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단기 정기예금으로 현금 몰려
투자자예탁금도 106조원대 회복…증시 ‘완전 이탈’과는 거리
위험자산 비중 줄여도 투자 여력 유지 분석[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금리와 증시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시중 자금이 단기 정기예금으로 몰리고 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잦아들자 자금을 장기간 묶어두기보다 짧게 예치한 뒤 투자처를 다시 선택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6월 이후 나타난 폭락장으로 주식시장을 떠난 투자자가 많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단기 예금 잔액과 투자자예탁금은 증가하고 있다.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을 완전히 떠나기보다 안전자산과 현금성 자산에 머물며 재진입 시점을 살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 한 달 새 35조원 증가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7월 말 정기예금 잔액은 984조9399억원으로 집계됐다. 6월 말 949조3998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35조5401억원 증가한 규모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5월 7조5327억원 ▲6월 4조6837억원 늘어난 데 이어 7월까지 석 달 연속 증가했다. 특히 7월 증가액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던 2022년 10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은행권에서는 정기예금 증가분에 증시에서 빠져나온 개인 자금뿐 아니라 반기 말 재무비율 관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이탈했던 법인자금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인자금이 7월 들어 다시 유입된 데다, 수시입출금식 계좌에 머물던 개인 자금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월 말 722조2928억원에서 7월 말 665조8879억원으로 56조4049억원 감소했다.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도 개인 자금이 은행 정기예금으로 이동한 배경으로 꼽힌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원금 손실 위험이 낮은 은행 예금을 자금의 임시 피난처로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코스피가 극심한 급등락에서 벗어나 반등하면서 투자 경계심도 다소 완화되고 있다. 이에 투자자들이 자금을 장기 예금에 묶어두기보다 단기 예금에 맡긴 채 증시 재진입 기회를 엿보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만기별 정기예금 잔액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만기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217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13조원 증가했다. 지난해 5월 말 196조원과 비교하면 21조원 늘었다.
반면 만기 6개월 이상 1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5월 말 225조원에서 올해 5월 말 189조원으로 36조원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만기가 긴 상품에 자금을 묶어두기보다 짧은 주기로 자금을 굴리며 금리와 시장 상황을 지켜보려는 성향이 강해진 셈이다. 은행권에서는 단기 예금 선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주가가 서서히 반등하고 있어 예금 자금이 다시 증시로 이동할 수 있어서다.
증시 재진입 노리는 대기자금 증가증시 주변 자금도 다시 불어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8월 19일 기준 106조5750억원으로 7월 말보다 2조4396억원 증가했다. 전날인 18일과 비교해서도 약 1조8199억원 늘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두거나 주식을 매도한 뒤 인출하지 않은 자금이다. 곧바로 주식 매수에 활용될 수 있어 대표적인 증시 대기자금으로 분류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자금 흐름은 주식에서 예금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역머니무브’라기보다 불확실성에 대응한 대기성 자금의 확대에 가깝다”며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면서도 단기 예금과 증권계좌에 자금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