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롱블랙' 에디터와 산행
등산 싫어하는 사람을 꾀어내 같이 산에 가기 위한 나만의 장치, '등산 시렁 통발'은 내 주변 곳곳에 설치된 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 통발에 들어 있는 미끼는 나의 SNS 계정일 수 있고, 월간산 SNS 계정일 수도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몇 년 전 발행된 <등산 시렁> 단행본이다. 정확하게 생후 19개월인 이 책은 아직까지 누군가가 읽고 있다. 미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이 통발 속으로 <등산 시렁>을 읽은 아주 큰 등산 헤이터Hater(~를 싫어하는 사람)가 걸려들었다. 이 등산 헤이터는 또 자발적으로 나에게 함께 산에 가자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신나래. <롱블랙>이라고 하는 인터넷 매체의 에디터다. 그녀는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나를 인터뷰해서 롱블랙에 싣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보낸 메일 제목은 이렇다.
'등산 시렁 인간도 산에 스며들게 만드는 윤성중 기자님께 인터뷰를 청합니다.'
나와 3시간 정도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거절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좋다고 화답했다.
롱블랙이란 무엇인가? 월간산과는 다른 '뉴미디어'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발행한다. 독특한 점이 있다. 하루에 딱 하나의 기사만 발행한다. 즉 발행된 기사는 자정부터 24시간만 읽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유료 회원 가입 후, 콘텐츠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긴 하다). 텍스트로 된 기사를 희소성 전략으로 풀어놓는 방식인데, 이것이 대중에게 큰 관심을 유발시킨 모양이다. 롱블랙은 내가 봤을 때 아주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주변에 이 매체를 아는 사람이 많다.
우선 나는 의아했다. 나를 인터뷰해서 뭘 어쩌려고 그러지? 롱블랙이라는 회사에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닐 텐데? 궁금한 점이 많았다. 같이 산에 가서 물어보기로 하고 질문 목록을 작성해 신나래 에디터에게 보냈다.
며칠이 지나 그녀와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했고 나는 장황하고 복잡하게,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엉덩이가 들썩이면서 오금이 저릴 무렵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산에 가자고 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뭐지? 등산 싫어하는 사람 맞나? 의심이 갔다.
우리는 회사 건물 앞에 있는 작은 산으로 갔다. 이 산은 매우 낮다. 너무 낮아서 지도에 높이조차 표시 되어 있지 않다. 산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의 크기인데, 등산 싫어하는 사람을 끌어들이기엔 아주 좋은 산이다. 나는 산길로 쑥 들어갔다. 신나래 에디터도 따라 들어왔다. 사진기자도 함께. 우리는 회색 빌딩숲에서 별안간 녹색으로 뒤덮인 공간으로 이동했다. 덥고 습했다. 벌레가 귓가에서 웽웽 거렸다. 그녀가 등산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날씨와 벌레가 망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과 기분을 돌리기 위해 재빨리 질문했다.
"저를 인터뷰하는 게 롱블랙에 도움이 될까요?"
신나래 에디터가 대답했다.
"되죠. 됩니다."
"그냥 단순한 읽을거리인가요? 아니면,"
"롱블랙은 영감과 배움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기조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분들을 인터뷰이(인터뷰를 받는 사람)로 선정하는데, 과거에는 비즈니스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사람이 많았어요. 요즘은 인문, 교양학적 부분에 관한 요구가 많아져서 아이템 선정하는 범위가 더 넓어졌죠. 그런데 우리가 등산에 관해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어요. 등산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기자님이었어요."
"제가 교훈적인 사람은 아닌데요."
"교훈까진 필요 없어요. 교훈은 왠지 칠판 앞에서 선생님이 정답을 알려주는 느낌인데, 그보다 독자가 스스로 느끼고 가져갈 수 있는 배움이면 충분해요. 기자님은 그걸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감도 아닌 것 같은데."
"영감도 있어요!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식으로 산을 바라보게 했으니까요."
내가 교훈적이거나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는데, 그렇다치고 우리는 오르막을 올랐다.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산에 전혀 안 가세요?"
"작년에 갔어요! 홍제동 쪽에 개미마을이라는 곳에 우연히 갔다가 마을 꼭대기가 산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산인줄 모르고 들어갔는데, 인왕산이었던 것 같아요. 올라가다보니까 좀 높은 데까지 갔어요. 기차바위였나?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바위가 많고, 게다가 그날 바람이 세게 불었어요. 몸을 날릴 것 같은 바람을 뚫고 바위에 기어서 올라갔어요. 바위 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바라보니 안에서 뭔가가 차올랐어요."
"에너지인가요?"
"네, 그런 거예요. 기자님한테는 높은 곳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에게는 굉장한 곳이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헐, 그 정도 오르고, 그런 기분을 느꼈다니! 그런데 그 이후로 왜 산에 안 갔나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 지금도 힘들어요. 보세요. 헐떡대고 있잖아요!"
"헉, 속도를 줄일까요?"
"네, 좋아요."
나는 꼰대였나?
대화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져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산과 도시를 넘나들며 생활하는 입장에서 나는 반대 경우의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다. 반대 경우란 자연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도시에서만 생활하는 사람 말이다. 두 종류의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극명한 차이점 같은 게 있을까? 늘 궁금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 피부가 까맣고 하얗고. 까맣고 하얗고를 자주 넘나들며 반복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다. 표면적인 차이 말고 내적으로 그녀와 나는 뭐가 다를까? 궁금했는데,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자연이라는 공간이 산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천변도 있잖아요. 홍제천, 불광천 같은 거요. 그것도 자연이잖아요! 월드컵공원 이런 데 있잖아요. 공원 산책 자주 해요. 거기서 힐링해요."
"음, 그건 인공적인 건데. 그런 것도 자연일 수 있군요. 자연이라고 하면 저는 대자연, 이런 거만 떠올라서. 그렇다면 엄밀히 따져서 에디터님한테는 산이 없어도 되겠네요?"
"산을 바라보는 건 좋아해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산은 있어야 해요!"`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어느새 인공적인 자연은 자연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또 크고 웅장한 것만 자연이라면서 그녀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 머쓱해졌다. 여기서 신나래 에디터와 나의 차이점을 깨달았다. 산에 관한한 나는 단정짓고 강요하는 반면, 그녀는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즐긴다는 것이다. 이걸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라고 봐도 될까? 단정짓고 강요하는 것이 100%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손해볼 가능성은 반대의 경우보다 아주 많다. 우선 상대방에게 고집쟁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외톨이가 될 수 있다. 외톨이가 되면 쓸쓸하고 외롭다. 슬플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즐거울 수 있는 기회를 모조리 날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열린 생각은 반대의 경우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녀가 인왕산 낮은 바위에 올라 굉장한 기분을 느꼈듯이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녀보다 덜 행복할 수도 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창피한 생각이 들려는 순간, 오르막이 나왔다. 분위기를 전환할 좋은 찬스였다. 나는 말했다.
"돌아갈까요? 오르막 괜찮으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지금 천천히 가니까 괜찮아요. 정말 천천히 가시네요."
롱블랙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빡빡하다고 했다. 편집부 구성원은 총 6명인데,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하나씩 기사를 써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했다. 각 기사마다 글의 양이 아주 많다. 그에 따라 신나래 에디터는 며칠 후 또 이메일로 질문 뭉치를 보냈다. 그중 답하기 어려운 문항이 하나 있었다.
"기자님을 계속 산으로 향하게 만드는 더 깊은 기쁨이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아주 긴 답변을 써서 보냈는데, 그것을 딱 한 단어로 나타내면 이렇다. "호기심!"
호기심은 나를 영원히 늙지 않게 할 것이다. 오랫동안 걷거나 뛸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럴려면 등산 초보 신나래 에디터처럼 주위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각질처럼 굳어진 나의 생각을 일부 벗긴 기분이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