귀여운 털방울이 달린 모자를 쓴 그녀를 멈춰 세웠다. "잠깐 시간 되시냐"는 말에 그녀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남양주에 사는 그녀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도봉산에 다닌다. 도봉산을 '오르기'보다는 '다니는' 것에 가깝다. "욕심내지 않고 '가다말다' 하면 무릎 건강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제는 자녀도 결혼해서 독립하고, 호젓이 산행하는 것이 그녀의 취미이다.
"부처님, 또 왔어요!" 이효진(50) · 허진서(25) · 허진영(21) 경기 안양시 처음엔 누나와 두 남동생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엄마가 동안이었다. 패딩을 반쯤 내리고 헐떡거리는 모습이 얼핏 봐도 등산객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천축사에 가는 중이었다. 주말에 남편이랑 같이 오곤 했는데, 이번엔 방학을 맞이한 두 아들과 함께 왔다. 일 년에 두 번씩은 온다. "천축사는 큰 절은 아니다"며 "몇 년 전 세 번 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세 번 왔더니 정말로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어떤 소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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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은 처음이라···" 박영남(59) · 박규민(21) 서울 강동구 누가 보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도봉산이 두 번째고, 아들은 처음인데, "산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건설·토목업에서 종사하다 은퇴하고, 최근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전선 지중화地中化, 즉 전선을 땅에 묻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생인 아들은 요즘 대세인 반도체학과에 재학 중이다. 머지않아 국내 굴지의 반도체 제조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걸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걸까?
"직장 상사와 같이 왔어요" 조민철(31) 경기 의정부시 이 사람은 조금 특이하다. 남들은 직장 상사가 쉬는 날에 등산 가자고 하면 질색하는데, 그는 오히려 직상 상사를 모시고 산에 왔다. 혹시 상사에게 끌려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 저만치 상사가 있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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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살 빼기 다이어트 시작!" 배정희(54) · 정종순(54) · 정영수(22) 경기 광명시 온 가족이 '살빼기 다이어트' 에 돌입했다. 이렇게 귀여운 가족활동이 또 있을까? 옛날에 도봉산 근처에 살았던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거의 20년 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세 명 중에 그나마 산을 좀 다닌 사람은 엄마. "충남 예산 덕숭산이 높지는 않았는데 수덕사 아름다운 풍경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100대 명산 중에 열댓 개를 올랐다. 역시 엄마가 가족의 선봉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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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휴가 중 등산 왔습니다!" 장명훈(27) 대구광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정상 신선대를 앞둔 지점에서 군복을 입은 청년이 보였다. 산악훈련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휴가를 반납한 순전히 자발적인 산행이었다. 일주일간 휴가를 나와서 서울에 며칠 머무는 김에 산에 왔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군복 차림으로 왔다. 병과는 조리병(취사병).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수백 명 장병의 끼니를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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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이 장가를 안 가서 큰일이네!" 손종문(60) 경기 부천시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건네 온 산객이다. 신선대 바위절벽에 매달려서 "어디서 왔냐?"고 한마디 건넨다. 그저께 소백산에 갔는데 EBS 한국기행 촬영팀과 만나더니 오늘은 월간 <산>과 만나 신기할 따름이라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산에 다니는데 둘레길을 더 자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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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커피는 산에서 마셔야 제맛이지" 변형균(70) 경기 남양주시 "1년에 300일은 산에 다닌다"는 산꾼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든 코스를 외우고 있다"는 그는 유제품 제조업에서 정년을 채우고, 지금은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며 격일제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다음날 집에서 누워 있는 것보다 피곤하더라도 산에 가는 게 오히려 피로회복에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부터 산에 오면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꼬였던 문제가 풀리는 게 좋았다고. 한라산도 스무 번은 올랐는데, 1987년 신혼여행 때 아내와 함께 한라산에 올랐던 기억이 각별하다. 5년 전부터 아내는 혈압 때문에 집에서 쉬고 지금은 혼자서 산을 즐긴다.
"국토종주 두 번한 몸이여!" 최성재(58)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불수사도북'을 다섯 번 종주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5번 넘었다. 서울을 한 바퀴 도는 서울둘레길 21구간을 완주했다. 3박4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다. "두 번 다시 애 안 낳는다 해놓고 또 낳는다는 말처럼, 죽을 듯이 고생하고 기어코 다시 한 번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게 낮추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산이 금연시켜줘서 좋아요" 김남주(62) 인천 중구 해질 무렵 인적 드문 우이암 능선에서 만난 중년의 남성. 사패산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해 도봉산을 종주 중이던 그는 자신을 국가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지방 근무가 잦아 강원도와 전북의 산을 많이 다녔다는 그는 원주·전주·대구교도소장을 역임하고 얼마 전 정년퇴임했다. "나이 들면 허벅지살이 빠지는데 산에 다니니까 현상유지가 된다"고 말한다. 더 좋은 건 금연 효과인데, 애연가인 그는 "산에 오면 한나절 동안 담배를 안 피우게 돼서 좋다"고도 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