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 돈 받고 계약 깬 中 업체 알고 보니…● 서류 위조, 금품·메일·결제 사기, 선적 불량 등
● 6가지 유형 복합적으로 발생…선적 불량만 33건
● 선수금 받고 잠적…샘플은 정품, 본품은 불량품 보내기
● 의심 정황 발견되면 여러 채널로 교차 검증해야
● “선제 예방 중요”…‘수출24 글로벌 대행 서비스’ 활용LED 전등을 수출하는 A사는 6월 호주의 한 수입업체로부터 견적 문의 연락을 받았다. 자신을 해당 업체의 한국인 영업이사라고 소개한 강모 씨가 e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A사가 견적서를 보내자 강모 씨는 곧바로 1만7000달러 규모의 주문 의사를 밝히며 사업자등록증과 통장 사본을 요청했다. 며칠 뒤에는 송금증까지 보내며 “며칠 내 대금이 입금될 예정이고 납기가 급한 만큼 지정 물류업체를 통해 항공운송을 진행해 달라”고 재촉했다. A사는 보이스톡 등으로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강모 씨가 샘플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주문을 진행하는 점을 수상히 여겼고, 물류비 송금 직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 해당 수입업체가 실존하는지 등을 문의했다. 코트라 확인 결과 이는 한국인 직원을 사칭해 항공 물류비를 가로채려 한 국제 무역 사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출 1조 달러’ 시대를 앞두고 해외 바이어 사칭이나 e메일 해킹, 위조 서류 등을 활용한 무역 사기가 잇따르면서 수출기업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기업 홈페이지와 각종 서류를 정교하게 위조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신고된 무역사기만 91건에 달한다. 무역사기는 피해 복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무역 사기는 크게 △서류 위조 △금품 사기 △메일 사기 △선적 불량 △결제 사기 △기타(입국비자 편취·고의 부도처리 등) 6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한 가지 수법만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위조된 사업자등록증이나 기업등록증으로 신뢰를 쌓은 뒤 물류비를 가로채거나, e메일을 해킹한 뒤 결제 시점에 닥쳐 계좌 변경을 요청해 대금을 빼돌리는 식으로 여러 수법을 교차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역 사기 가운데 가장 빈번한 유형은 ‘선적 불량’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선적 불량 피해는 33건으로 전체 유형 가운데 가장 많았다. 2024년 16건까지 감소했던 관련 사기가 1년 만에 2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계약을 체결한 뒤 선수금만 받고 잠적하거나, 약속한 제품 대신 저품질 상품을 보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계약을 따내는 과정까지 정상 거래를 가장하지만, 막상 선적 단계에 들어가면 잠적하거나 불량품·저가품을 보내는 식이다. 이때 샘플 테스트에는 정품을 보내 신뢰를 얻은 뒤 실제 선적 과정에서는 전혀 다른 제품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합성고무 수출기업 B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B사는 지난해 2월 중국 업체와 계약을 맺고 2만 달러의 선수금을 보냈지만 끝내 물품을 받지 못했다. 상대 업체가 선적 일정을 세 차례나 미루더니 끝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선수금 환불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다. 결국 A사는 중국 공안에 해당 업체를 신고했고, 거래처는 허위 주소지를 사용한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됐다. A사는 송금 은행에 해당 사실을 알리며 계좌를 동결했지만, 이미 송금한 선수금은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
“선제 예방 중요”…‘수출24 글로벌 대행 서비스’ 활용
그렇다면 무역 사기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코트라는 수출기업들이 거래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할 ‘무역 사기 예방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수출 계약을 진행 중인 기업이라면 다음 항목 가운데 해당하는 부분이 없는지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상대 기업의 기업명과 사업자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등을 통해 법인 등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사기범들은 대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계약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면 e메일이 아닌 유선 전화번호를 포함한 다양한 채널로 교차 검증을 거쳐야 한다.
자체 검증이 어렵다면 코트라의 ‘수출24 글로벌 대행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코트라는 매년 수입업체 5곳의 연락처를 무료로 확인해 준다. 해외 기업의 실재 여부와 대표 연락처 등을 확인해 주며, 신청 후 2주 이내에 조사에 착수한다. 다만 정보 수집이 불가능한 경우 조사가 취소될 수 있다.
더욱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면 ‘바이어 실태조사’를 이용하면 된다. 45만 원의 수수료를 내면 현지의 코트라 해외무역관 직원이 해외 거래처의 사무실이나 공장을 대신 방문해 기업의 존재 여부와 규모 등을 확인해 주는 방식이다. 수수료를 납부하고 의뢰 내용을 확정하면 10일 안에 상세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
이미 피해가 발생했다면 무엇보다 대응 속도가 중요하다. 사기 조직의 계좌로 보냈다면 즉시 우리 측 송금 은행과 자금이 거쳐 가는 중계은행, 해커의 수취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사기범이 자금을 다른 계좌로 빼돌리기 전 계좌를 동결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한 뒤에는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이때 송금 확인증 원본과 사기 e메일 원문, 해당 e메일의 접속 IP 정보 등 관련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관묵 코트라 부사장 겸 경제안보통상협력본부장은 “무역 사기는 기업들이 공들여 쌓은 수출의 결실을 한순간에 수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코트라를 비롯한 유관기관은 무역사기를 비롯해 해외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핵심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