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파파 만드는 이경호의 버스토리(birth+story)] 햇빛과 호르몬이 만드는 여름휴가의 기적
매년 여름이면 울산은 시원한 동해를 찾아온 피서객들로 활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가족이나 연인보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나홀로’ 피서객도 적지 않다. 휴가를 보내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 있다. 여름이 되면 사람의 마음은 조금 더 설레고 몸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는 사실이다. 사랑도, 성(性)도, 생식기능도 여름이라는 계절의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 난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필자는 매년 이맘때 그 사실을 진료실에서 새삼 확인하곤 한다.
휴가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쉬게 한다. 긴장이 풀리고 표정이 부드러워지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진다. 우리는 사랑을 감정의 작용으로 여기지만 생식의학은 조금 다르게 본다. 사랑과 임신은 감정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햇빛과 수면, 스트레스, 운동, 호르몬, 주변 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신체리듬을 바꾸고 그 변화가 생식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연이 켜는 생체 스위치, ‘햇빛과 휴식’이라는 처방
우리 몸은 생각보다 계절에 민감하다. 몸속 생체시계는 지금도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생식기능 역시 예외가 아니다. 휴가철 이후 임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여행 자체가 임신을 성사시키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에게 더 집중하며 친밀감도 깊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생식호르몬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 역시 ‘시험관아기시술(IVF)을 잠시 쉬고 여행을 다녀온 뒤 자연임신 소식을 전하는 부부’를 여러 쌍 만났다. 여행이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몸이 다시 ‘지금은 임신해도 괜찮다’고 느낄 만큼 편안해졌을 가능성, 생식의학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임신은 난자와 정자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 삶의 환경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임신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햇빛이다. 여름의 긴 낮과 풍부한 햇살은 몸의 생체시계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한다. 아침 햇살을 충분히 받으면 기분이 밝아지고 낮에 활력이 생기며 밤에는 잠이 깊이 든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리듬이 안정되고,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도 과도하게 분비되지 않는다. 결국 햇빛은 피부를 그을리는 것이 아니라 몸속 시간을 다시 맞추는 자연의 스위치다. 몸이 편안해질수록 생식기능도 본래의 리듬을 되찾기 쉽다. 휴가철 이후 임신이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 여성의 생식기능은 몸뿐 아니라 마음과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이를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러면 번식보다 생존을 우선하면서 생식기능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한창 나이에도 중요한 시험이나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나면 생리주기가 길어지거나 생리를 건너뛰는 여성도 적지 않다. 반대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숙면을 취하면 뇌에서 난소로 이어지는 호르몬 신호도 다시 안정된다. 배란과 생리주기는 본래의 리듬을 되찾고 자궁도 착상을 준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난임 치료에서 마음을 돌보는 일은 위로가 아니라 치료의 일부다. 좋은 약도 중요하지만 편안한 잠과 웃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안정된 시간 역시 또 하나의 처방이다. 몸은 마음을 많이 따른다. 때로는 마음이 먼저 회복돼야 몸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남성은 정자의 수와 운동성만 걱정하지만 생식기능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심리적 긴장이 계속되면 스트레스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성욕과 발기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성기능은 한결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휴가는 남성의 몸에도 “이제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시간인 셈이다. 좋은 정자는 약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때 정자가 만들어지는 환경도 한층 건강해진다. 만성 스트레스가 남성호르몬과 정자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낯선 공간이 깨우는 설렘, 뇌와 마음에 필요한 ‘쉼표’
휴가는 뇌에도 필요하다. 늘 같은 출근길과 사무실,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바다를 바라보고 숲길을 걷는 순간 뇌는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노벨티(Novelty) 효과’라고 한다. 새로운 공간과 경험은 무뎌졌던 감정을 깨우고 설렘을 되살린다. 그래서 부부가 여행을 하면 결혼 전 연애할 때처럼 웃음이 많아지고, 손을 더 자주 잡으며, 서로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환경이 바뀌면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익숙한 일상에 무뎌졌던 설렘도 낯선 공간에서는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많은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권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로 함께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여행지의 자연환경도 둘 사이를 끈끈하게 만드는 조력자다. “여행지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사람이 많다. 자연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을 휴식 모드로 바꾸는 힘이 있다. 긴장이 풀리면 자율신경계가 안정된 균형을 찾고, 생식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여름이라고 종일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만 머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당히 햇볕을 쬐며 걷고 수영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생식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상상해 보라. 해변을 천천히 걷고 숲길을 산책한 뒤 온몸이 따뜻하게 풀리는 그 느낌을. 몸이 움직이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호르몬의 리듬도 안정된다. 무엇보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숙면을 돕는다. 결국 운동은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아니라 몸을 ‘임신하기 좋은 상태’로 조금씩 되돌리는 과정이다. 하루 30분의 산책이 몸의 리듬을 바꾸는 데 때로는 약만큼 확실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난임을 진료하는 의사이면서 부부생활을 먼저 경험해 온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휴가를 떠나는 부부에게 꼭 하나 당부하고 싶다. 여행할 때만큼은 현실을 안방에 두고 나오라는 것이다. 대출금, 회사 스트레스, 아이 교육, 노후 걱정은 잠시 잊어도 된다. 여행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함께 웃고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달라진다. 그래서 여행은 몸과 마음을 난임치료를 받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행하는 동안 남의 가정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부부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여행은 쉼이 아니라 경쟁이 된다. 휴가는 세상 누구와 비교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휴대전화는 잠시 내려놓고 배우자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자.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여행이다. 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순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채비가 내 안에서 조용히 시작될 테니.
이경호
● 1966년 울산 출생
● 1990년 고려대 의대 졸업
● 1994~1998년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전공의
● 1999~2000년 제일병원 복강경수술 전문 펠로(fellow)
● 2000~2003년 미즈메디병원 난임 전문의
● 2003년~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