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자본시장과 관련한 여러 제도개편이 담겨 있다.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 과세특례를 정비하고, 공모 리츠·부동산펀드에 대한 과세특례를 손질하는 한편, '주가 누르기' 방지를 위한 상장주식 평가방법과 자기주식 과세체계도 정비한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제를 통해 투자자의 자금 흐름을 바꾸려는 '생산적 금융' 정책이다.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하고, 국민성장펀드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세제상 유인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핵심 문제는 '돈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이다.
생산적금융 ISA, 국내투자와 장기투자를 함께 보자생산적금융 ISA는 국내 상장주식,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BDC 등을 주요 투자대상으로 한다.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소득은 비과세되며, 연간 2천만원, 총 2억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자금이 국내 시장과 성장기업에 연결되도록 세제혜택을 집중하여 자본 유도를 겨냥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국내 자산에 투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장기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ISA의 미사용 납입한도의 이월이나 장기 적립 기능의 유연성이 떨어지면, 투자자가 굳이 자금을 오랫동안 묶어둘 유인을 느끼기 어렵다.
생산적 금융을 확대한다면서, 정작 오래 차분히 투자하려는 기존 투자자의 선택지와 유연성을 좁히는 것이 과연 일관된 정책 방향인지 물어야 한다.
거래가 많아지는 것과 좋은 시장은 같은가주가가 오르고 거래대금이 늘면 흔히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래량이 늘어나는 것과 기업에 실질적인 장기자본이 공급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6월 중순 기준 국내 주식 거래대금의 48%가 주식을 산 날 당일 다시 파는 데이트레이딩(당일매매)이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그 비중이 무려 57.1%에 달했다.
단기매매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므로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신사업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진정한 생산적 금융을 논하려면 단순한 거래량 뿐만 아니라, 자본이 얼마나 오래 기업에 머무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세금이 주식을 자주 팔게 만들 수도 있다세제 구조 역시 투자자의 행태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과거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논의되던 당시에는 매년 큰 규모의 기본공제를 제공하면 투자자가 공제한도에 맞추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주식을 자주 팔았다가 다시 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정우진의 연구(2021) 역시 단기투자에 징벌적 과세를 하기보다는,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세제 혜택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은 폐기됐지만, 세제를 설계할 때 단순히 세금의 크기뿐 아니라 '그 세제가 어떤 투자행태를 유도하는가'를 세심하게 살피어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업에는 '기다려 주는 돈'이 필요하다혁신기업은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 성과가 가시화될 때까지 견뎌낼 자금이 필수적이다. Acharya와 Xu의 연구는 외부자금 조달이 중요한 산업일수록 자본시장 접근성이 연구개발과 혁신 성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에서는 이런 자금을 'patient capital', 즉 '기다려 주는 자본'이라 부른다. OECD도 최근 성장기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장기적이고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patient capital'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럽의 유럽장기투자펀드(ELTIF)나 영국의 British Patient Capital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의 본질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 맞춰져야 한다.
국민성장펀드와 BDC, 세제지원 성과 어떻게 볼 것인가국민성장펀드와 BDC는 벤처·혁신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지원의 당위성을 갖는다. 다만 혜택과 지원이 크고 명확할수록 성과에 대한 평가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2026년 국민참여성장펀드는 국민자금 6000억원에 재정 1200억원이 후순위로 참여하여, 자(子)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재정 등이 국민투자금보다 먼저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다. 물론 이는 펀드 구조상의 후순위 출자일 뿐, 개인 투자자의 손실 20%를 정부가 보전하거나 원금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정부안은 펀드 자산의 60% 이상을 벤처·혁신기업에 투자하는 BDC 전용계좌 배당소득에 대해 9% 분리과세 혜택을 부여한다.
정부의 위험분담과 세제지원이 결합되는 만큼, 실제 벤처·혁신기업에 얼마나 많은 신규자금이 공급되고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로 이어지는지를 엄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투자처뿐 아니라 투자기간을 보자자금이 국내 혁신기업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투자대상만을 기준으로 혜택을 나눌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투자했는가"라는 시간의 축을 세제에 더해야 한다.
생산적금융 ISA를 비롯한 ISA 제도의 미사용 납입한도 이월 등 장기 적립 기능을 유연하게 유지·확대하는 한편, 3년·5년·10년 등 일정 기간 이상 장기 투자한 경우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제 폭이나 비과세·분리과세 혜택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핵심은 단기투자를 세금으로 억누르는 데 있지 않다. 오래 투자한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확실한 혜택이 돌아가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투자대상에 정책적 혜택을 집중할지를 정부가 지나치게 세분화하기보다, 기업 선택은 시장에 맡기고 세제는 '오래 투자할 이유'를 만드는 역할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주가지수보다 오래 머무는 돈을 보자생산적 금융의 성과를 단순히 주가지수나 거래대금 증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실제 기업에 공급된 장기자금의 규모, 그것이 유발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실적, 투자자의 평균 보유기간과 장기투자자 비중이 실제로 증가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의 핵심은 기업과 투자자가 충분한 시간을 함께 견디며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데 있다. 이제 우리의 금융세제도 "어디에 투자했는가"를 넘어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좋은 기업에 오래 투자할 이유를 만드는 것, 생산적 금융의 참된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조세일보 / 법무법인 율촌 안경봉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