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AI 네이티브 ‘2012년생 김서연’] 답답할 때 챗GPT 켜는 중학생 30명 심층 인터뷰● 이별·부모 갈등 고민, AI에 털어놓는 청소년들
● ‘내 속마음 가장 잘 아는 존재’ 1위로 AI 꼽기도
● AI 찾는 핵심 이유, ‘비밀 보장’과 ‘프라이버시’
● “AI는 진심이 없다”라며 상담 한계 느끼는 학생도…
● 지나친 AI 의존, 필터링 없는 실행 우려 점점 커져
● “학부모, AI 사용 기준 아이와 함께 정해야”한때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이제는 그 세대가 낳은 아이들, ‘2012년생 김서연’이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을 함께 경험한 첫 세대는 무엇을 배우고, 누구와 대화하며, 어떻게 생각할까.숙제가 막히면 AI에게 묻고, 고민이 생기면 챗봇과 대화한다. 친구와 놀고, 영상을 만들고, 공부하는 순간마다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세대가 자라고 있다. ‘2012년생 김서연’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AI와 함께 성장하는 오늘의 청소년을 상징하는 이름이다.‘신동아’는 AI 네이티브 세대의 일상을 추적해 기술이 청소년의 학습과 관계, 창작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봤다. ‘2012년생 김서연’의 하루를 통해 AI가 움직이는 10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그랬구나. 많이 힘들겠다.”
“어쩌지? 이 슬픔 빨리 없애고 싶어.”
“일단 밖으로 나가서 운동부터 해보는 게 어때?”
앞선 대화는 경남 김해 구산중 3학년 김형우(15) 군이 이별을 겪은 뒤 오픈AI의 ‘챗GPT’에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던 내용이다. 김 군은 “챗GPT의 조언 덕에 한 달간 열심히 운동하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교우 관계 고민을 계기로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상담을 구하기 시작했다는 김 군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말 못 하는 고민을 AI에 털어놓으면 훨씬 편해서 비밀 친구 같다”라고 했다.
인천 가좌여자중 3학년 김지우(15) 양 역시 엄마에게 혼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챗GPT를 찾았다. 주말에 학원을 마치고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오후 9시가 넘어 귀가해 혼이 난 직후였다. 김 양은 “고등학교 2학년인 오빠는 자정에 들어와도 안 혼나는데 나만 혼나서 억울하다”라며 당시 상황을 입력했고, AI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서울 연희중 3학년 박건우(15) 군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구글의 ‘제미나이’를 찾는다. 최근에는 부모님과 휴대전화 문제로 싸운 일을 털어놓았더니 제미나이가 먼저 “이번에는 어떻게 싸웠어?”라며 안부를 물어왔다. 박 군은 “비슷한 대답을 반복할 때도 있지만 내 성향을 기억하다 보니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는 사람보다 비밀 더 잘 지켜
세 학생은 평소 궁금한 점을 묻고 답답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일 AI를 쓴다. ‘신동아’ 취재팀이 6월부터 7월까지 서울·인천·경기·경상·전라도 지역 중학교 1~3학년 학생 3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AI는 이들에게 숙제나 정보 검색을 넘어 상담사이자 감정을 나누는 대화 상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춘기 무렵인 학생들의 고민 주제는 주로 부모·친구 관계나 진로 문제였다.
인천 가좌여자중 조은솔(15) 양은 자신의 성적을 알려주며 “특성화고와 일반고 중 어딜 가는 게 좋을까”라고 물었고, 베트남 유학을 준비 중인 경남 김해 봉명중 3학년 이미소(15) 양은 “진학할 고등학교를 추천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AI 이용도에 따라 ‘내 속마음을 가장 잘 아는 존재’ 1위로 AI를 꼽거나 친구보다 AI를 더 높은 순위에 두는 학생들도 등장했다.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이 2026년 3월 전국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 브리프’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0%가 ‘AI 챗봇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라고 느꼈다. 약 35%는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나아가 AI 챗봇이 제시한 답변이나 조언을 실행에 옮긴 비율도 41%에 달했다.
이들이 개인적인 고민을 주변 사람 대신 AI에 쏟아놓는 이유는 ‘나만의 비밀’이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다. 경남 창원 창북중 1학년 우시현(13) 군은 “AI 사용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나만의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끼리도 AI 기록을 공유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알파 세대가 꼽는 AI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
하지만 AI의 정서적 상담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전남광주 문산중 3학년 곽여울(15) 양은 “친구와 얘기하는 것보다 재미없어 고민 상담은 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 이화여대사범대부속 이화·금란중 1학년 박한별 양 역시 “AI는 내 상황의 일부분만 알 뿐 나를 다 이해해 주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 이화여대사범대부속 이화·금란중 1학년 이모(13) 군도 “엄마에게 혼나 답답했던 순간을 챗GPT에 털어놓았지만 딱히 도움 되는 대답은 못 들었다”라며 “고민 상담은 역시 사람이나 전문가와 해야 한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훗날 기술이 가져올 위협을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경남 진주남중 3학년 장준호(15) 군은 “AI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평생 써야 하는 동반자 같은 존재”라면서도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사생활 정보를 악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짚었다.
학생들이 꼽은 AI와 사람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진심’이었다. “진짜 친구는 눈빛으로 공감한다” “진심을 느끼게 하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AI는 이미 알파 세대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에서도 마음을 털어놓는 ‘대나무숲’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학생은 “엄마도 할 일이 없거나 답답할 때 제미나이와 대화한다”라고 밝혔다.
부모는 AI보다 디지털 기기 사용 관리
가정 내 부모들은 AI 사용 자체를 막기보다 저학년일수록 아이폰의 ‘스크린타임’ 같은 기능을 통해 디지털 기기 이용 시간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루 제한 시간이 걸려있거나 평일에는 오후 10시까지, 주말에는 자정까지 쓸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서울 가재울중 1학년 김단우(13) 군은 “아침에 일어나 급식표를 보려고 했는데 엄마가 내 휴대폰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해 1시간 동안 기기가 잠겨 있던 적도 있다”라며 해프닝을 털어놨다.
부모들도 AI 사용을 무조건 반대하진 않지만, 의존성과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우려는 크다. 학부모 최모(55) 씨는 ‘구글 패밀리링크’로 중학교 2학년 자녀의 챗GPT 기록을 확인한다. 최 씨는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고립될까봐 걱정된다”라며 “AI가 시키는 대로 필터링 없이 실행에 옮길까 봐 무섭다”라고 토로했다. 학부모 임모(45) 씨도 “부모보다 AI를 더 의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운하면서도 걱정된다”라고 했다. 임 씨는 “부모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천근아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장(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정신과학교실 교수)은 “막을수록 아이는 숨기게 되므로 감시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라며 “스스로 고민하기도 전에 곧바로 AI부터 찾고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다면 위험 신호”라며 “얼마나 오래 쓰느냐보다 얼마나 쉽게 AI에 기대는지 살펴보고, 일상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용 기준을 아이와 함께 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알파 세대 학생들은 AI를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비밀 친구’ 정도로 인식하며 정서적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상과 감정의 영역까지 AI를 끌어들인 이들은 AI를 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프롬프트 하나로 글을 쓰고 자작곡을 만드는 실제 창작 사례를 살펴본다.