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 목표 1.5%→3%…30조 추가 여력
잔금·이주비 등 집단대출부터 공급 숨통
LTV·DSR 등 차주 규제 그대로…개인 한도는 별개[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정부가 금융권에 약 30조원의 추가 가계대출 여력을 열어주면서 꽉 막혔던 대출 문이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실제 은행들은 신규 아파트 잔금대출 공급을 확대하고 중단했던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0조원 완화’가 개인별 대출한도 확대로 곧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완화된 것은 금융회사가 공급할 수 있는 대출의 ‘총량’이지 개인별 대출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금융회사별 하반기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조정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을 통해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0%로 두 배 높였다. 이에 따라 금융권 전체에 약 30조원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추가 여력이 은행별로 똑같이 배분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각 금융회사의 상반기 대출 취급 실적과 기존 관리 목표 준수 여부 등을 고려해 개별 목표를 정할 방침이다.
총량 규제 완화했지만…개인별 문턱은 여전금융소비자가 이번 대책에서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총량 관리’와 개인에게 적용되는 ‘차주 단위 규제’다.
그동안 은행들은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맞추기 위해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제한하거나 영업점별 한도를 설정하고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출 공급을 조절해왔다.
이 때문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따졌을 때 대출 여력이 있는 차주조차 은행의 자체적인 총량 관리에 걸려 대출 신청 자체가 어렵거나 필요한 시기에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총량 확대는 이 같은 ‘공급 병목’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은행에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기면 총량을 맞추기 위해 걸어뒀던 자체적인 접수 제한이나 상품 판매 중단 등을 일부 풀 수 있어서다.
실제 NH농협은행은 지난 20일부터 변동형 주담대인 ‘NH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약 두 달 반 만에 재개했다. 주담대 금리 상단도 0.4~0.5%포인트(p) 낮췄다. 8·13 대책 이후 은행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던 대출 제한을 완화한 첫 사례다.
그러나 은행에 대출 여력이 생겼다고 개인의 대출한도가 함께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LTV와 DSR 등 차주별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가령 소득이나 기존 부채 때문에 DSR 한도에 걸린 차주라면 은행이 추가 대출 여력을 확보하더라도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없다. 담보가치 대비 대출 가능액을 제한하는 LTV 역시 이번 총량 조정만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번 조치의 직접적인 효과는 ‘얼마나 더 빌릴 수 있느냐’보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을 은행이 실제 취급해줄 수 있느냐’에 더 가깝다.
집단대출 먼저 풀렸다…잔금대출 공급 확대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곳은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집단대출이다.
금융당국은 주택 공급 과정에서 필요한 집단대출을 개별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와 별도로 관리하기로 했다. 총량 때문에 이미 분양받은 주택에 입주하지 못하거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음 달 입주를 앞둔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방배’가 대표적인 사례다.
KB국민·신한·하나은행은 당초 각각 1000억원씩 총 3000억원을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공급 규모를 총 8000억원으로 확대했다. ▲하나은행은 1000억원에서 3500억원 ▲국민은행은 3000억원 ▲신한은행은 1500억원으로 각각 한도를 늘렸다. 국민은행은 가산금리도 0.1%p 낮췄다.
은행별로 해당 단지에 배정한 잔금대출 공급 물량이 소진될 것을 우려해 입주예정자들이 서둘러 대출을 신청해야 했던 이른바 ‘대출 오픈런’에도 숨통이 트인 셈이다
그렇다고 입주자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대출금까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집단대출 공급 규모가 확대돼도 개인에게 적용되는 LTV·DSR 등의 규제는 남는다. 은행이 주택의 담보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도 실제 대출 가능액은 달라진다.
디에이치방배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실제 대출한도 산정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은행별로 담보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서다. 신한은행은 분양가의 60%와 감정가의 50% 가운데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대출한도를 산정하는 방안을 적용하는 반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감정가의 50%를 기준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를 담보로 하더라도 어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느냐에 따라 한도가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은행들이 디에이치방배에 공급하는 잔금대출 전체 규모를 늘렸지만 개별 입주자가 필요한 자금을 모두 조달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의 공급 여력이 확대되면서 총량 부족으로 대출이 막힐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지만 개별 조합원에게 적용되는 대출 규제까지 동시에 풀린 것은 아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이번 대책으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대출한도’보다 ‘대출 접근성’이다.
은행의 연간 총량이 부족해 대출 접수가 중단되거나 특정 상품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신규 아파트 입주자나 정비사업 조합원 역시 단지 전체의 집단대출 공급 부족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위험은 낮아질 수 있다.
반면 DSR이나 LTV 때문에 원하는 금액을 빌리지 못했던 차주라면 이번 조치만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존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일반 주담대를 이용하려는 차주 역시 은행별 추가 한도가 확정된 뒤 자체적인 대출 제한이 얼마나 완화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정부가 총량을 확대하면서도 차주별 규제를 그대로 둔 배경에는 가계부채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전분기보다 25조9000억원 증가했으며 주택관련대출도 같은 기간 12조2000억원 늘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총량 관리 완화를 가계대출 규제의 전면적인 완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LTV와 DSR 등 차주별 규제는 유지하면서 집단대출 등 실수요 자금의 공급 병목을 해소하려는 조치인 만큼 실제 차주의 대출 가능 금액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