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등반나는 암벽 등반을 참 못한다. 입문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아 여태 초보다. 그런 주제에 요세미티에 따라갔다. 세계 암벽 등반의 성지, 높이 900m 화강암 거벽이 늘어선 골짜기. 실력으로 따지면 언감생심이었지만 너무 가보고 싶어서 선배들의 배려에 염치없이 묻어갔다. '엘 캐피탄' 아래에 처음 섰을 때, 나는 그것이 오를 수 있는 벽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잡을 곳도 디딜 곳도 없어 보이는 벽.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한껏 젖혀야 했고, 그렇게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목이 뻐근하고 어지러웠다. 수백 미터 위에는 점보다 작은 사람 몇 명이 조금씩 위로 옮겨가고 있었다. 육중한 장비를 동원하는 인공등반. 저러다 해가 지면 포타레지를 펼쳐 밤을 보낼 것이었다. 떨어지면 모든 게 끝나는 높이에 매달려서.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화강암 거벽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고 나를 주눅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수직을 향한 인간의 욕망 트래드 등반으로 선배들을 따라 오르는 동안 나는 올라가는 시간보다 매달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손가락 한 마디를 바위틈에 끼우고 발끝을 좁쌀만 한 돌기에 얹어가며 겨우 조금씩 올라갔다. 바위의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고, 숨은 입안에서만 가빠졌다.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아무리 안정을 취하려고 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클라이머들이 재봉틀이라고 부르는 그 떨림이었다. 내 몸을 내가 부리면서도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려 보면 한 뼘씩 올라가 있을 뿐이었다. 시종일관 무서웠고 목이 말랐고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시간 한가운데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못 하는 인간까지 이 벽에 붙어 있다면, 도대체 인류는 어쩌다 절벽을 오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걸까. 내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 이전에 인간이 이런 기괴한 욕망을 가졌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인간은 수평의 동물이다. 360만 년 동안 우리 몸은 평평한 땅을 오래 걷도록 다듬어졌다. 발바닥의 아치도, 곧게 선 척추도, 앞을 향한 시선도 모두 수평을 위한 진화였다. 그런 동물이 어느 날 벽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수직은 본래 새와 벌레의 영역이었다. 네 발 짐승은 벽을 오르지 않는다. 산양이 절벽을 타는 것은 생존 본능일 뿐이다. 오를 필요가 없는 벽을, 그것도 더 어려운 길을 일부러 찾아 오르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요세미티에서 돌아온 뒤로 수직을 탐닉한 인류의 계보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의외로 얼마 되지 않은 욕망이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라 피하는 곳이었다. 알프스 곁을 지나던 마차 여행자들은 커튼을 내려 산을 보지 않으려 했다. 악마가 사는 흉측한 땅이라고. 산이 아름다워진 것은 겨우 18세기의 일이었다. 시인과 화가들이 먼저 산에서 공포와 황홀이 뒤섞인 감정을 발견했고,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봉우리를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 변한 것은 산이 아니라 산을 보는 인간의 눈이었다.
벽 위의 몸은 다른 시간을 산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에베레스트로 떠나는 '조지 말로리'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아마도 등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답일 테지. 말로리는 멋있게 답했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사실 정답은 아니었다. 바다도 거기 있고, 사막도 거기 있고, 세상 모든 것이 거기 있으니까. 말로리의 말이 100년을 살아남은 것은, 등반에는 끝내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우아하게 인정한 말이어서 그렇다. 말로리는 결국 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보상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다. 정상은 닿는 순간 돌아서야 하는 곳이다.
내가 요세미티의 벽에 매달려 품었던 질문은, 100년이 지나도록 답이 없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벽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그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나처럼 매달려 있는 시간이 더 긴 사람은 예외겠지만. 벽 위의 몸은 다른 시간을 산다. 다음 홀드, 다음 발 디딤, 그리고 숨 한 번. 그것이 세계의 전부가 된다. 어제의 후회도 내일의 걱정도 벽 위에서는 없다. 추락의 공포가 클라이머의 정신을 '지금 이 순간'에 못 박는 것이다. 명상가들이 평생의 수련으로 도달하려는 자리에 등반가는 공포를 등에 업고 단숨에 도달한다.
정상은 올라갈 곳이 사라지는 '빈자리' 공포는 벽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엘 캐피탄 아래에서 목이 뻐근할 정도로 한참을 올려다볼 때에도 내 손바닥에는 땀이 차 있었다. 추락은 저 위에 있는데 공포는 내 손 안까지 들어차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산양은 절벽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인간만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추락을 상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온한 상상이 인간을 벽에 붙을 수 있게 만들었다. 추락을 그릴 수 있기에 인간은 추락을 피하는 방법을 궁리했고, 밧줄과 하네스, 그리고 수많은 확보 장비를 만들었다. 공포를 상상하는 능력이 공포를 다루는 기술이 된 것이다. 인간의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 닿지 않은 정상에 선 자신도 미리 보게 한다. 정상은 풍요로운 장소가 아니라,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사라지는 빈자리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빈자리에 선 자신의 모습을 먼저 그린다. 더는 오를 필요가 없는 순간을. 한동안 자신을 밀어 올리던 공포와 욕망이 문득 멈추는 순간을. 추락의 상상과 등정의 상상은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다. 등반가는 그 쌍둥이를 데리고 텅 빈 찰나를 향해 오르는 수행자다. 등반가가 담력이 좋다는 것은 오해다. 그들은 누구보다 또렷하게 추락을 상상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그 두려움과 동행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에 남아 있다.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의 반세기 넘은 루트에는 처음 오른 이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이름은 바위에 새기는 묘비명 같은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공포를 통과한 사람의 표식이다. 그리고 그 표식의 주인들은 다 같은 일을 했다. 내려오는 일. 모든 등반은 내려옴으로 끝난다.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돌아서는 곳이다. 허망하기 짝이 없게도.
손끝에 밴 바위의 감각 엘 캐피탄에서 내려오자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벽을 돌아보았다. 내가 붙어 있던 자리가 어디쯤이었을까? 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끈하게 솟아 있었다. 달빛을 받은 거벽의 위용은 서늘하고도 당당했다. 한낮에 까졌던 손바닥이 이제야 쓰라렸다. 그 쓰라림만이 내가 저 벽에 붙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날 밤 침낭 속에 고단한 몸을 누이자 화강암 벽의 결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도록 손끝엔 바위를 더듬던 감각이 잔잔하게 배어 있었다. 걸음의 기억이 몸에 새겨지듯이 매달린 손의 기억도 몸에 새겨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요세미티에서 끝내 잘 오르지 못했지만 깨달은 것은 선명하다. 인간은 갈 필요가 없는 곳에 기어이 가고야 마는 동물이라는 것. 이 기이한 욕망은 쉽게 설명되지 않기에 '산이 거기에 있어서 간다'는 말로리의 답이 100년째 갱신되지 않는 것이겠지. 짐승은 먹이가 있는 곳으로, 물이 있는 곳으로, 살기 위해 움직인다. 오직 인간만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수직의 세계를 꿈꾼다. 그 꿈을 좇아 기어이 중력을 거슬러 텅 빈 정상에 닿는다. 인간은 걷는 동물로 태어났지만, 끝내 손끝으로 이동하는 법까지 배우고 말았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