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격파] 보수도 진보도 ‘당원’ 눈치만…● 양당 당원 상당수는 강성…소수 목소리 묻혀
● 견제 역할 못하는 야당, 할 말 다하는 李
● 대표직 사퇴 요구하려면 의원직 걸라? 비상식!
● 상대 ‘비상식’ 기다리는 한국 정치 ‘웃픈’ 현실요사이 정치판을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로 닮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양당의 공통점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의 공통점은 ‘당원’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결국 1인 1표제를 관철했다. 1인 1표제란 권리당원과 대의원 간 ‘표의 등가성’을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점도 존재한다. 당원이 적은 영남 지역과 당원이 많은 호남·수도권 지역을 비교하면 결국 1인 1표제를 통해 당원이 많은 지역의 의견대로 당무가 운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표의 등가성은 살려냈을지 모르나, ‘지역 간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 당시부터 ‘당원 주권 확대’를 주장해 왔는데, 1인 1표제 실현도 이런 ‘당원 주권’의 구체적 실현 방안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이 당원 주권 정당으로 가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정 대표의 당원 주권 주장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이 있다. 2025년 전당대회 당시 정 대표는 대의원 투표에서는 박찬대 의원에게 밀렸지만, 당원 투표에서 압승을 거둬 당대표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런 과거 사례를 보면, 정 대표가 ‘당원 주권’을 내세워 당원 의견이 많이 반영되도록 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물론 정 대표 본인은 부인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의도가 어떻든 1인 1표제는 정 대표에게 불리하지 않은 정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민의힘에서도 ‘당원 주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당원 주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원이 주인’이라는 식의 언급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주요 당직자 중 한 인사는 “당의 주인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당원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장동혁 대표는 “당대표가 된 이후 당원이 주인인 국민의힘을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최선을 다해 왔다”라고 언급했다. 이런 언급은 ‘당원 주권’을 주장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1인 1표제 = 당원 주권 실현?
양당이 ‘당원이 당의 주인이고, 그래서 당원 주권을 강조한다’는 주장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당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국가 정당 대부분은 이른바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포괄정당이란 특정 계급이나 이념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과 이념을 지닌 유권자를 폭넓게 포섭하는 정당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이념 정당의 흔적을 현재의 유럽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극우정당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아직까지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포괄정당에서 ‘당원’은 큰 의미가 없다. 과거 1970년대의 이념 정당에서 당원의 역할은 중요했지만, 포괄정당에서 당원은 ‘지지자’ 정도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당원 수가 100만 명을 넘기거나 육박한다고 자랑하는 것은 이미 유럽에서는 사라진 ‘이념으로 박제된 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나라 양당의 당원 수는 거의 세계 최대 수준이다. 이런 상태가 된 이유도 민주주의 선진국 정당 체계는 변하는데 우리나라만 역행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원들의 상당수가 강성 지지층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당원 주권을 주장하면 결국 강성 세력의 의지대로 당을 운용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정당을 과연 공당(公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정당에 선거보조금과 정당지원금도 주고 있는데, 이것이 모두 국민의 세금인 만큼 이런 모습의 정당에 과연 우리 세금을 줘도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 결국 당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공당임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둘째, 당원 주권과 당내 민주주의를 연결할 수는 없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당원 주권을 강조할수록 당내에서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텐데, 이를 민주주의 강화라고 볼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소수의 목소리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지배하고 소수의 목소리는 묻히거나 ‘징계’받는 경우, 이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만일 당내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이런 소수 의견이 존중되며 당원 주권을 주장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양대 정당의 상황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양당 대표가 한결같이 이런 ‘당원 주권’을 부르짖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양당 대표의 공통점부터 찾아야 한다. 양대 정당의 두 대표 모두 당내 세력이 강하다고 볼 수 없는 인사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정청래 대표도 비주류적 성격이 강하고, 장동혁 대표도 친윤 혹은 강성 세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 두 대표 모두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필요’ 때문에 양당 대표는 강성 세력을 의식하며, 이들 세력을 자신의 영향권하에 두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양당은 공통적으로 ‘당원 주권’ 혹은 ‘당원이 주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비상식이 뉴노멀’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비상식’과 ‘몰상식’은 다르다는 점이다. 몰상식이라고 하면 ‘상식이 전혀 없음’을 뜻하지만, ‘비상식’은 오히려 상식을 뛰어넘는, 상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상식’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국힘 견제 역할 못 하니 李 하고 싶은 말 쏟아내
여권에서 나타나는 ‘비상식’의 대표 사례로, 연일 SNS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쏟아내는 부동산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진보 정권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부동산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봤듯, 진보가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문제는 ‘정권 상실’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진보 정권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부동산정책을 내놓거나 언급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런 ‘선거의 상식’을 깨고 있다. 이것은 분명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거의 상식’을 깨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선거 전이라도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의 특성을 볼 때, 지금까지 안 잡힌 부동산 가격이 쉽게 잡힐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문제다. 국민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놓고 가격을 잡지 못하면 역풍 맞기 십상이다. 이를 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연일 부동산 관련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일까. 그 이유의 중심에는 국민의힘이 있을 수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국민의힘이 무슨 말을 해도 여론의 호응을 얻기 힘들기에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이 이렇듯 열악한 상황에 빠진 이유는 당 내부에서 발생한 ‘비상식’이 주된 원인일 수 있다. 국민의힘의 ‘비상식’은 다양하다. 먼저 들 수 있는 ‘비상식’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문제와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전 대통령이 탈당했기에 자신들과 상관없는 인물인데, 이런 인물과 절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한동훈 전 대표는 제명했으면서 윤 전 대통령은 왜 제명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즉 국민의힘 지도부의 생각과 여론의 시각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이 ‘비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여론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월 23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자체 정례 여론조사(2025년 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한 전 대표 제명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에서 ‘제명이 적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3%,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34%, 의견 유보는 33%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해서 보면 ‘적절’이 48%, ‘부적절’이 35%였다. 반면 중도층에서는 ‘적절’이 26%, ‘부적절’이 37%로 나타났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한 전 대표에 대한 중도층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다른 하나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여론과 일반 여론 사이에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중도층의 여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차원에서 ‘선거의 상식’을 깨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비상식’도 있다. 장동혁 대표는 2월 5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정치는 변명하거나 지적하는 자리가 아니라 본인이 말한 것에 대해 책임지는 자리”라며 “누구라도 내일까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재신임이나 사퇴를 요구한다면 곧바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하고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당대표직과 국회의원직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내게 그런 요구를 하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있다면 본인들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것.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나도 직(職)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 테니, 나에게 당대표 사퇴를 요구한 측도 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라’는 요구다. 이런 장 대표의 주장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역구 의원이나 서울시장과 같은 자리는 아무리 당대표라도 직(職)을 걸라 마라 할 수 없다. 이들 의원 혹은 시장은 서울 시민 혹은 해당 지역구 주민들이 뽑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 의원이나 오 시장이 공개적으로 사퇴하라고 한 것은 당대표직이지, 의원직 사퇴는 아니다. 당원들이 뽑은 당대표라는 이름의 직(職)과 유권자들이 뽑은 직(職)을 같은 수준에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과거 선거에서 패배한 당대표는 모두 퇴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원직을 버리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상식 벗어난 ‘의원직 걸라’ 요구
또 다른 측면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점은 이렇듯 직(職)을 걸고 자신의 사퇴를 주장하라는 것은 소수 제1야당의 대표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점이다. 지금 시점에서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아쉬운 판인데,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나를 사퇴시키지 못하면 당신들이 나가라’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매우 크다. 이런 장 대표의 언급은 ‘사퇴하라’는 주장에 대해 사퇴하지 않겠다며 조건을 붙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현상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방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 덕분에 자신들이 ‘상식을 벗어난 언행’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즉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의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은 국민의힘의 ‘상식을 벗어난 언행’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치권은 상대방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를 오히려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치는 합리성에 기반해야 하는데, 비합리성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웃픈’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상식’ 혹은 ‘비합리’가 뉴노멀이 된 시대를 사는 우리 국민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심히 걱정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